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확찐자

2020.05.02 14:05

정남숙 조회 수:0

나도 확찐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맑은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진다. 소나기는 예로부터 남의 집 처마 밑에 들어가 잠시 피하는 것이 상책(上策)이다. 멈추었는가 싶던 소나기가 다시 또 쏟아지고 있다. 온 하늘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이고 뇌성벽력(聲霹靂)을 치고서야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중국 우한(武漢) 코로나소식이 전해졌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잠시 피하고 기다리면 멈추고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잦은 소나기는 엄청난 물난리를 알리는 예고편(豫告篇)에 불과했다. 코로나 바이러스19의 위력은 확진자(確診者)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나 시시각각으로 우리를 욱조여 오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가급적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권고사항을 들어 방콕생활이 시작되어 원치 않게 나도 확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確診者)는 처음에는 하나 둘, 넘버를 달고 서서히 등장했었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중국인 여성이 최초의 감염자로 확인되자, 우리나라 정부는 감염병의 수준을 구분하여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정한 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코로나19 증상 사고수습본부를 설치했었다. 그런대로 염려 반 기대 반으로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확진자 30번에 머무르면서 소강상태(小康狀態)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31번 환자로 인한 대구, 경북, 신천지가 나타나면서 환자 수는 상상을 초월하여 기하급수적으로 하루에 몇 백 명씩 불어나며 사망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정부는 숨가쁘게 위기 단계 중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각 급 학교 학사일정 조정과 기업 원격근무를 장려하며 발병과 예방에 대한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분간 종교, 체육, 연예 등 집회자제가 요청되고, 외출자제와 부득이한 외출 시 마스크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손 씻기, 기침예절 준수, 눈과 코 입 안 만지기, 발열 기침 증상 시 보건소나 지역+120, 1339 콜센터로 상담 연락을 바람란다는 문자가 쉬지 않고 들어왔다.  

 

  2월 들어 활동이 잠시 중단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를 필요 없어 늦잠을 푹 잘 수 있어 좋았다. 하루이틀 집에서 딩굴다 보니 싫지 않았다. 그러나 외출금지가 길어지다 보니 나만 허송세월하는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귀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버릴 수는 없지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집안을 둘러보니 눈길 닿는 곳마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한 일들이라 급히 서둘지 않아도 되는 일거리를 찾아 수북이 쌓아놓았다. 그러나 첫 2주간의 활동중지 기간이 지나고 낼 모래 활동이 개시될 수 있음에 다시 활력을 되찾기도 전, 우리지역 확진자 1, 2, 3호가 연이어 발생되면서 지역 내 감염위험이 확산될 우려가 있어 초긴장상태가 되었다. 장기간 활동중단과 함께 외출금지에 발목이 붙들렸다. 첫 활동자제기간은 2주라는 기다림이 있었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는 기한도 예측할 수 없는 무기한 자가격리 생활이 시작되고 말았다.

 

  몇 해 전, TV드라마에 등장한 배우 나문희씨가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 하던 대사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 난리를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치료제도 백신도 아직 개발되지 않아 정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주의사항을 지키고 예방차원으로 생활 수칙을 잘 따라 지키는 도리밖에는 없었다. 기약 없는 집콕 생활에 싫증이 났다. 살아있는 자의 생활이 아니다. 식욕도 떨어지고 삶의 의욕도 상실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이대로 사라지고 말 것만 같은 두려움과 답답함이 몰려왔다.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며 미워하고 두려워 할 문제도 아니었다.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고,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소일거리를 찾기로 했다. 기왕 대처해야 할 재앙에 위축되지 말고 분연히 맞서 일어서야 한다. 겁내지 말자. 나를 다독이며 방역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 같았다.

 

 

 

 마침,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친정동생이 햇 푸성귀들을 한 짐 내려놓고 갔다. 커다란 자루 속에는 내 머리통만한 무 3개와 햇마늘, 쪽파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엊그제 유정란 한 박스와 어린 상추, 아욱, 쑥갓, 부추를 보낸 것도 아직 그대로 있는데, 내친 김에 부지런을 떨어 파김치를 담고 무생채와 무나물을 만들어 놓았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언제 넣어 놓았는지 조차 모를 것들이 답답한 내 속처럼 꽉 들어차 있었다. 부산 여동생과 진해 시동생 집에서 보내준 생선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깨끗이 손질한 전복을 비롯하여 왕새우, 고등어, 가자미, 코다리, 삼치, 대구포, 조기, 대합 등 이름 모를 생선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대책 없이 용도에 따라 굽고 찌고 끓여 놓고 보니 많아도 너무 많다. 9첩 반상이 훌쩍 넘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혼밥을 시작한 이래 이렇듯 많은 상차림은 없었다. 코로나19 덕에 내 이성을 잃고 내키는 대로 하다 보니 도를 넘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말았다. 애써 만든 음식을 그대로 버릴 수는 없어 며칠을 먹어 치우다보니 내 몸은 과식으로 확진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외출을 금지하고 조용히 집콕하고 있던 친구들이 무료함을 달래며 서로를 위로하는 문자들이 왔다. 왜 무섭고 혐오스러운 ‘확진자’라는 문자를 겁도 없이 보내는지 불쾌했었다. 그러나 자세히 내용을 읽어본즉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확찐자’가 된 것을 희화화(戱畵化) 한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나도 평소보다 4~5Kg은 더 찐 상태이니 우리 아이들에게 ‘나도 확찐자’라는 문자를 보냈다. 놀라는 아이들에게 설명으로 마무리하고, 얼마 후, 서울에 올라가니 막내손녀는 나를 보자마자 방에 들어가 체중계를 먼저 들고 나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제 어미가 부탁했다는 것이다. 살이 좀 확찐들 어떠랴.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갈 소나기성이 아니던가? 코로나바이러스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다. 겁내지 말고 방역시스템에 적응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는 것이 상책일 것 같다.  

 

 참고 기다리는 인내(忍耐)는 비생산적으로 무작정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할 일없이 시간을 낭비하거나 허비하는 것도 아니다. 인고(忍苦)의 의지력은, 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해 사생결단(死生決斷) 하고 노력하는 전략 못지않게 매우 유용한 전략적 전술에 속한다. 이보전진(二步前進)을 위해 일보후퇴(一步後退)가 필수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현대인들이 겉으론 멀쩡해도 속으로는 엄청난 외로움과 나약함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 한다. 허긴 지금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러한 시점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아에 충실한 만족한 삶을 영위하면서 꿈과 비전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열정을 불태우며 행복과 보람에 찬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2020.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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