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쓰기에 대한 생각 바꾸기

2020.07.04 18:45

안도 조회 수:291

수필쓰기에 대한 생각 바꾸기

 

안 도

전북교육문화관 전임교수(), 전북문협 회장(역임)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전문 문학인이 아니라도 수필 정도는 누구든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문학인 중에서도 수필을 독립된 장르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처럼 수필이 대세를 이루었다고 해서 과연 이 시대는 수필 전성시대가 왔을까?

 눈을 뜨고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 어디에서나 손쉽게 수필과 만날 수 있다. 신문을 뒤적이다가도 수필과 조우하게 되고 잡지를 펼쳐 들다가도 수필과 상면하게 된다. 수필 잡지는 말할 것도 없고, 타 문예지나 여성지 혹은 시사종합지나 사보에서도 수필을 만난다.

 수필이 없으면 독자로부터 배척이라도 받을 듯이 수필을 끼워 넣는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수필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고 싶다. 심지어 어떤 수필협회 기관지에서는 편집장이 '글쓰기 싫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그는 수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수필의 옥석을 제대로 가릴 수 없어 의문점이 남는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수필쓰기가 싫어졌으며 심지어 수필가라는 호칭조차 반납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 큰 회의를 느낀다면서 첫째 이유는 ‘수필’이라는 자리에 유명인들이 쓴 신변잡기가 두루뭉술한 이름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구나 쉽게 등단해 작가라는 호칭을 얻지만 피를 말리며 진지하게 수필을 쓰는 태도가 부족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등단하진 않았지만 인터넷에 올려 진 수준 높은 글들이 많다는 점 등도 들고 있다. 그는 요즈음 수필은 개나 고양이나 쓰는 글이라면서 이런 현실에서 내가 정말 작가인가? 하는 정체성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자조했다. 아울러 마구잡이로 신인이 배출되는 등단 실태, 문단권력, 수필가들의 글 쓰는 자세 등의 수필문단 현실을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수필가는 수필전문지나 문예지가 경쟁하다시피 등단의 기회를 제공하다 보니 습작과정을 충분히 거치지도 않고 등단의 문을 두드리는 신인들이 많다면서 이런 현실에서도 치열하게 글쓰기를 고민하는 작가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1. 수필의 의미를 바르게 알자.

 이런 현상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지금까지 수필의 참의미를 왜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의 ‘에세이’는 시, 소설, 희곡과 같은 ‘뚜렷한 창작 형식’이외의 산문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 문단에서 ‘에세이’란 말은 ‘수필’이란 말로 번역되어 심변(心邊)적인 수상(隨想)으로 한정시켜 ‘붓 가는 대로 쓰는’산문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수필가들이 쓰는 산문은 엄격한 의미의 에세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수상(familiar essay)’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수필이란 16C 프랑스 미셀 몽테뉴가 만들어 발전시켜 온 장르다. 그는 나이가 37세가 되었을 때 공직을 버리고 서재로 들어가 『수상록』을 집필했다. 이 책의 서문에 씌어진 ‘나 자신이 나의 책의 재료이다’라는 말이 시사해 주듯이 그의 글은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는 기본적인 태도에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그는 인간 각자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무한한 책임감, 자부심과 존엄성, 그리고 자연 가운데에서 보다 근원적인 것을 탐색하고 거기에서 진실과 도덕성을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에세이는 시, 소설과 같은 다른 창작의 장르처럼 ‘유기적이 아니고 단편적이며 가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미의 직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사물이나 특정한 대상(對象)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와 명상을 나타내는 단편적인 글이다.

 그러나 그것은 흰빛에서 다양한 색채를 발견하듯이 일상적인 삶이나 사소한 것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내지는 도덕성’을 찾아서 계시(啓示)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시(啓示)라는 말이다. <계시>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깨우쳐 알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필은 몽테뉴 경우처럼 ‘자기와의 대화’ 즉, 명상을 통한 철학적인 발견 혹은 사소한 경험에서 위대한 진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훌륭한 문학 작품으로 평가를 받으려면 일상적인 신변잡기(身邊雜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하고 소중한 도덕적 진실을 담고 있어야만 한다.

 

2. 수필의 왜곡에서 탈출하자.

 필자는 서두에서 수필의 일상성에서 오는 문제점들을 얘기했다. 우리는 누구나 일상적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삶의 이야기가 곧장 수필이 된다. 그렇기에 수필은 삶의 이야기 곧 인간학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수필의 일상성이 그저 일상적이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일상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런 수필의 일상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모든 수필은 상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 둘째, 모든 수필은 관습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 셋째, 모든 수필은 일상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수필은 상식으로 상식을 극복하고, 관습을 통해 관습의 근거를 파악하고, 일상 언어를 통해 일상성 이상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수필의 일상성 극복을 역설했다.

 만일 수필이 이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신변잡기나 잡문의 경지로 타락한다고 그는 경고하고 있다. 수필은 작가의 일상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언어미학적으로 창조한 미적 관조의 산물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일상을 소재로 하여 수필은 창조된다는 점이다. 즉 일상 속에 숨어 있거나 묻혀 있는 삶의 진실과 본질을 미적으로 관조하여 인식과 깨달음의 언어로 들려주는 문학이 수필이다.

 

 수필의 구조는 작가 내부의 일상성에서 찾아낸 삶의 진실성과 외부의 일상성 이야기에서 찾아낸 철학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수필는 이런 일상성 속에 묻혀 있는 삶의 진실을 철학적으로 인식하여 미학적으로 구조화하고 나아가서 문학 언어로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전통적인 것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에 가속도가 붙어 제어의 필요성이 요구될 때는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하곤 했다. 따라서 수필은 문학이 변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익숙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동시에 일성성에서의 벗어나기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그 하나가 ‘문자매체, 전자매체의 공존과 대화’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와해되었다. 지금 지구촌은 디지털 중심의 다원적인 평등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멀티미디어가 의사소통의 핵심도구로 혁신적인 변화를 가속화해 가고 있다.

 둘째는 퓨전(Fusion)시대의 개막이다. 지구촌이 디지탈 중심적, 다원적인 평등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1세기는 통제 불능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여기서 문학에서의 퓨전은 이종결합, 혼합을 의미하며, 이런 이종배합, 혼성모방의 경향은 음악이 미술과 컴퓨터에 결합하고, 문학과 음악, 문학과 미술이 결합한다. 이렇게 새로운 문화 환경에 문학이 대처해야 할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퓨전은 이제 21세기를 움직이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는 키치의 난무다. 키치(Kitsch)는 싸구려 물건 즉 이발소 그림이나 페인트 그림, 조악한 것, 이상야릇한 것을 의미한다. 19세기말 뮌헨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으로 값싸고 감성적이며 귀여운 복제품을 지칭하는 저속(低俗)과 천박(淺薄)의 대명사로 보고 있다. 이렇게 키치가 대량 복사되는 조야(粗野)한 대중문화 상품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그 양산이 이 시대의 문화 중심에 서 있다. 여기서 조야란  천하고 상스럽다. 또는 물건 따위가 거칠고 막되다는 뜻인데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키치가 가볍지만 통쾌하다는 점이다.

 최근의 광고의 카피에는 못난 사람을 자주 등장시켜 촌스럽고 모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고전적 광고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 어딘가 모자란 듯 어눌한 표정과 말투이지만, 감초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여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때론 키치에는 ‘비꼼’의 정신까지 내재한다. 전통적 가치에 딴죽을 걸면서 풍자의 날을 세운다. 그래서 키치가 이제는 하위미학이 아니라, 대중미학의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당당한 미적 즐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변화의 첨단에 서 있는 것이다.

 자,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수필문학의 갈 길은 과연 어디인가? 그 답은 지극히 간명하다. 발상의 대전환, 수필쓰기의 혁신이 필요하다. 수필문학의 일상성을 뛰어넘고, 키치적 사고를 먹고 자라는 창작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곧 수필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추구야말로 수필의 대중화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은 문학이란 환상(幻想)의 집을 짓기보다 위대한 ‘성() 쌓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일이겠다.

 

3. 수필에서의 문학적 낯설게 하기 

 그렇다면, 수필문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추구, 수필문학의 성 쌓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수필작가는 새로운 변화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길이 그 길이 될 것이다. 새로운 창조는 정체(停滯)가 아니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변화의 한 축을 형성하는 것이 다름 아닌 문학적 ‘낯설게 하기’ 혹은 ‘생소화’일 것이다.

 문학에서의 형식주의를 표방한 슈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를 문학성의 요체(要諦)로 보고 있다. 즉 그는 언어를 특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즉 문학의 형식적 요소인 소리, 이미지, 리듬, 구문, 음보, , 서술기법과 같은 장치들이 모두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인 폭력’이며 문학 언어를 다룬 담론(談論) 형식들과 구별해 주는 것은 그것이 일상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시키고 뒤틀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 장치들의 압력을 받고 변형된 일상 언어는 낯설게 되고 생소화된 언어이다.”라고 하였다.

 수필은 그 소재를 생활 속에서 찾아낸다. 따라서 생활이 곧 수필이고, 수필이 곧 생활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생활이란 너무도 낯익어서,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무심한 눈에는 아무것도 띄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으려면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그 낯익은 것들이 낯설게 보이고, 그 낯설음이 자기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안겨 주게 된다. 이정림은 “문학은 이런 충동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또한 박양근은 “낯설게 하기라는 미학적 기법은 형식과 내용뿐만 아니라 수필본질에 대한 실험정신도 포함한다. 가상현실과 실제현실이 상호교차하고, 가상현실은 현실감 있는 사이버공간이라는 점에서 인터넷 시대의 수필은 문학적 형질의 변경을 감수해야 될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그는 21세기의 한국수필이 논의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로 가상현실에 적합한 표현양식을 찾는 일로 보고 있다. 여기서 가상현실이란 IT시대의 생활공간으로 상상의 공간이자, 환상의 공간이면서 허구의 공간으로 보고 허구와 상상이 현실이라는 3차원의 현실을 거부하는 관점에서 재단한다면 ‘낯설게 하기’라는 전복적 상상은 가상현실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 준다고 보고 있다.

 수필문학은 관념의 형상화를 통해 작가와 독자 사이의 정서적이며 지적인 상호소통을 이루어내는 장르로 주제와 소재 그리고 형식 사이의 결속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미래의 수필은 전통적 방법 즉 평면적 글쓰기에서 입체적인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낯설게 하기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말할 것도 없이 문학이나 예술은 습관적인 지각이나 인식이 당연시하는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사물들을 더욱 깊이 있게 인식하게 한다. 즉 언어를 극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우리의 지각이나 반응을 새롭게 갱신시켜 준다. 따라서 수필문학의 경우, 체험 그 자체만으로는 사물의 감각과 지각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대상을 낯설게 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각의 어려움과 지속을 증가시켜야 한다. 슈클로프스키는 이 경우 “지각 과정 그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고 또 그것이 될수록 오래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하나의 탁견(卓見)으로 시의 언어에서 이런 경향을 보게 된다.

 

 

4. 낯설게 하기와 수필미학과의 관계 

 수필문학에서의 문학적 ‘낯설게 하기’의 구체적인 구현 방법을 탐색하기 전에, 먼저 문학적 낯설게 하기가 수필의 미학과 어떤 상관 관련이 있는가 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슈클로프스키의 지적과 같이 낯설게 하기는 낯익은 대상을 낯설게 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지각과 인식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한다. 최근 「낯설게 하기와 수필 작법」이라는 책에서 낯설게 하기의 창작 기법으로 소재 선택, 기법, 구조, 의미화의 차원 등으로 미적 효과를 검토한 일이 있다. 그 견해는 비교적 논리 정연하고 수필 창작에 시사하는 바 크다고 여겨진다. 그의 견해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재 선택의 차원에서 ‘낯설게 하기’는 개성 있는 글감과의 만남을 통하여 달성될 수 있다. 특이한 글감을 찾아 형상화함으로써 독자들의 감수성을 낯설게 자극하는 효과를 준다.

 둘째, 기법의 차원으로 낯설게 하기의 차원에서 동원되는 모든 창작 기법은 대상을 자동화의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일탈의 전략으로 감동의 충격을 강화시킨다. 시점 바꾸기, 몽타주, 콜라주, 병렬법, 의식의 흐름, 객관적 상관물 등의 다양한 기법이 사용될 수 있다.

 셋째, 구조의 차원으로 문학적 이야기 구조는 미적 감동을 목적으로 한 사건과 행동의 재구성과 재배열을 통해 조직된다. 액자를 이용한 삽입형의 이야기 구조, 패턴을 이용한 반복형 이야기 구조의 병렬구조나 몽타주와 콜라주를 이용한 파편구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언어표현의 차원에서 일상어의 자동화, 타성화, 상투화를 벗어나 낯설게 함으로써 감동의 충격을 주는 방법으로 문장의 도치, 낯선 강조의 기법, 독특한 문체가 그것이다.

 다섯째, 의미화 차원에서 일상적, 상투화된 낯익은 주제 해석으로부터 낯설고 새로운 주제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일상화되고 상투적인 수필 쓰기에서 수필문학의 본질을 찾아보자는 견해일 것이다. 이는 “슈클로프스키의 주장과 같이 자동화된 타성화로부터 벗어나 대상의 참모습과 참 감각을 되찾고, 지각의 자동화로부터 대상을 해방시켜 보여 주려는 명시(明示)의 전략에 다름없다.”고 하겠다.

 

5. 수필에서의 ‘낯설게 하기’의 구체화

 수필에서 낯설게 하기는 ‘좋은 수필’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좋은 수필의 조건은 무엇인가?

 좋은 수필은 ① 읽고 나면 한 번이라도 더 읽고 싶어야 한다. ② 읽고 나서 마음에 느낌과 인상이 남아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감동, 새로움, 흥미, 지식, 정서, 교훈, 평화, 용기, 지혜를 주며 독자들의 인생에 가치와 의미와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수필을 읽을 때 독자가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면 흥미와 호기심을 갖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과 느낌을 주는 수필이어야 작품 속으로 끌려든다. 작자의 안목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해석한 수필을 볼 때는 경탄하게 된다. 독자가 생각하고 느끼지 못한 것, 상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얻은 수필에는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유머와 해학으로 독자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수필에는 즐거움과 통쾌함이 있다. 예리한 통찰력과 비판정신을 보이는 수필을 읽으면 가슴을 여미게 한다.

 독자는 마음이 맑아지고 인격에서 향기가 나는 수필이 좋다. 자랑, 과시, 설득, 교도의 자세보다는 겸허, 온화, 감동을 동반한 수필을 좋아한다. 수필을 읽는 효용성 중에 개인적 체험의 공유화, 체험의 사회적인 확대를 들 수 있다.

 사소하고 평범한 체험에서 금싸라기 같은 경이와 감동을 발견할 줄 알며, 인생에 대한 의미부여를 통해 독자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수필이 좋은 수필일 것이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체험일지라도 ‘나는 왜 네가 아니고 나인가’를 보여주는 나만의 개성과 독자성, 창의성이 있는 수필을 원한다. 새로움, 지적 흥미, 정서감, 감동, 진선미를 제공하는 수필이어야 한다.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한 조건을 명확히 설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좋은 수필이 되기 위한 범주나 개념에 대해 논의할 필요성을 느낀다.

 ① 체험의 서술        ② 체험 + 느낌

 ③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④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 감동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때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 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지난 5월 단양에서 열린 소백산철쭉제 행사 중 하나로 전국 자연보호 백일장 대회가 열려 심사위원 위촉을 받고 11시에 출발 단양에 도착해서 점심식사 후 곧바로 심사에 들어가 심사를 마치고 나니 5시가 넘어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단양문인협회에서 열고 있는 시화전시장에 도착, 단양문인 협회 회원들과 어울려 놀다가 회원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이튿날 아침 비가 오는 가운데 소백산 정복에 도전했다.

 

→ 이렇게 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중간에 쉼표가 한 군데밖에 없다. 주어 서술어 관계가 뒤엉켜 지은이가 말하려는 주된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끈기있는 독자라도 읽어나가다가 짜증이 나고 숨이 막혀 읽기를 중단하고 말 것이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철쭉제의 백일장 심사위원 위촉을 받았다 ㉡단양으로 갔다 ㉢점심을 먹었다 ㉣심사를 했다 ㉤저녁을 먹었다 ㉥시화전을 관람하고 놀았다 ㉦회원 집에서 잤다 ㉧이튿날 소백산 정복에 도전했다.

 사흘에 걸친 이 많은 내용을 한 센텐스의 문장 속에 담아놓았으니, 과연 문학적인 글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만연체가 아니라 뒤죽박죽문체라 함이 옳겠다. 수필이라고 하기에 부끄러운 이런 글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독자를 고문하는 것이 아닐까싶어 고소가 저절로 나온다.

 전 편이 이런 흐름의 글이니, 이 정도의 문장력밖에 안 되는 사람이 백일장 심사를 하여 뽑은 작품은 어떤 수준이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1>

할머니의 수필집

 “40년이 조금 넘도록 서울에서 살다가 홀연히 시골로 이사를 한지가 20년 가깝게 되어 가고 있다. 그 사이 시골에서 집안일, 관상수와 과일 가꾸기, 개 기르기, 밭일 등으로 하루가 바빴다. 그래도 바쁜 틈을 타 써 온 수필을 써 모아 수필집을 냈다.

  

 <2>

할머니란 이름의 구슬.

 “40년이 조금 넘는 서울살이를 뒤로 하고 홀연히 시골로 돌아온 지도 스무 해 가깝게 되어 가고 있다. 그 사이 집안 살림 말고도 뜰일, 관상수와 과일 가꾸기, 개 기르기, 밭일 등으로 하루가 바빴다. 서울서 같으면 엄두도 못 내었을 시골살이는 참 다양했고 또 푸짐했다. 그것들이 낱낱이 나의 수필을 위한 기틀이 되었고 텃밭이 되어 주었다.

 내게는 농사짓기와 글쓰기 사이에는 다만 호미와 펜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 수필들은 나의 또 다른 채소밭이고 나무밭인 셈이다. 그 수필의 구슬들을 꿰어 한 권의 책으로 펴내개 되었다.

 

 <1>은 기록에 지나지 않지만 <2>는 작가의 자기 체험의 고백이라는 수필의 한 측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체험이 수필 안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수필이 대개 신변잡사에 머물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는데, <2>의 수필은 체험과 교양과 서정이라는 삼자 융합의 경지를 보여준다. 서정이 서정의 날로만 존재하지 않고 교양이 교양의 날로만 존재하지 않고 체험이 체험의 우물에만 고여 있지 않는, 삼자가 역동적으로 서로 교섭하는 형식의 수필이라는 것이다.

 

 기록을 수필이라고 혼동하지 말자. 기록은 사실의 객관적인 서술이다. 인간의 삶과 인생을 서술하는데 있어서는 사실의 전말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과 행위에 대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느낌과 견해를 표하고 싶어 한다.

 

 수필의 구성에 있어서도 체험(사실)과 느낌(주관)을 어떻게 배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기, 기행문에 있어서도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라면 기록문에 불과하다. 작가가 격은 체험담, 에피소드, 일 등을 사실대로만 써놓은 수필들이 의외로 많다.

 기록문은 그 자체로서 가치성이 있는 것이지만 문학작품은 아니다. 문학은 체험과 상상으로 작가가 발견한 인생의 이치와 진리, 깨달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개성과 독자성과 창의성에 의한 의미부여와 가치 창출이 있어야 한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부여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 낼까>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이다.

 

6. 신변잡기와 수필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소재)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형상화하는 문학 장르라는 점에서, 신변잡사가 본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은 인생의 발견과 탐구, 인생의 의미를 통해서 인생 미학을 찾는 수필이므로 개인사나 가족사 등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고 이는 수필문학의 한 속성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삶의 모습은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뿐 대동소이하다. 그래서인지 수필들을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소재와 주재가 엇비슷하고 신변잡기로 채워 놓아서 어느 수필이나 백화점 진열대를 방불케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방식, 하루의 일과는 크게 다르지 않기에 신변기는 대개 유사성을 띄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변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대개가 삶의 기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진부하다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우리 수필가들은 자신의 남기고 싶은 얘기로 그치지 말고,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주는 얘기를 써야 비로소 수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단순히 누구나 겪었던 진부한 신변잡기에 그친다면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평범한 신변잡기지만, 인생의 발견과 해석 그리고 의미와 가치부여, 인생미학의 창조가 있어야만 광채를 낼 수 있다. 이런 차이가 신변잡기와 수필의 구별척도가 되며 자신의 삶을 기록해 놓은 신변잡기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과 체험에서 얻어낸 문학인가를 판가름하게 된다.

 예컨대, 평범한 신변잡사에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진실과 감동이라는 보석을 찾아내는 일이 ‘수필’이라 할 것이다. 신변잡사에서 보석을 얻어내는 일, 평범한 삶 속에서 비범한 이치를 찾아내는 일, 누구나 겪는 대수로운 것과 사물들을 보고 독자적인 의미와 미학을 부여하는 일이 좋은 수필 쓰기의 관건이 될 것이다.

 

7. 좋은 수필은 좋은 문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아무리 소재가 좋고 주제가 훌륭해도 표현력이 따르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그 뜻을 전달할 수 없다. 표현력이란 바로 문장력이다. 문장력의 기본은 정확한 문장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확한 문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감히 글이라 내놓아서는 안 된다.

 말을 하면 흥미롭게 귀담아 듣는 사람이 있어야 보람이 있고, 글을 써서 발표하면 읽어줄 독자가 있어야 글을 쓴 가치를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남이 듣지도 않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 주위 사람들이 미쳤다 할 것이요, 글을 썼으나 읽어 주지 않으면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쓴 글이 읽혀지는 글이 될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물 흐르듯이 술술 읽혀 내려가는 글이어야 한다. 술술 읽혀진다는 것은 문법에 맞는 정확한 문장이 아니면 안 된다.  문법은 문장의 작법과 구성법, 그리고 언어의 구성 및 운용상의 규칙이다. 이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질서가 허물어진 글이 된다.

 내용을 잘 전달하려면 무엇보다도 문법에 맞게 질서정연한 글을 써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초적인 질서를 어그러뜨린 글은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 한다는 말이다. 필자는 여기서  그동안 발표된 작품들을 그 작품성이나 문학성의 자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고. 문장의 표현들이 잘못된 문장을 하나하나 지적해 보고자한다.

 

① 나는 나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노라고, 멋진 인생을 남기고 싶은 꿈이 그간 줄기차게 나의 가슴에 서려있었다.

→ 문장에 두서가 없다. ‘떳떳한 인생을 살아왔노라고’와 그 뒷문장과의 호응이 되지 않는다. ‘살아왔노라고’ 다음에 어떻게 했다는 설명이 있어야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남기고 싶은 꿈이 그간 줄기차게’의 ‘그간’이 막연하다. ‘그간’은 그동안, 그사이란 뜻인데 어느 동안이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글은 독자를 당황케 한다.

② 때로 달은 나그네의 길손이 되어주기도 헌다.

→ 여기서 ‘길손’은 ‘먼 길을 가는 나그네’란 뜻이다. 그러므로 ‘길벗’ 또는 ‘길동무’라야 한다.

③ 이번만 입고 내버리라 했는데, 하도 깨끗한 맛에 또 입는다.

→ ‘내버리라’는 ‘내버리려’ 또는 ‘내버리려고’라 해야 어법상 맞다. 문맥으로 보면 스스로가 하려는 의지를 표하는데 ‘내버리라’고 하면 남에게 시킨 것이 되니 이치에 맞지 않다.

④ 술빛 닮은 노을이 서산에 걸려있다.

→ ‘노을’은 ‘해 질 무렵 공중의 수증기가 햇빛을 받아 하늘이 벌겋게 보이는 기운’인데 어떻게 노을을 술빛이라 할 수 있을까? ‘붉은 포도주라’ 한다면 그런 대로 이해가 될 것이다.

 

⑤ 나는 항상 감시당하는 것이 싫어서 핸드폰을 집에 두고 다닐 때가 평상시보다 많다.

→ ‘평상시보다 많다’의 ‘평상시’는 ‘보통 때’ ‘평소’란 뜻이다. 그러니 ‘보통 때보다 많다’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논리가 닿지 않는 말은 문장이 될 수 없다.
글을 좀 더 잘 써보려는 생각에서 필요 이상의 말을 썼는지 몰라도 ‘평상시보다’를 빼면 오히려 앞뒤의 연결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⑥ 중년들은 새치머리 감추느라 할 수 없이 염색을 시작한다.

→ ‘새치’면 될 것을 ‘새치머리’라 했으니 말이 어색하다. ‘새치’는 젊은 사람의 머리에 난 센 머리카락이니 ‘새치머리’하면 겹말이 되고, 중년은 새치가 아니고 ‘센머리’라 해야 옳다.

⑦ 뒷마당 빈터를 일구어 모종을 뿌렸다.

→ ‘모종’은 심는 것이지 뿌리는 것은 아니다. 씨는 뿌리고 모종은 심는 것이다.

⑧ 소 도시의 갓길 뚝방에 앉아 도시락을 펴놓고 먹던 때가 엊그제인양 그려진다.

→ ‘뚝방’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고, ‘그려진다’는 ‘그리워진다’로 해야 옳다.

⑨ 천박한 땅에 과수를 심어 결실을 맺게 할 만큼, 아버지는 인고의 세월을 독서에 의지하여 천하게 살지 않으려고, 지식들도 남에게 귀한 사람 되기를 무진 노력하며 사신 분이었다.

→ 글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해 뜻의 파악이 잘 안 된다. ‘과수를 심어 결실을 맺게 하는 것’과 ‘독서에 의지하며 천하게 살지 않으려는 것’은, 앞 뒤 문장의 호응이 되지 않는다.

⑩ 나도 그 틈바구니에 끼어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 ‘틈바구니’는 ‘틈’의 속어다. 이런 통속적인 저속한 말을 쓰면 글의 품위가 떨어진다.

⑪ 자라가 네 발로 아장아장 헤엄치며 노는 것도 눈에 보였다.

→ ‘아장아장’은 어린 아이나 키가 작은 사람이 천천히 걷는 모양을 나타내는 부사다. 그러니 ‘자라가 아장아장 헤엄친다’는 것은 잘못이다.

⑫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석불이 눈에 들어왔는데’ ‘사찰이 눈에 들어온다.’ ‘구석 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맨 뒤 켠에는 산신각이 자리하고’있다.

→ ‘들어온다’와 ‘자리하고’를 중첩하여 거듭 쓰고 있다. 이것은 필자의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들어낼 뿐 아니라 문장의 흐름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⑭ 책상 위에 공과금 용지들과 우편물이 잔뜩 놓여있다.

→ ‘공과금 용지’의 ‘용지’는 어떤 일에 쓰이는 종이다. ‘공과금에 쓰이는 종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 ‘공과금 고지서’라 해야 옳다.

⑮ 터진 입술에 핀 피질을 떼어내고자 연신 손이 입가를 오가며 피로가 역력해 보였다.

→ ‘입가로 오가며’는 ‘입가로 오가는 것이’로 해야 된다.

⑯ 내가 예측하기에는 터무니없는 날벼락이다

 

→ 앞뒤의 연결이 맞지 않아 읽는 이가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다.

⑰ 산에는 나무도 없고 봄이면 진달래꽃이 피어 만산홍엽이다.

→ 나무도 없는 산에 어찌 진달래가 피는가. 작자는 줄기가 긁고 키기 큰 교목(喬木)만 나무로 아는 것 같은데 키가 작고 줄기와 가지가 구별이 없는 관목(灌木)도 분명 나무다.
그리고 ‘만산홍엽’이라 했는데 ‘홍엽’은 紅葉으로 ‘단풍이 든 나뭇잎이다. 진달래가 핀 봄 산에는 홍엽이 있을 수 없으며 사리에 맞지 않는 글이다.

⑱ 우산위로 풍경소리에 섞인 가는 빗소리가 꿈결처럼 적막하다.

→ ‘적막’은 ‘쓸쓸하고 고요함’인데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떻게 ‘적막’할 수 있는가.

⑲ 여자들 고무줄이나 끊고 그네나 빼앗던 악동 짓은 고사하고, 늘 코스모스 같은 눈웃음으로 머물던 그녀를 30여 년 만에 만난다는 기대가 남다르다.

→ 말의 줄기가 서지 않는다.‘고사하고’의 뜻은 ‘그만두고’다. 그렇다면 ‘악동 짓은 그만 두고’ 어떠했다는 설명이나 부연하는 말이 있어야 할 텐데, 느닷없이 ‘코스모스 같은 눈웃음의 그를 만난다는 기대’가 이어지니, 산 위에 강물이 흐르는 격이라고나 할까.

⑳ 노인들이 도대체 이 사회와 당신들의 과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볼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 ‘바라볼지도’는 ‘바라볼 것인가를’로 해야 앞뒤의 연결이 맞다.

㉑ 찬바람이 창틀을 덜컹거리지만 방안은 따뜻하다.

→ 창틀을 덜컹거리게 하는 것이 아니고 ‘찬바람으로 창틀이’로 해야 된다.

㉒ 현관문을 닫으면 거기엔 끈적거리는 습기로 질척이거나 또는 목젖이 따갑도록 메마른 공기가 덜미를 잡는다.

→ ‘질척하다’는 ‘묽은 진흙 등이 차지게 질다’란 뜻이니 ‘습기가 질척이다’고 하는 것은 어색하며, ‘메마른 공기가 덜미를 잡는다’의 ‘덜미’는 ‘뒷덜미’의 준말로 ‘목덜미 아래 어깻죽지 사이’인데, ‘공기가 덜미를 잡는다’란 말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㉓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 ‘철석같이’가 맞다. ‘철석(鐵石)’에 ‘같이’가 붙은 말이니 ‘철썩’이 될 수 없다.

㉔ 학교에서 학생들의 봉사활동 시간을 의무적으로 매기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 ‘매기다’는, 차례. . 등수 등을 정하다는 뜻이니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부과하면서’로 고쳐야 한다.

㉕ 그는 항상 걸리적거리기만 한다.

→ ‘걸림돌이 되기만’으로 하든지 아니면 다른 알맞은 말로 바꾸어야 된다,

 

 이처럼 문장 기초가 덜된 글들이 많다는 것은 현 문단에 문장수업이 안 된, 다시 말하면 문장기본을 모르는 수필가가 많이 등단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필계의 현실이 이러하니 ‘수필이 문학이냐’라는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수필인 공통의 책임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장이 안 된 수필을 함부로 발표하는 것은 문학과 독자를 모독하는 일이다. 이런 글이 엉망인 수필의 양산은 수필문단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다 같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문장공부를 다시 하자고 감히 제언한다.

 

8. 단숨에 읽고 오래 사색하게 하는 것이 좋은 수필

 좋은 수필이니 명 수필이니 하는데 얽매이지 말자.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듯이 수필도 읽는 사람의 느낌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독자의 공통한 특점이라면 단숨에 읽고 오랫동안 사색하게 하는 것이 좋은 수필이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수필도 함축이 필요하다. 자기도취에 취해서 지루한 이야기를 늘여 놓는다면 그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독자들은 그런 설명을 바라며 수필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하면 결국 수필이 넋두리로 끝나버린다. 수필은 시처럼 고도의 함축은 필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소설처럼 상황에 대한 장황한 서술도 아니다. 수필도 함축이 필요하며 결말에서 여운을 남겨야 한다. 그 여운을 따라 독자들로 하여금 사색하게 되고 함축된 내용을 풀이하면서 느낌을 찾게 하는 것이 수필이다.

 수필에서 장황한 사설은 군더더기만 되여 수필의 아름다움을 흐리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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