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사육

2020.06.24 13:45

김현준 조회 수:9

img76.gif



병아리 사육

 전민일보
|


손녀가 병아리 한 마리를 집에 가져왔다. 달걀노른자를 닮은 노랑 병아리였다. 딸네 집에는 고양이가 있어서 병아리를 못 기른다는 게 이유였지만, 아무 데서나 똥을 싸고 모이를 헤적거리는 병아리를 딸 내외가 좋아할 리 없었다.

아이 할머니도 병아리 키우기를 싫어하는 편이라 나에게 미리 전화를 한 뒤였다. 마침 학교 독서 골든벨대회에서 아이가 상을 받았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아, 병아리 사육을 허락했다. 다만 키우다 죽을 수도 있으니 그쯤은 각오해야 한다고 주의를 시켰다.

나는 병아리가 다 크면 어찌할까 물었다.

"할아버지가 몸보신으로 잡아먹지, 뭐."

대답이 시원스러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병아리가 혼자 지내니 외로움을 알까? 식사시간을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심심하면 먹고 싸고, 울어대곤 했다. 집안에 아무도 없이 고요해지면 병아리는 울음을 그친다. 거실에 불이 켜지고 문틈으로 불빛이 비치면 '삐악삐악' 아는 체를 했다.

병아리가 먹는 모이의 양이 늘고 그에 비례하여 똥의 양이 많아졌다. 처음엔 아기 똥 치우듯이 별 불평 없이 물티슈로 닦아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졸지에 애완 병아리를 돌보게 될 줄이야.

고향 집 마당엔 항상 닭 십여 마리가 놀이터인 양 놀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지깽이로 볼때기를 얻어맞은 탓인지, 강아지는 짐짓 병아리들을 보고도 못 본 체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헛간 짚더미에 낳은 달걀을 내게 가져다주셨다. 달걀이 뜨뜻하여 병아리가 알 속에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처음 먹을 때는 비릿하여 목구멍에 넘기기 어려웠다. 흰자만 마시고 노른자는 버렸다. 나중에는 노른자가 더 고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만큼이라도 키가 자란 것은 어머니의 정성 덕이었다.

"할아버지! '아리' 잘 있어요?”

나영이의 깜짝 방문이다. 아리는 그 아이가 지은 병아리 이름이다. 나영이는 병아리를 맡겨두고 며칠 동안은 매일 찾아와 먹이를 주며 배설물을 닦아주었다.

날개죽지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아무것이나 주지 말라고 했다. 병아리 사육에 조예가 있는 듯이 굴었다.

친구들을 데려와 자랑하고 전에 길러본 이야기까지 하며 아는 체를 했다. 나영이는 동물 키우기를 좋아한다.

작년에는 팬더 마우스와 시 몽키, 그리고 장수하늘소를 키웠다. 나는 항상 나영이의 주문을 받아 뒤치다꺼리했다. 올해는 나영이가 전학한 뒤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아이가 병아리를 돌보지 않으면 내가 보살피려니 했는데, 일은 아내 몫이 되었다. 처음부터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칠 때 아내는 자기의 일이 될 것을 예견했나 보다.

아내는 닭똥을 치우고 모이를 주느라 일거리가 늘었다. 푸성귀를 잘게 썰어주고, 물그릇을 엎어버려도 탓하지 않고 새 물로 갈아주었다. 묽은 똥을 싸면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러는지 걱정을 했다.

나영이한테 문방구에서 파는 병아리 모이를 사오라고 하란다. 병아리 주인은 나영이니까 관심을 가지라고 그러는가보다.

아이는 병아리를 며칠 키우다 죽이고 슬퍼하는 그런 이야기의 주인공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리'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점차 귀엽지 않은 중닭으로 변하자 사랑이 식었는가보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노랑 병아리일 때 친구들을 데려와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이제는 어찌 할 것인가? 무럭무럭 자라는 닭을 어떻게 할까?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밖에다 날려 보낼 수도 없고, 키워서 잡아먹을 수도 없다.

병아리가 우리 집을 떠났다. 한 달 넘게 자라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배설물 치우기와 냄새가 문제였다. 크게 울지는 않지만, 얼마 뒤엔 이웃의 새벽잠을 깨워 곤욕을 치를 것 같았다. 마침 아들네 집에 다녀가시는 사돈댁이 시골이라 '병아리 길러 보시지 않겠느냐?' 여쭈어보니 그러겠다 하여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동안 노란 털이 빠지고 하얀 깃털로 털갈이했고, 건강하게 자라 서리병아리가 다 되었다.

병아리는 정든 제집을 떠나는 것이 안되었던지 안절부절 못했다. 아내도 심기가 편치 않은 듯했다. 나도 울적하여 집밖으로 나갔다.

아내는 스티로폼 상자에 공기구멍을 뚫고 물그릇과 모이를 넣어주었다.

'아리'가 남원 새 환경에서 잘 적응하며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다. 다음 주말 아이의 친가에서 김장을 한다고 하니, 나영이가 아리를 만날 수 있겠다. 수평아리이니 잘 자라서 좋은 암탉을 만나 유전자를 퍼뜨리고 자자손손 번성하기를 빌어본다.

김현준 수필가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27 하루에 20분을 더 걸으면 신선자 2020.06.30 4
1626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 박제철 2020.06.30 1
1625 반디지치 꽃 백승훈 2020.06.30 2
1624 느린 엘리베이터 두루미 2020.06.29 45
1623 만리장성 팔달령 모택동 2020.06.28 36
1622 순국공원에서 만난 이 충무공 고안상 2020.06.28 10
1621 조중동 펜 꺾기운동 조선컴 2020.06.27 15
1620 웃음꽃 김창임 2020.06.27 46
1619 아내의 세 번째 수술 한성덕 2020.06.27 5
1618 그리운 추억의 초상들 곽창선 2020.06.26 33
1617 [김학 행복통장(81)] 김학 2020.06.26 31
1616 어머니의 이불 정근식 2020.06.26 46
1615 첫 기억 소종숙 2020.06.26 5
1614 필암서원을 다녀와서 신효선 2020.06.25 35
1613 한국이 대단한 이유 톱5 두루미 2020.06.25 36
1612 묵향에 취해 10년 구연식 2020.06.25 42
1611 내 삶의 자리를 내려다 보며 소종숙 2020.06.24 37
» 병아리 사육 김현준 2020.06.24 9
1609 조선시대에도 자가격리가 있었다 이종근 2020.06.24 6
1608 또 다른 두 눈 한성덕 2020.06.2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