설거지하는 세 남자

2020.04.07 14:59

한성덕 조회 수:3

설거지하는 세 남자

                                                             한성덕

 

 

 

  대부분의 여성들이 밥과 설거지를 한다. 특히 설거지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통계가 있다거나, 집집마다 다니면서 확인하고, 조사한 게 있어서가 아니라 내 경험에서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성품이 온화하고 가정적이어서 어머니를 잘 도와드렸다. 물을 끓여놓고, 밥짓는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때로는 밥도 하셨다. 그러나 201391세로 돌아가시던 날까지, 설거지하시는 모습을 보거나 들어 본 적은 없다. 부전자전이라고, 아내의 일은 도와주더라도 설거지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갈등이 있었다.  

  이런 봉건사상이 어디서 묻어왔을까? 궁금증을 갖고 중세시대를 들여다보았다. 그 당시는 ‘봉건제도’와 ‘가톨릭교’라는 두 기둥이 사회전반을 이끌었다. 두 기둥은 여러 신분들이 상하관계로 서열을 형성하고 있었다. 봉건제도하에서는 국왕, 제후, 기사, 그리고 농민의 신분이었고, 가톨릭교아래서는 교황, 대주교, 수도원장, 주교, 그리고 일반 사제 순으로 서열이 매겨졌다.

  서양의 봉건제도는, 각 주의 영주들이 왕으로부터 자치권을 보장받고, 영주는 왕에게 복종을 맹세했다. 현대사회로 치자면 일종의 지방자치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봉건제도는, 중앙에서 관리들이 파견돼 각 주를 다스렸다. 그러나 이들의 자치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 중앙권력이 다스렸다. 이점이 서양과 다르다. 이 봉건제도가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낳았고, 조선에서는 부권중심의 사회제도가 확립되었다. 특히, 유교를 국가기본이념으로 정착시킨 조선은, 남존여비사상을 사회적 도덕적으로 강화시켰다. 이를테면, 칠거지악(七去之惡), 삼종지의(三從之義), 부창부수(夫唱婦隨) 또는, 여필종부(女必從夫)가 그것이다. 남성을 존대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낮추도록 했다. 최근에야 여성의 법적지위가 향상되어 헌법으로 보장받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했다. 하지만 그 세월도 오래지 않으며, 아직도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이 남존여비의 잔재로 남아있다. 글을 쓰다 보니, 딸만 둘인 것을 남존여비 사상에서 벗어난 양 우쭐대며, 은근히 자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성경은 일찍부터 남녀평등을 가르쳤다. 예수님께서 결혼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사도인 바울도,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서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곧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설거지를 한답시고 온갖 너스레를 다 떠는 것 같다. 남성의 설거지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등신, 어떤 이는 멋진 남자라고 치켜세우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식사를 마치면 뒤치다꺼리를 깔끔하게 한다. 그러고 나면, 아내 앞에서 괜스레 ‘후유~’하고 한숨을 쉰다. 눈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아내가 활짝 웃으면서 ‘수고했다’고 박수를 보내든지, 또는 입맞춤으로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실은, 전부터 설거지를 했다. 간단한 거야 아내가 하지만, 대부분의 설거지를 책임지는 전담 맨(man)이다. 이에 질세라, 두 사위도 우리 집에 오기만하면 팔을 걷어붙인다. 어이된 일인지 몹시 궁금하다. 우리 사위들의 생래적 부전자전인지, 예쁜 내 딸과 살면서 생긴 후천적(?) 부전자전인지 알쏭달쏭하다.

 사람이 일을 나눠서 하는 건 퍽 좋은 일이다. 그런데서 사랑이 스며들어 행복이 넘치고, 기쁨이 솟아나 엔도르핀이 팡팡 터지며, 끈끈한 정이 달라붙어 사는 맛이 난다. 부부간에 재밌게 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2020. 4.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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