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7 12:52
줍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오늘은 텃밭에 내려서자, ‘하지감자’가 흰 꽃들을 뽐내며 다투어 피우고 있다. 족히 60킬로그램이 될 씨감자를 100여 평 그렇듯 심었으니, 하지 무렵 감자를 얼마나 캐게 될는지 들뜨기까지.
그 하지감자들의 내력이다. 지난 2월말에 강원도 씨감자를 30킬로그램 사서 때맞춰 심었다. 그런 이후에도 수시로 싹이 난 감자들을 파종적기 아랑곳 않고 주워 와서 심은 게 줄잡아 30킬로그램. 내가 그 여러 종류의 씨감자를 어디에서 주워온 거냐고? 내가 격일제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어느 아파트의 음식물쓰레기통에서 보이는 족족 주워온 것들이다. 사실 감자밖에도 내 농장에는 ‘줍기’내지 ‘주워오기’의 작물들이 꽤나 많다. ‘씨토란’ 5킬로그램 정도, 늙은 호박 여러 덩이, ‘열매마(하늘마)’ 5킬로그램 정도, 싹 난 고구마 10덩이 등. 그렇게 주워 와서 기르는 작물들의 작황(作況)은 하나같이 꽤 좋은 편이다. 아파트 부인네들은, 가령 감자나 고구마가 봄이 되어 싹이 트고 쭈글쭈글해지자 먹기가 마땅찮다고 거의 박스째 그처럼 미련 없이 내다버렸겠지만, 농부이기도 한 나한테는 그것들이 힘들이지 않고 싹을 낸, 우량종자들이었던 셈이다. 사실 종묘사에서 그것들 종자들을 다 사자면, 꽤나 돈이 들었을 터. 그렇잖아도 위에서 소개한 ‘하늘마’와 ‘씨토란’은 구하지 못하고 있었거늘... .
참말로, 내 말년의 직장은 흔히 하는 말로,‘멋져부러’이다. 급여 말고도 덤으로‘줍기’ 내지 ‘주워오기’의 수확물이 위에서 소개한 종자들밖에도 참으로 많다. 늦가을에는 낙엽포대를 승용차 트렁크에 바리바리 실어와서 ‘명박산성’이 아닌 ‘근택산성’으로 만든 후 퇴비로 만들어 쓴다. 크고 작은 ‘딸기대야’ 따위를 보이는 족족 주워와서 닭모이통 등으로 삼는다. 키 큰 선풍기를 주워 와서 ‘들깨 까불기’풍구(風甌)로 쓴다.
실로, 하루걸러 하루 나의 일과는 새벽에‘줍기’와 ‘쓸기’로 시작된다. 농부이기도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이기도 한 나. 출근하여 경비초소에 닿자마자 경비원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목장갑을 끼고, 쓰레받기와 집게와 빗자루를 챙겨들고 담당구역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를 줍고 낙엽을 쓸게 된다. 한편, 재활용품분리수거장에 들러, 음식물쓰레기통 충만 여부도 챙겨 보아야한다.
실로, 내 새벽의 걸음걸음이 죄다 돈이다. 쩐이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을 위해, 담배꽁초며 음료수 팩이며 맥주캔이며 온갖 걸 마치 ‘보물찾기’처럼 군데군데 감춰둔(?) 입주민들의 그 눈물겨운 배려에 늘 감사할 따름. 게다가,‘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선거공약으로 내건 ‘시급제(時給制) 인상’이 실행되어, 이제는 꽤나 매력 있는 아파트 경비원 생활.
새벽이 되면, 나는 또다시 다음과 같은 기대감으로 출근을 서두른다.
‘이번에는 어느 입주민이 또 어떤 귀중품을 ‘중고시장에(?)’내놨을까? 이번에는 염소먹이나 강아지먹이나 닭모이로 삼을 음식물을 잔뜩 내놔도 괜찮겠는 걸.’
랑데부 작품 읽기)
이삭줍기 / 윤근택(수필가)
201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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