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면 어떠랴

2020.05.17 14:14

박제철 조회 수:59

밴댕이면 어떠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밴댕이 속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통 속이 좁거나 마음씀씀이가 소심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하지만 온갖 일에 걱정없이 만사가 태평인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도 108번의 괴로움과 망령된 생각이 일어난다하여 염주알도 108개로 만들어 번뇌를 다스리고 있지 않던가? 걱정거리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내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코로나19는 나의 일상생활을 많이도 바꿔놓았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교당에도 가지 못하고, 수필공부하러 학교도 가지 못하고, 매일 오후면 나가야하는 봉사활동도 나가지 못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삼식(三食)이와 방콕생활을 하면서 신앙공부와 수필공부로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려 하지만 장기전으로 가다보니 게을러지고 지친다.

 

 매일 오후엔 인적이 드문 월드컵경기장에서 걷는 운동이 유일의 일과이며 가끔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를 하기도 한다. 돌아다니다가 코로나라도 걸리게 되면 죽을지도 모르고 자식들에게 원망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조심한다. 외출이라도 하려면 마스크부터 챙기고 간혹 외식을 하려면 사람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아도 뒷면도만 했지 앞면도는 미리 집에서 깨끗하게 하고 갔다. 앞면도를 하려면 면도사가 얼굴을 매만져야 하고 누가 사용한지도 모를 축축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기도 한다. 숨을 쉬면 수건에 있던 미생물이 오롯이 숨과 같이 내 몸속으로 들어올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오늘도 이발소를 가면서 앞면도를 깨끗이 하고 갔다. 이발을 하면서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지난번 오징어 무국을 끓이다 화재가 날뻔한 일이 있었다. 문을 열어놓고 통풍을 시켰음에도 집안이 온통 탄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를 어떻게 없애야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때쯤엔 이미 면도사가 앞면도를 하고 있었다. 면도를 다하고 왔으니 이제라도 그만 두라고 할까아니야, ‘전주는 청정지역이며 다른 사람도 다하는데 괜찮겠지.’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면도를 다했는지 예상한대로 축축한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 지금 쓰고 있는 수건은 무슨 수건일까? 다른 사람이 쓰던 수건은 아닐까? 면도사가 다른 사람 면도 하고나서 손 소독은 하고 하는 것일까? 별별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머리까지 감고 마지막으로 면도사가 크림을 얼굴에 발라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결벽증환자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결벽증이란 지나치게 깨끗한 것에 집착하거나 추구하는 병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엔 깨끗하고 정리정돈 된 것을 평소에 좋아했다. 결벽증환자 중 어떤 사람은 병원이 세균의 온실이라 생각하여 병원에 가는 것을 거부하다가 시기를 놓쳐 죽은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결벽증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자기가 먹을 점심도시락과 물병을 가지고 출근했다. 동료들과 같이 일반음식점이나 구내식당에 가는 일도 없었다. 음료수도 자기가 가져온 물병 외의 물은 마시지 않았다. 특히 출입문을 열고 닫을 때도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깨내 손잡이를 닦고 문을 여닫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깨끗한 것만 추구하는 그 친구는 오래 살 것 같았는데 40대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평균잠복기가 5.5일 이라고 한다. 걱정 속에 6일이 지나고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10일이 지나고 보니 이젠 괜찮겠지 하는 안도의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2주는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14일인 2주가 지나고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왠지 찝찝했다. 그러다보니 20여 일이 지나 다시 이발소에 가야할 때가되었다.

 

 이태원발 코로나19는 밴댕이나 결벽증과는 관계가 없다. 밴댕이가 아닌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의 환자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나 혼자 잘 챙긴다 해도 주위사람들에 의해서 찾아온다. 그래도 내가 조심하고 챙기는 수밖에 별수가 없다. 한번 경험했으면 두 번 다시 마음이 괴로울 일은 하지 않으면 된다. ‘오늘은 앞면도는 하고 왔으니 뒷면도만 해주세요.’라고 미리 말할 것이다. 너무 소심하다며 밴댕이 속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떠랴. 내가 조심하여 코로나19를 지혜롭게 넘기고 싶을 뿐이다.

                                                                                                                                                                                    (2020. 5. 17.)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07 붉은 아카시아 백승훈 2020.05.19 41
1506 내 인생의 족적을 지우고 김길남 2020.05.19 31
1505 5월에 띄우는 편지 최상섭 2020.05.17 34
1504 5월에 띄우는 편지 최상섭 2020.05.17 10
» 밴댕이면 어떠랴 박제철 2020.05.17 59
1502 나의 작은 소망 곽창선 2020.05.17 35
1501 농막을 단장하며 최동민 2020.05.16 46
1500 5월에는 편지를 쓰자 최상섭 2020.05.16 9
1499 노인이 큰소리 치며 사는 법 덕원 2020.05.15 9
1498 대통령의 지지율 한성덕 2020.05.15 5
1497 영의 눈 전용창 2020.05.15 4
1496 두려움을 모르는 간호사들 오창록 2020.05.15 6
1495 孝핑 김학 2020.05.14 5
1494 책 한 권이라도더 읽히고 싶어서 김성은 2020.05.14 6
1493 엄마의 반찬 가게 김금례 2020.05.14 7
1492 철쭉꽃 백승훈 2020.05.12 7
1491 샬롬 한성덕 2020.05.12 20
1490 퍼싱 전차의 영웅 두루미 2020.05.12 3
1489 생명줄 전용창 2020.05.10 5
1488 잔디밭과 마음밭 박제철 2020.05.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