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환한 미소

2020.05.19 15:45

한성덕 조회 수:34

아버지의 환한 미소

 

                                                              한성덕

 

 

 

 

 

 

 

  일상의 삶에는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버지가 위독한데 서류뭉치를 들고 왔다 갔다 한다면, 다급한 일로 입원해야 되는데 늑장을 부리며 움직인다면, 정치적 행보에서 소신을 밝혀야하는데 뭉그적거린다면, 이 모두가 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의 꿈이, 초등학교 선생에서 목사로 바뀌었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친 봄방학이었다. 무주제일교회 부흥집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지만 내 소신대로 밀고 나갔다. 급한 건 아니지만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모님 몰래 시험을 치르고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부모님께 합격증을 내놓기로 했다. 불호령이 떨어질 걸 생각하니 겁이 잔뜩 났다.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한 게 처음인지라, 두려움이 무서움으로 번지면서 ‘내 말을 거역한 자식은 필요 없다. 당장 집을 나가거라.’하실 것만 같았다. 그래도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인 걸 어쩌겠는가? 그야말로 고양이 앞의 쥐요, 도 아니면 모였다. 잔뜩 긴장한 채 아버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합격증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긴장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이 네 길이로구나. 알았다."

 

하시는 게 아닌가? 귀를 의심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때는 기쁨도, 감사도, 눈물도,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아버지 앞을 얼른 빠져나오는 게 대수였다. 예배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감히, 강대상 앞 가운데는 앉지도 못하고 언저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기쁨과 함께 감사와 감격이 차올라 울고 또 울었다.

 

  세월이 꽤 흘렀다. 아버지께서 목회를 하셨기 때문에, ‘목회는 무거운 짐이요, 가시밭길인 것을 잘 알기에 반대했다’고 하셨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어찌 알았으랴? 부모를 거역하면 ‘최고의 악질분자’라고 여겼던 나로서는 죄인 중의 괴수일 뿐이었다. 그때 가슴 깊이 담아두었던 게 ‘목회를 잘 하는 것만이 최고의 효도’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성실을 재료로 삼고, 몸소 실천하며 열정적으로 했다. 그 바람에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교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신명나는 목회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보신 부모님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셨다. 그리고 20139월에 아버지는 천국으로 가셨다.

 

  내게는 목회가 급한 게 아니라 중요한 일이었다. 나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서 일궈낸 엄청난 사건이다. 지금도 목회를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다. 그래도 찌꺼기처럼 남는 게 있다. ‘군복무후에도 무주초등학교 서무직원으로 계속 근무할 걸, 부모님을 좀 더 설득해서 전적인 동의를 얻을 걸, 장남으로서 7년 동안 신학공부에 얽매였으니 불효자식이 아닌가? 부모의 말을 거역했으니 초기에는 얼마나 괘씸하게 여기셨을까?’ 하는 생각들이다.

 

 

 

  5월이면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신학교를 그토록 반대하시더니 합격증을 내밀자 ‘알았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아빠, 목회할 때는 잘한다고 활짝 웃으면서 퍽 좋아하시던 장로님, 나를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한다 하시던 아버지, 이런저런 사연들이 엮어지면서 5월의 파란하늘이 더 높아 보인다. 중요한 일을 스스로 잘 선택했다며, 하늘의 아버지께서 환한 미소로 화답하시는 건가?

                                                 (2020. 5.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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