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그물망

2020.07.03 01:59

전용창 조회 수:8

생각의 그물망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아침나절에 수필을 지도하시는 K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 선생, 내 승용차에 병풍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데 전 선생 화물차로 택배회사에 전달 좀 해주었으면 하는데 시간이 있는가?

 “네, 그렇게 할게요.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 오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사연이 깃든 병풍일 텐데 이제는 자녀들 집으로 시집을 보내려나 보다 생각했다. 병풍을 떠올리니 우리 집 장롱 위에 있는 8폭 병풍이 생각났다. 생전에 장모님이 밤잠을 설치고,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며 한 올 한 올 수를 놓아 완성한 작품이다. 한 쌍의 학이 서로 날갯짓을 하며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다. ()은 장수와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 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고 하니 그리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수를 놓으셨지 싶다. 아내는 병풍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지금껏 몇 번 펼쳐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병풍만 보면 그림이 보인다. 아내는 장차 누구에게 선물할까? 가장 예뻐하는 손녀딸은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점심을 먹고 아들 정기와 함께 한벽루 쪽 천변을 싱싱 달렸다. 아들은 높은 곳에서 낮은 차들을 내려다보는 화물차를 좋아한다. 카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를 따라 부른다. 한 소절을 부르다가는 금시에 뭐라고 나에게 질문을 한다.

 “아빠, 근데요, 근데요.” 한다. 그럴 때 나는 적절하게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 아들은 무엇이 궁금했을까? 전면 우측에 ‘국립무형유산원’ 건물이 보였다. 저 건물이 궁금했나보다왼손은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장구와 북을 치는 흉내를 냈다. ‘덩~더꿍 덩더꿍’ 하는 곳이야. 정기야, 너도 한 번 이렇게 해봐. 궁금증이 풀렸는지 손뼉을 치며 “으~응” 했다. 어느덧 교수님 댁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전화를 드렸다. 두툼한 봉투를 들고 나오셨다. “전 선생, 읽어봐.” 여러 권의 책을 선물로 주셨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병풍은 3개였다. 6자 길이가 2개이고 하나는 그보다 작았다. 화물차 바닥은 병풍이 때 묻지 않게 깨끗하게 갈대발을 깔고 왔다. 사모님께서는 병풍이 차에 실리는 광경을 애써 외면하셨다. 정을 뗀다는 게 무척이나 힘드셨겠지. D택배회사로 갔다. 작업반장이라는 분은 병풍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파손이 되면 배상에 머리가 아프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보양할 수 있는 박스와 스펀지를 사서 다시 야무지게 포장을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 대신 K택배회사로 가보라고 했다. 짐은 내리지도 못한 채 차를 돌렸다. 하늘은 비가 오려는 듯 검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차 속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병풍 3개 모두 충북 음성에 있는 <소월*경암문학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곳에 사시는 경암 이철호 선생께서 사재를 털어서 건립한 문학관인데 그곳에 기증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 전주 근교에 그런 문학관이 있었다면 그리 멀리 떠나보내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가보로 물려받은 병풍을 자녀들보다도 문학관에 기증하시는 교수님의 마음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K택배회사도 병풍은 파손위험이 있으니 안 받는다고 했다. 참으로 난감했다. 교수님께서는 그냥 용달차를 부르자고 했다. 가까운 거리라면 내 차로 가겠는데 충북 음성은 너무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용달차도 쉽지 않아요.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기사 일당 등을 감안하면 20만 원에도 안 갈 거예요." 두 군데 다 거절하니 나의 우뇌와 좌뇌는 디스크처럼 돌아갔다. 어떻게 하든 택배로 보내는 것이 값이 싸고 안전할 텐데. ‘생각의 그물망’이 좁혀지는 순간 묘안이 떠올랐다. 병풍을 두꺼운 합판으로 양쪽을 덧댄 뒤에 야무지게 묶으면 될 성싶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 그렇게 해보세요.”라는 답변이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목재소로 갔다. 두꺼운 합판 3장을 48,000원에 샀는데 켜줄 수는 없다며 인근 목공소로 가라고 했다. 목공소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절반을 켜달라고 부탁을 해도 쉽게 답변을 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귀히 소장하신 병풍을 충북 음성에 있는 문학관에 기증하려고 하는데 수고 좀 해주세요.” 그제야 승낙을 하고 치수대로 켰다. 청구한 15,000원을 드리고 커피 대접도 받았다. 우선 끈으로만 묶고 택배회사로 갔다. 그곳에서 전에 쓴 수필 「신시도 삼 형제」에 나오는 막내를 만났다. 훈련병 시절 만난 친구처럼 반가웠다. 그 친구 덕에 일이 수월했다. 밴딩기를 사용하여 양쪽에 댄 덧판을 조이니 단단하게 되었다. 택배비는 4만 원이라고 했다. 103,000원에 모든 일을 해결하였다.

 

   “전 선생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교수님께 배운 수필을 응용했어요.

  “응 그래?

 나의 대답이 교수님을 기쁘게 했다고 생각하니 나도 기뻤다. 그냥 대답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했다. 전에는 생각이 건성이었는데 수필을 쓰고부터는 오래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오늘도 ‘생각의 그물망’을 펼쳐서 마무리를 잘했지만, 또 다른 많은 것을 배웠다. 자녀들보다 문학관을 사랑하시고 비용이 얼마가 들든지 추억이 깃든 병풍을 영구히 보존하려는 교수님의 마음을 보았다. 우리 집 병풍에서는 사위와 외동딸을 사랑하시는 장모님의 깊은 사랑을 보았다. 저녁에 교수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전 선생, 오늘 수고 많았어요. 저녁 식사라도 하고 헤어질 걸 그냥 보내서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오늘 보람된 일을 해서 기뻐요. 귀한 책 선물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병풍이 문학관을 방문하는 탐방객을 반가이 맞이하며 오래오래 보존되기를 바랐다.

                                                               (2020.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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