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의 운명

2020.07.09 14:32

전용창 조회 수:2

고라니의 운명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고라니는 엄마를 만났을까? 바가지에 떠다준 물은 마셨을까? 어린 것이 어떻게 보금자리를 찾아갈까? 엄마를 부를 힘이나 남아 있을까? 저녁이 되자 새끼 고라니에 대한 걱정이 깊어갔다. 행여 엄마를 만나지 못한 채 들짐승이라도 만나면 어떡하나? 놀란 눈빛으로 부들부들 떨며 엄마를 부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들과 나는 두 손을 잡고 저녁 식사 기도를 드렸다. 고라니 새끼가 무사히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

 

 오전에 텃밭으로 갔다. 며칠간 비도 왔고 오랜만에 가니 풀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밭은 풀밭이었다. 후배 내외가 짓는 머리밭은 고추와 고구마를 심었는데 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리고 친구의 밭도 토마토와 참외를 심었는데 채소 줄기만 무성할 뿐 깨끗했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우리 밭만 풀숲이었다. 전에는 혼자서 100여 평을 다 지었어도 깨끗하게 관리했는데 지금은 겨우 이십여 평인데도 게을렀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케일 쪽으로 갔다. 벌레가 잎을 다 먹어 치워서 여기저기 구멍이 났다. 벌레를 잡으려고 잎을 하나하나 뒤집어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케일을 먹는 벌레도 잎과 같이 녹색이기에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낭송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시인은 풀꽃이란 꽃은 없다고 했다. 본인이 상상한 꽃인데 수업 시간에 말 안 듣는 학생들을 ‘풀꽃’이라 생각하고 자세히 보고 오래보니 예쁘게 보였다고 했다. 내가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아들이 MP3를 들고 내 곁에 다가와서 “뭔데요?”하고 내가 하는 일을 묻는다. 그러자 몇 발치 앞에서 ‘푸드덕’하며 꿩이 놀라서 날아가는 소리가 났다. 쳐다보니 꿩이 아니라 고라니였다. 아들은 뒷걸음을 쳤고 나도 깜짝 놀랐다. 달아난 쪽을 따라가 봤다. 금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친구가 밭 전체를 나일론 그물망으로 둘러놨는데 대체 어디로 들어왔단 말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구멍 난 곳이라고는 없는데. 다시 돌아와서 일을 했다. 벌레는 못 잡고 이제는 풀을 맸다. 그러자 납작 엎드려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회갈색의 옷을 입은 고라니 새끼였다. 내가 잡으려고 하니 소리를 지른다. 물을 뜨러 가며 안정을 취할 시간을 주었다. 있던 자리로 다시 왔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이제 갓 태어난 지 한 열흘 남짓해 보였는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엄마를 못 만나면 죽을 텐데. 잡초 제거를 중단하고 고라니 구출 작전을 폈다. 가느다란 막대기를 들고서 풀숲을 헤치며 조금씩 이동했다. 그러기를 십여 분 하니 울타리 쪽 풀 속에 몸을 숨긴 새끼를 찾았다. 반가웠다.

 

 

 “강아지야, 너를 살려주려고 해. 놀라지 마.” 장갑을 낀 두 손으로 고라니를 붙잡았다. “쾌~액 쾌~액” 하며 몸부림쳤다. 연신 “괜찮아, 괜찮아”하며 달래 주었다. 정기는 “아야!” 하며 걱정한다. 어머니가 갓난아기를 가슴속에 꼬~옥 안 듯이 나도 그렇게 안고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무서우니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갈까? 우리 집에 너만 한 ‘똘랭이’가 있는데 함께 살자. 엄마가 보고 싶어서 못가지? 엄마를 만날 때까지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았다. 소나무 앞에 긴 풀숲이 있었다. 옳지 여기가 좋겠군. 나는 새끼를 내려놓았다.

 “여기서 엄마를 불러봐라. 어서 엄마를 불러봐!

 새끼는 탈진을 했는지 헐떡거렸다. 나는 바가지에 물을 떠 와서 머리맡에 두었다. 손을 적셔서 몇 방울을 코언저리에 떨어뜨렸다. 엄마가 아무나 주는 것은 먹지 말라고 했나 보다. 갈증에도 불구하고 혀조차 내밀지도 않는다. 숨어서 한참을 보아도 그대로 있을 뿐이다. 사방을 훑어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내가 가기만은 기다리고 있겠지. 풀은 다 뽑지도 못하고 점심때를 훨씬 넘기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운명이라 게 무엇일까? ‘인명은 재천이다.’라고들 하지만 주어진 삶의 환경이 힘들면 하늘의 수도 다 못 채우고 떠나겠지. 고라니는 사슴처럼 예쁜데도 농작물을 먹어댄다고 천대를 받는다. 사슴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고라니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오늘 본 고라니 새끼는 예뻤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회갈색 옷을 입고 있었고, 등에는 점박이 무늬가 있는 게 예쁜 강아지처럼 보였다. 엄마는 하필 여기서 새끼를 낳았을까? 아니면 인근 ‘천잠산’에서 모처럼 나들이를 왔을까? 지금쯤 엄마를 만났을까? 날이 어두워지면 엄마도 새끼도 불안할 텐데. 많이 살아야 12년 정도 산다는데 이제 돌도 지나지 않았으니 어찌할꼬? 운명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아빠는 지금쯤 온 동네를 새끼를 찾으러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 불쌍한 고라니 가족을 생각하니 어느 목사님의 「집으로 가자」 찬양곡이 떠올랐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 이런 눈물, 흘리지 않는 곳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 내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 곳에

 안녕 친구여, 곰곰히 생각해봐 / 그대는 지금, 자유로운지(중략)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자 / 내 아버지, 기다리시는 그 곳에‘

 

 짧은 생애를 살고도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살고 간다며 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지 말라고 한 고() 김성수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이 지은 노래를 고라니 가족에게 들려주고 싶다. 예쁜 강아지야, 부디 엄마 아빠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라.

                                                       (2020.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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