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족적을 지우고

2020.05.19 02:11

김길남 조회 수:31

내 인생의 족적을 지우고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100세 인생이라 한다. 우리 아버님 세대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여서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이 적었다. 수명이 그만큼 길어졌다. 그렇다 해도 내가 앞으로 살날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내가 남긴 족적을 지워가야 한다. 남기고 가려해도 자손들이 반길 것이 별로 없다. 더 힘들기 전에 하나하나 없애고 가려 한다.

 

 어려서는 사진 찍기가 어려웠다. 사진관도 가까이 없었고 불러다 찍으려 해도 값이 비싸서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님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지금도 아쉬운 일이다. 큰 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랬다. 또 사진을 남기려는 의식도 없었고 사회문화가 그 때는 그런 정도였다. 내가 처음 찍은 사진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덕진공원으로 소풍 가서 연못가의 버드나무에서 찍은 것이다. 지금도 남아있고 제일 어린 내 모습이다. 중학교 때도 미륵사지에 소풍가서 찍은 것 한 장 뿐이고, 사범학교 다닐 때도 남고산성으로 소풍가서 찍은 것 한 장뿐이다. 교직에 들어가서부터 사진을 많이 남겼다.

 

 거실 진열장에는 앨범이 10 권 꽂혀 있다. 그 안에는 내 인생의 족적이 남아있다. 하나하나 열어보면 그 당시의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 사진도 많다. 떠나고 없어서 그리워지기도 하고 만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한 인물도 여럿이다. 당시는 오래 남기고 싶어서 찍었겠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모습도 있다. 또 어디에서 찍었는지 모르는 사진도 더러 있다. 단체 사진은 ‘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할 뿐 내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도 있다. 이제 더 두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정리하기로 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다. 밖에 나갈 수도 없어 사진을 정리하기로 하고 앨범을 꺼냈다. 우선 흑백사진첩은 귀하고 많지 않은 내용이니 남기기로 하고 어머님 사진첩은 잘 모시기로 했다. 나머지 사진첩 8권을 꺼내 놓았다. 미리부터 가족사진은 모아놓았기에 가족사진부터 정리했다. 아들딸의 사진은 모두 저희들 집으로 보내서 없다. 우선 큰 손녀의 어린 시절 것부터 모아서 정리했다. 둘째손녀, 큰손자. 끝 손자. 외손녀와 외손자 순으로 정리했다. 다음에 가족이 여행하거나 행사에 참여하여 찍은 것들을 정리하고 등산하면서 찍은 사진도 가렸다. 마지막으로 내외가 외국 여행한 사진들을 나라별로 몇 장씩 선정하여 남겼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살펴야하니 하루에 다 하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마치니 8권이 3권으로 줄었다. 정리하면서 보니 앨범 한 권에 500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2,500장의 시진을 버린 것이다. 모두 모아 봉지에 담아 소각용 탱크에 던져 넣으며 잘 가라고 전송했다. 더 간직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내 인생의 족적 일부가 사라졌다. 다시는 보려고 해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기도 하다. 평생 교직에 있었기에 학교에 관련된 사진이 많았다. 제자들의 졸업사진과 수학여행이나 소풍 때 찍은 것이 많은데 모두 없애버렸다. 그들이 다시 찾을 까닭도 없고 나를 생각해 줄 사람도 없다. 그저 내 추억 속에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들의 사진도 있지만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도 모르니 지워버렸다. 사진은 없앴지만 머리에 남아있는 얼굴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미 저 세상에 간 사람이 많지만 만나고 싶은 그리운 이도 여럿이다. 내가 살면서 맺은 안연들이다.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고마운 분들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내 삶이 있었다.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그들에게 감사한다. 그들 가운데는 나에게 은혜를 베푼 분들도 많고 격려하고 아껴준 분들도 있다. 내가 그들에게 잘못을 저질러 가슴 아프게 한 이도 있고 손해를 끼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용서를 빈다. 인연을 맺은 분들, 남은 삶 즐겁게 보내고 자손들도 일일창창 번성하기를 빈다.

                      ( 2020. 5.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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