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발 능력 찾아 주는 친절

2020.06.20 13:33

노기제 조회 수:3

    

HIT_9338.jpg



 20180314                                        미개발 능력 찾아 주는 친절(천사였을까)

                                                                                                                                                   노기제

 

   만나고 싶은 이상형이 있지만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내가 원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맘에 드는 사람이 아닌 걸 어찌 다른 사람이 내 맘에 흡족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혹 어쩌다 맘에 드는 사람 만났다면 한 번 쯤, 의심이 간다. 하늘이 보내신 천사가 아닐까 라는.

   Montana 주에 위치한 Whitefish로 스키 트립을 떠났다. 3월로 들어섰으니 성질 급한 봄기운이 느껴질 만도 하지만, 아직은 춥다. 서른 두 명의 스키 매니아들이 함께 했으니 우리가 묵는 호텔(Viking Lodge), 셔틀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스키장이 북적댄다.

   날씨는 구름 잔뜩 끼고 시야가 어둡다. 심할 땐 바로 앞에 가는 스키어가 잘 안 보일정도다. 눈은 펑펑, 소리도 안 지르고 장소 불문하고 내려앉는다. 다행하게도 산세가 억세지 않고 부드럽게 아담하다. 첫 날 Ambassador(스키장 상주 가이드)와 한 번 전 코스를 누볐는데 혼자서도 잘 찾아다닐 만큼 만만하다.

   일주일 묵는 동안 험한 날씨가 닷새 반이다. 수요일 아침 반짝 얼굴을 내민 해가 반갑다. 옳거니. 오늘은 서둘러 가자. 무엇을 하던, 안전을 염두에 두고 몰려다니지 않는 것이 내 취향이다. 멤버들 스키실력이 모두 상급들이라 자칫 코스를 선택할 때나, 출발하는 순서에 따라 서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혼자, 내 페이스대로 입맛대로 골라서 타면 편하다.

   첫 chair에서 함께 앉게 된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꼭대기까지 가면서 가볍게 나누는 대화가 신선하다. 인사치례로 같이 타겠다하면 보통은 짧게 sure 로 대답을 듣는데 “Please do, thank you.” 까지 나온다. 마음이 확 당겨서 스키가 아닌 Board로 주제를 삼아 대화를 이어간다.

   Snow Board가 배우고 싶어서 몇 번이나 운을 뗐지만 번번이 남편의 반대로 시작을 못하고 나이만 늘렸다. 지금도 무척 해 보고 싶지만 이젠 늙어서 틀린 것 같다고 하소연 했더니, 대뜸 나이가 뭔 상관이냐고 용기를 준다.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고. 필요한 gear 갖추고 시작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준다.

   처음 만난 사람과 스키를 탄다. 물론 그 사람은 Boarder. 그 지역 주민이니 앞세우고 난 뒤 따른다. 첫 코스가 모글이다. powder snow가 푹신해서 나도 겁 없이 탈 수 있다. 물론 혼자라면 절대 들어서지 않을 코스다. 날씨도 화창하니 시야가 확 트여서 오랜만에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땀이 나도록 신나게 산을 내려온다.

   모퉁이 돌아 내가 안 보이면 주저앉아 내가 보일 떼까지 기다려 준다. 험한 코스 잘 따라 타는 실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일주일만 가르치면 board도 잘 타겠다고 확신을 준다. 처음 3일은 가르치는 자기를 무지 미워하겠지만 그 후엔 억수로 고마워 할 것임을 잘 안다고 자신만만하다. 그 말에 난 이미 날렵한 Boarder가 되어 가파른 눈 산을 내려온다.

댓글 0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들러주시고 글 읽어 주시는 분들께 [2] 노기제 2022.12.01 42
60 남은 한 사람, 내 편 file 노기제 2020.05.09 10
59 스피드 티켓 file 노기제 2020.05.09 39
58 내가 코로나 감염자처럼 보였나?; file 노기제 2020.05.09 49
57 이 남자들의 사랑법 file 노기제 2020.05.09 45
56 산 속에서 보내온 무선 통신 file 노기제 2020.05.09 17
55 뜨거웠던 시절 file 노기제 2020.05.09 53
54 스키장에서 만난 소년 file 노기제 2020.05.09 14
53 심사위원 기준에 맞추려 말자 file 노기제 2020.05.09 20
52 "동창생 헌성이가 갔어" file 노기제 2020.05.09 176
» 미개발 능력 찾아 주는 친절 노기제 2020.06.20 3
50 하느님의 곤란한 입장 노기제 2020.06.20 9
49 바꾸고픈 나의 인성 노기제 2020.06.20 35
48 다시 방해 받은 각막 이식 노기제 2020.06.20 46
47 선교용 모금운동 이대로 좋은가 노기제 2020.06.20 17
46 허락 받지 못한 것 노기제 2020.06.20 48
45 스키장 다녀오던 버스에선 무슨 일이 노기제 2020.06.20 44
44 마음 뚜껑을 활짝 열고 정리 정돈 할 때 [2] 노기제 2020.06.20 58
43 재능 기부로 내 생활 윤택하게 [2] 노기제 2020.06.20 61
42 요로케 찌져서 가지구 가 [2] 노기제 2020.06.20 71
41 기타선생님 힘내세요 [2] 노기제 2020.07.06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