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못하는 비둘기

2020.04.08 14:17

김학철 조회 수:3

날지 못하는 비둘기    

 

안골은빛수필문학회 김학철

                                                               

                                                               

  찬바람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굴리며 거리를 쓴다. 옷깃을 여민 사람들이 바쁜 걸음으로 그 뒤를 쫒고 있다. 뜨거웠거나 따뜻했던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 차갑고 쓸쓸한 것들이 자리하는 계절, 가을이 되었다.

  이때쯤이면 우리 집 앞에는 포장마차 하나가 문을 연다. 어언 7년 동안 가을에서 겨울을 지나 완연한 봄이 될 때까지 해마다 어김없이 붕어빵을 구워 파는 포장마차이다. 찬바람에 종종거리던 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를 부담 없이 사 갈 수 있는 곳이다. 유독 주머니가 얇은 사람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파는 곳인 셈이다.

  나는 한가한 시간이면 유심히 그 포장마차를 지켜보곤 한다. 거리 한 쪽에 나앉아 천막 한 장으로 찬바람을 가리고 애써 온기를 피워내는 한 사내를 바라본다. 그 옆에는 그의 아내가 빵틀 아래 나지막이 돋아 있는 불꽃에 의지해 손을 녹이고 있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로부터 엄마 손을 붙잡고 오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잠깐씩 포장마차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붕어빵을 사간다. 역시 붕어빵은 겨울의 별미다.

  그러나 늘 손님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회색 구름이 가득해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에는 구워놓은 붕어빵이 다 식도록 아무도 찾는 이가 없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회색구름이 가득한지 발밑만 바라보며 바삐 걷는다. 평소보다 일찍 가로등이 켜진 건너편 카페에는 사람들이 가득해도, 포장마차에는 초로의 두 내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세상에서 울타리 하나의 보호막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찬바람에 펄럭이는 천막 한 장, 이마저도 지키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 걱정스럽다.

 

  이들 내외가 이 거리로 흘러들 때까지의 사연이 왜 없었겠는가? 손님이 없는 한가한 어느 날, 자신들을 지켜주던 울타리가 하나 둘 허물어져 내린 사연들을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들었다. 평범한 우리네의 삶처럼 이들에게도 아무렇지 않았던 생활들이 있었고, 그 보통의 시간들이 사라진 뒤에 그 생활들은 사연이 되었다.

  붕어빵 아저씨는 텁수룩한 구레나룻 수염을 기르고 있다. 약간 검은 얼굴에 웃을 때마다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선량한 얼굴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십대 후반부터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대전의 한 백열전구를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18년 동안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성실히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형광램프나 LED등의 신제품이 쏟아지는 바람에 공장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몇 달치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졸지에 그만 직장을 잃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당시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들과 홀로된 노년의 장모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가진 재산이라곤 젊음과 건강이 전부라 그때부터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오로지 부지런함만이 생존을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막노동, 품팔이, 노상 옷장수, 과일장수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더란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번 허물어지기 시작한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것은 어려웠다 한다. 그렇게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전주에 흘러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직장, 젊음, , 재산 등 유형무형의 울타리가 하나씩 허물어져 갔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이들은 그 바람조차 가릴 여유가 없는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마음속 꺼져가는 온기를 힘껏 모아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이다. 한 겹 천막에 의지한 채 찬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삶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끝낸 그가 빵 부스러기를 거리에 뿌린다. 아까부터 주위를 어정거리던 비둘기들이 몰려든다. 용두산 공원의 비둘기 떼 같은 진풍경이 벌어진다. 오가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서서 바라보기도 한다. 그의 눈에 잔주름이 잡히고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언제부터인가 거리의 비둘기들이 눈에 들어 왔단다. 요즈음의 비둘기들은 거리를 헤매며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도시의 남루한 새가 되었다. 어디 거리에서의 삶이 붕어빵 아저씨뿐이겠는가? 비둘기도 거리에서 생존해야 하는 또 다른 생명체가 아닌가? 아마도 비둘기들의 삶의 모습이 자신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리라.

  모여든 잿빛 비둘기들은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르다. 어언 칠년 째 비둘기들과 지내다보니 그는 비둘기들 하나하나를 마치 사람처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 목에 흰 목도리 같은 띠를 두르고 있는 어미 한 마리와 새끼 두 마리를 유독 마음에 걸려 했다. 어미 새가 다리와 한쪽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가련한 비둘기 가족을 세심히 보살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같지는 않은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주위에서 불평어린 말들이 들려왔다. 비둘기들의 배설물이며 깃털들이 위생상 불결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비둘기들의 야생성이 사라져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는 충고도 들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빵 부스러기를 주는 일을 멈추자 비둘기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다친 어미 새와 새끼 비둘기들은 먼 곳으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먹을 것이 없으면 쓰레기봉투들이 놓인 주변을 맴돌면서 먹을 것을 찾느라 애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삼 일 동안 어미 비둘기가 부리로 새끼 비둘기들을 콕콕 쪼아대는 것이었다. 제법 자란 새끼 비둘기들은 한동안 제 어미 곁을 맴돌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 아마도 부근 야산으로 먹이를 찾아 떠나 간 것으로 보였다. 결국 그 날지 못하는 흰 목도리 어미 비둘기만 독거노인마냥 외로이 홀로 남게 된 것 같아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로부터 두어 달이 흘렀다. 마침내 차가운 겨울이 다가왔다. 첫눈이 내렸는데 첫눈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쌓였다. 그 날이었다. 그가 동네 마트에 가서 밀가루, 설탕 등 재료를 사서 어깨에 짊어지고 오던 중에 어미 비둘기가 쓰레기더미 주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며칠을 굶주렸는지 바짝 야위고 꺼칠한 빛을 띤 몸을 만져보니 온기가 조금은 남아있고, 눈을 깜박거리는 걸로 보아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 때였단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새끼 비둘기 두 마리가 와서 서성대고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그 동안 멀리 가지 않고 제 어미와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가 어미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고 달려왔지 않았나 싶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제 어미를 살리지 못해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죽어가는 어미의 마지막을 지켜보려는 것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생각하니 제 어미가 부리로 새끼 비둘기들을 콕콕 찍은 것은‘너희들도 여기 있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니, 다른 비둘기처럼 날아가 먹이를 구하여 배를 채워라’하며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모성애와 효심의 극치를 함께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더라는 거였다. 그렇게 어미 새는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겪어보지 않고 진정으로 느끼기는 어렵다. 차가운 거리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는 삶을 살아온 붕어빵 아저씨와 비둘기이기에 그런 교감이 가능했으리라.

  살다보면 튼실한 울타리라 여겼던 것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울타리 한 겹 차이일 뿐이다. 조금만 살펴보면 아직도 거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가끔 발견한다. 어느덧 봄기운이 퍼져가는 거리에서 포장마차가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앞을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폐지가 실린 작은 수레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2020.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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