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암서원을 다녀와서

2020.06.25 23:56

신효선 조회 수:35

필암서원을 다녀와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가을꽃축제가 열리는 전라남도 장성을 찾았다. ‘노란 꽃잔치’라는 주제로 올해는 더욱 웅장한 규모와 다채로운 꽃들로 장성 황룡강변에 ‘오색의 테마 정원’을 조성했다. 삶에 지친 마음을 '희망'의 상징인 노란꽃으로 물들게 한다는 뜻일 게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려 망설였으나, 그곳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예쁜 꽃들이 손을 흔들며 줄지어 서서 반겨주었다. 꽃구경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전동열차를 타고 어린애 마냥 즐겁게 축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장성의 필암서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필암서원은 광주에 살 때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훌륭한 학자의 발자취를 찾아볼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느낀다. 필암서원은 정조가 ‘해동의 염계(중국 북송 시대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주돈이)이자 호남의 공자’라 칭했던 성리학자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를 추모하고자 세운 호남 최대 사액서원이다.

  선조 23(1590) 김인후의 후학과 호남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기산리에 서원을 세웠다. 그런데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4(1624) 복원되었다. 현종 3(1662) '필암'으로 사액되었으며, 1672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1786년에는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양자징을 배향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철훼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2019710일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필암서원을 포함한 9곳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장성에서는 학문을 논하지 말라'(文不如長城)는 말이 있다. 장성에는 기삼연, 기효간, 김경수, 김인후, 송흠, 박수량, 정운룡 등 뛰어난 학자를 많이 배출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중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김인후다. 우리나라 향교의 문묘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현인 18분을 모시고 제를 지내는데, 현인 18분 중 유일한 호남 출신이 하서 김인후다.

  김인후는 중종 5(1510) 전라도 장성에서 태어나, 중종 23(1528)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했다. 1531년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33년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을 만나 함께 학문을 닦았다. 1540년 별시 문과에 급제해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임용되었다. 이후 훙문관정자와 홍문관저작을 거쳐 1543년 홍문관 박사 겸 당시 세자였던 인종의 스승이 되었다. 중종 38(1543) 기묘명현의 신원 복원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연로하신 부모 봉양의 걸양을 청하여 조정을 떠났다.

 

  세자였던 인종이 즉위하면서 제술관으로 조정에 복귀했지만, 7개월 만에 인종이 승하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1545년 벼슬을 접고 고향 장성으로 낙향해 성리학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의 성리학 이론은 우리나라 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이황, 노수신, 기대승, 이항 등과 교유했으며, 문인으로는 양자징, 정철, 박순, 기효간, 오건 등이 있다.

  필암서원에 당도하여 우암 송시열이 현판을 직접 쓴 확연루(곽연루) 외삼문을 들어서 청절당에 이르렀다. 옛날 선비들이 강의를 듣고 학문을 토론하던 대청마루에 여러 명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청절당 좌우에는 수학하는 유생들이 기거하던 숭의재와 진덕재가 있고 맞은 편에 경장각이 있다. 이곳에는 인종이 하서 김인후에게 선물했다는 묵죽도와 그 판각이 보관돼 있고, 정조가 쓴 현판이 존엄하고 신성하게 여겨 현판을 얇은 천으로 가려 눈길을 끌었다.

  경장각 뒤쪽에는 김인후와 그의 문인이자 사위인 고암 양자징의 신위를 모신 우동사가 있는데 제사를 모실 때만 열리므로, 갈 때마다 문이 잠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우동사 옆으로 맨 안쪽에는 장판각이 있는데, 김인후의 문집 목판 등 목판 700여 매를 보관하고 있다. 장판각 동쪽에 서원의 우두머리 노비가 기거하던 한장사가 있다.

  확연루를 나와 맞은 편에 있는 유물전시관으로 갔다. 이곳에는 과거시험 예상 문제지와 노비문서, 필암서원 졸업명부, 인종임금의 글씨와 목죽도 3판과 정조 임금의 어정서 ‘오경백편’ 내사본도 있다.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된 ‘하서전집’이 소장되어 있고, 선생의 가죽신과 의복도 소장되어 있다. 당시의 책상과 책장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고, 선생이 세자를 가르치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우리나라의 서원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의 중요한 공간인 고등교육기관이었다. 정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은 위상이 절대적이며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한 9곳의 서원도 모두 사액서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우리의 학문과 문화의 계승발전과 문화선진국의 위상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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