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띄우는 편지

2020.05.17 14:50

최상섭 조회 수:34

<5월에 띄우는 편지>

 

 

 

外叔父前 上書

 

싱그런 5월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초록의 계절 5월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외갓집 담장 너머 공동산에 하얗게 피었던 그 아카시아꽃이 수북하게 꽃을 피우고 벌 나비를 부르는 호시절에 외숙부님 그간 강녕하신지요? 지금은 남의 집이 되었지만 외갓집 대문간에 크게 서 있던 벽오동나무도 파란 꽃을 피우고 특유의 향긋한 향을 발하겠지요?

 

 

 

 새삼 물같이 흘러가는 세월의 발목을 잡아둘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어찌하겠어요? 변하는 세상에 맞추어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도리밖에요. 저는 늘 외삼촌들과 이모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험난한 세파를 헤치고 현실에 충실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외갓집은 인근에서는 제일 부잣집으로 소가 몇 마리요, 일하는 일꾼들이 대여섯 명이었고, 그 외갓집 땅을 밟지 않고는 오리도 갈 수 없다는 대 지주였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외증조부께서는 동학혁명때 접주로 참가하시어 개혁의 세상을 깨우치려던 선구자이셨지요. 패퇴의 미완혁명이 되자 고군산열도로 난을 피해 3-4년을 숨어지내시다가 나라가 평온하여 검은 소 한 마리를 몰고 귀향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흔들었던 깃발을 가지고 오시어 오래도록 농 속에 보관하다가 국가의 검열이 두려워 태웠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외갓집은 일촌의 부자요, 개화의 깃발을 든 혁명가의 집안이셨습니다.

 

 

 

 외조부님께서는 그렇게 일촌의 부자이시면서 더군다나 일본이 통치하던 시절에 가까이에서 일본인과 생활하셨으면서도 53녀의 삼촌들과 이모들을 초등학교만 가르치고 상급학교 진학을 안 시키셨는지 모르겠어요. 장녀인 어머니께서는 허구한 날 콧노래로 서당에서 한글과 한문을 깨우치시고 학교에서 못 배우신 한을 한탄하셨습니다. 숙부님께서는 그때 초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김제에서는 제일 유명했다는 김제중학교에 입학시험을 봐서 2등을 했다는 말씀을 어머니한테 들었고 숙부님께서도 술을 드시면 신세타령처럼 제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8남매 중 저의 어머니와 큰 외숙이 타계하시고 이제는 숙부님이 제일 맞이이십니다. 숙부님 또한 사랑하는 외동아들과 숙모님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시고 홀로 남으시어 허구한 날 술로 세상을 비관하는 처지를 이해못하는 것은 아닌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흔한 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되지 않습니까? 원래 외갓집 식구들이 술 하면 대작하는 집안이지만 그래도 혼자 된 처지에 술국은 누가 끓여 주고 속조차 달래 줄 사람이 없으니 어려운 말이고 죄송하지만 적당히 마시고 이제 그만 그 한을 벗으셔요.

 

 

 

  숙부님은 기억하시지 못하시겠지만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직접 지게로 토끼 한 쌍이 들어있는 토끼장을 지고 오셔서 제게 키워보라고 하셨어요. 그때 얼마나 좋고 신이 났던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풀을 뜯어오곤 했지요. 그 토끼가 어느 날 죽었을 때는 며칠을 울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이 벌써 6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숙부님도 저도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부모님 잘 만나 대학을 졸업했고 그 덕에 군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다 전역했으며 직장생활도 평생 잘하여 정년 퇴임을 했습니다. 지금도 평생교육 학력인정 학교에 나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 부모님 잘 만난 덕이지요.

 

 지금 바라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소망은 외숙부님이나 제가 건강해야 주변 사람들의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신 고려장이라는 요양병원 신세를 안 지려면 우선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숙부님 건강관리는 숙부님 스스로 잘하셔요. 일전에 보내드렸던 비타민 C는 다 드셨는지요? 떨어지면 다시 사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하면서 첫 봉급을 받아 집으로 우송했더니 작고하신 아버지께서는 그때 편지의 서두에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고 쓰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건강이지요.

 

 외숙부님의 건강과 편안이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리면서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내내 강녕하셔요.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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