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에 다녀와서

2020.04.10 02:29

한일신 조회 수:2

산소에 다녀와서

안골은빛수필문학회 한일신 

 

 

 

  임실군에 있던 아버지 묘를 2018년 완주군 용진쪽으로 이장했다. 임실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마련한 곳으로 270여 평쯤 되는 널찍한 땅에 앞이 탁~ 트여 전망이 좋았다.

 

  아버지는 장지를 오래도록 보존하려고 깊이 들어가 자리를 마련하셨는지 모르지만, 자손들은 세월이 갈수록 거리가 먼 만큼 마음도 멀어져서 관리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는 지관이 아버지 묘를 살펴보더니 수맥이 흐른다면서 이장을 권유하여 파묘破墓를 하게 되었다. 지관 말대로 상태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바닥에는 약간의 물이 들어왔다 빠진 흔적이 있었으며 두개골이 좌측으로 돌아가 있었다. 당초에는 명당자리라고 하여 꽤 높은 값을 치렀는데 자연의 조화造化 속은 참으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는 23년 만에 수맥水脈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곳 용진은 우리 산이라 땅값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데다 가까우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감사하다. 묘지를 팔 때 수작업으로 일을 했는데 흙색깔은 짙은 황토색이었다. 처음엔 부드럽더니 깊이 들어갈수록 흙이 단단해 보였다. 지관이 한 삽 정도 더 파라고 해서 나온 흙을 손으로 비벼보았더니 보슬보슬해서 뿔뿔이 흩어졌다. 마사토 같았다. 설사 이젠 물이 생긴다 해도 쉽게 빠져서 젖어있지는 않을 성싶었다. 아무튼 이곳은 어머니 말대로 전에 계시던 임실에 비하면 면적도 작고 주변에 큰 나무들이 많아서 답답하긴 해도 차도를 끼고 있어서 편리하다. 게다가 땅이 좋다니 아버지와 자손들도 모두 편했으면 좋겠다.

 

  예상한대로 거리가 가까우니까 아무래도 자주 다니며 관리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한데 초청도 안 했는데 어디서 왔는지 묘 주변에 불청객인 아까시나무가 나타났다. 내가 아까시 향과 아카시아꿀을 무척 좋아하지만, 산소 옆을 아까시나무에는 조금도 내어줄 수 없었다. 오늘도 동생이 아까시나무를 베면 나는 따라다니면서 제초제인 근사미 원액을 붓으로 발라주었다. 하루속히 아까시나무가 산소 근처에서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요즘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보면 매장문화에서 점점 납골당이나 자연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납골당은 화장 후 유골함에 담아 안치하는 곳으로 보고 싶을 때 언제나 방문해 참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나 안치 기간이 종료되면 이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자연장은 유골의 골분을 나무, 화초, 잔디 주변에 묻어주는 친환경 방법이다. 나무 밑에 모시는 수목장은 규칙적인 납골당에서 벗어나 조금은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유골만을 땅속에 모시는 것이라 한 번 모시면 나중에 이장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자연장으로 모실 때는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곳을 선택하기가 어렵기에 미리미리 알아봐서 결정해야 할 것이다.

 

  화장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산이나 문중 산이 없거나, 자손이 있어도 멀리 있어서 관리하기가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그중에는 매장된 조상 묘를 파서 아예 유골을 가루로 만든 다음 일정한 장소에 뿌리는 산골(散骨)방식으로 아예 신경 쓰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국토가 좁아서 우리나라 장례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뀌는 추세라고 해도 고급 공무원이나 정치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 등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명당을 잡아 매장을 하지 않던가?

 

  20176, 경북 안동에서 우리나라 장례장묘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를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기조 발제에서 차상욱 경북대 교수는, “한국 장례·장묘 정책과 법·제도의 흐름을 볼 때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지만, 최근 대법원 판례에서 인정된 분묘기지권의 존재는 매장문화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장사정책을 펼 때 매장문화에 대해서도 소수자 보호 차원에서 유념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차 교수의 발언은 나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20186,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국 유해 158구가 북한으로부터 유해를 받아 오산기지를 거쳐 미국으로 송환되었다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찡했다. 송환된 유해는 고향이나 미국의 현충원 같은 국립묘지에 안치되었다는데 70년이 다 된 지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만일 화장했더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누구나 한 번 오면 가야 하는 것, 아무리 장례문화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나는 부모님 산소를 보살피며 사는 것이 효의 실천이라 여기며, 사는 날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2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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