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

2020.06.26 13:28

소종숙 조회 수:5

 첫 기억

                                                                                                                                          은안골은빛수필문학회 소 종숙

 

 

  나의 떠오르는 첫 기억은 여섯 살 때다. 우리 집은 대밭으로 둘러있었다. 집 옆에 있는 동산 아래에는 옹달샘이 있었다. 큰 언니를 따라 샘에 갔다. 언니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샘물을 퍼올리다 미끄러져서 그만 샘에 빠져 버렸다. 그때 솟아오르는 나를 언니가 용케도 건져 올렸다. 물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는지 뜨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하다. 샘에 빠졌던 생각만 하면 무섭다.

   언니와 함께 들어가니 저녁때였다. 옷감을 펼쳐놓고 가족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검정색 하얀색 천이었는데, 초등학교 입학식 날 입고 갈 옷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다.

 

  고향 집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 금마산이 보였다. 고조선이 멸망할 때 준왕이 망명하여 금마산에서 마한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고 들었다. 마당이 무척 넓은 집이었다. 대지가 300평이라고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갖 꽃들이 피어있고, 대문 옆을 지나면 큰 아버지네 집이다. 돌단을 높이 쌓은 뜰에 큰집이 있었다. 뜰이 높은 이유는 하인들에게 절을 받기 위해서였다 한다.

 

  집이 여러 채고, 사랑채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가 화단에는 진분홍빛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향기가 진동했다. 나팔꽃. 채송화도 피어있고, 대밭에는 옹달샘이 있었다. 대밭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연못을 지나 우리 집 화단 뒤로 사시사철 졸졸졸 흘렀다. 내 방은 아주 긴 마루를 지나 화단이 보이는 곳에 있었다. 잠자리에 들면 개울이 흘러가는 소리가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뜨렸고, 그 규칙적인 물의 리듬을 들으며 나는 곤히 잠을 자곤 했다.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을 때였다. 빨강색 비행기가 방으로 내려않을 듯이 굉음을 내며 날아 다녔다. 그럴 때면, 우리 집 식구들은 대밭에다 파놓은 굴속으로 숨으러갔다. 그때 그 비행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자지러지게 놀라는 나를 큰 언니가 등에 업고 도망하다 발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그 몸서리쳐지는 비행기 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평생 잊히지 않는다. 전쟁은 참혹하고 소름 끼친다. 나는 요즘도 어디에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혹시 전쟁이 일어났나 싶어 가슴이 철렁해진다.

 

  햇살이 따스한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검정색 멜빵치마에 하얀색 상의를 입었다. 엄마는 옥색 치마를 입고 내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갔다. 여섯 살 때였다. 학교에서 나이별로 손을 들라 하면 여섯 살은 나밖에 없었다. 동네친구들은 아무도 입학하지 않았는데 나만 그렇게 혼자 학교에 갔다. 나는 학교가지 않으려고 골방에 숨기도 했다. 그런 나를 아침마다 데리러오는 선생님이 있었다.

 

   양 선생님은 우리 할아버지 친구 손자였다. 얼마나 신신당부를 했는지, 비가 오는 날도 어김없이 나를 데리러 오셔서 내손을 잡고 우산을 받쳐주며 학교로 데리고 갔다. 참 친절하신 선생님이셨다. 한번은 공부하다 말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양 선생님이 다가오셔서 왜 우느냐고 물어보셨다. 앞에 앉은 애가 냄새가 나서 운다고했다. 선선이 자리를 바꿔주셨다. 그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참 철이 없었다. 옆 친구 한태와 양 선생님한태 미안한 미음도 든다. 참으로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이었다.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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