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의 즐거움

2020.07.09 19:44

구연식 조회 수:4

아파트 생활의 즐거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나는 군산에서 40여 년간 살던 개인 주택을 처분하고 맞벌이 아들 집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서 난생처음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동도 미소 드림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5년쯤 살고 있다. 주위에서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려면 구닥다리 세간들은 모두 버리고 가야 한다고들 했다. 아내는 결혼 때 혼숫감으로 가져온 자개장롱과 문갑은 아침저녁으로 여닫으며 기름걸레로 닦아 보존하여 유난히 친정엄마의 애틋한 정이 묻어있다. 또 아이들을 키울 때 첫 번째로 장만한 피아노도 선뜻 정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사하기 하루 전날 며느리가 아내에게 어머님, 옛날 농과 문갑은 고풍스러워 아파트에 가져가면 좋아요. 그리고 피아노도 손자 율()이가 크면 칠 수 있도록 가져가세요.” 라고 충고를 했다. 아파트에서 낳고 자란 신세대 며느리의 이 한마디에 따지지도 않고 모두 가져가기로 했다.

 

 그런데 제한된 아파트 평수에 이 많은 세간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장독대의 장독들은 모두 시골 부모님 댁으로 미리 옮겨 놓았다. 나는 아파트 방마다 가로세로를 모두 다 정확히 자로 재어서 설계도를 그렸고, 가져갈 가구 하나하나마다 가로세로 치수도 정확히 적어 번호표를 붙였다. 그리고 방마다 크기에 맞게 가구 번호를 모자이크 맞추는 식으로 배치하여 이사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방마다 가구에 붙인 번호표대로 운반하여 맞추니 가구가 완벽하게 배치되었다. 이사업체 사장은 몇십 년 이사 업무를 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며 칭찬했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셔서 부모님이 쓰시던 시골집의 작은 물건들은 시간 있을 때마다 아파트 베란다로 옮겨 놓아 베란다는 박물관이 되었다. 아내는 개인 주택에서 가꾸던 정원의 꿈을 못 버려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꾸며 컵라면 크기의 작은 화분 100여 개로 각종 꽃을 가꾸고 있다. 아파트에서는 시골처럼 마실을 오가는 경우가 적어도, 어쩌다 우리 집에 주민들이 오셨을 때 안방의 자개가구와 베란다의 옛날 물건 그리고 작은 정원의 꽃구경을 하시면서 미소를 담아가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아파트로 이사 갈 때는 이사떡을 돌려야 된다고 해서, 이사를 하고 첫 번째 토요일에 떡집에서 이사 떡을 넉넉히 주문했다. 우리 라인이 40가구이고 경비실 아저씨몫까지 주문하여 제일 위층에서부터 도표를 그려 호수 번호를 써서 아내와 같이 떡 접시를 들고 초인종을 누르며 인사를 드리고 떡을 드렸더니, 아파트의 이름처럼 밝은 미소로 맞이해 주셨다. 집에 안 계시는 집은 X표를 표시해놓고 다시 저녁때 방문하여 떡을 거의 다 돌렸다. 그래서인지 주민들과 서먹서먹함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의 시골 고향 익산 왕궁 부상천 마을은 5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없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아침저녁으로 자주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더구나 아파트 옆에 초등학교가 있어 유난히 젊은 부부와 어린이가 많아서 언제나 시끌벅적하니 사람 사는 것 같아서 늘 활기 있고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아파트다. 어렸을 적 시골집에 살던 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는 빗줄기와 눈송이를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픈 호기심이 생겨 어른이 되었어도 그 충동은 그대로인데, 우리 집 아파트는 15층이어서 눈·비가 올 때 베란다에 서면 이제는 눈송이와 빗줄기를 타고 올라와서 내려가는 기분이어서 어린 시절 꿈을 이제야 이룬 것 같아 눈·비 오는 날은 눈·비속에 파묻혀 동화나라에서 사는 것 같아 흐뭇하다.

 

 같은 층 옆집 아저씨는 휴일이면 낚시를 좋아하셔서 지난 추석 때쯤 바다낚시에서 살이 통통 오른 병치를 잡아 오셔서 많이도 주셨다. 우리 전라도에서는 병치가 제사상에 올라가는 필수적 생선이어서 희귀하고 값도 비싸서 아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부모님 추석 제수로 옆집 아저씨 덕분에 고맙게 올려드린 적도 있다. 그런데 요사이는 그 아저씨네가 인근에서 밭농사를 짓는지 양파를 재배하시어 몽땅 주셨다. 맨날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하다. 아내는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나이가 엇비슷한 아주머니를 사귀었다. 우리 집은 지금도 가을 김장은 시골집에서 담가서 가져온다. 그래서 아내는 가을만 되면 연중행사인 김장을 제일 걱정한다. 아내의 김장 걱정을 들었는지 그 친구분은 부모님 시골집에 가서 김장거리를 뽑고 간을 죽이고 다음 날에는 김치 담그기까지 해 주셔서 지난가을 김장은 아주 편히 했다. 아파트도 오히려 이웃끼리 지내기 나름이지 꼭 무미건조한 시멘트 문화만은 아니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니 마당의 제설작업이나 제초작업 등 일거리가 없어서 여유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긴 여행이나 외출할 때 여러 곳에 잠금장치가 필요 없어 홀가분하게 나갈 수 있고, 아무 때나 들어 올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여유 있는 시간과 마음을 취미활동과 봉사활동에 쪼개서 활동하니 좋다. 취미활동으로는 익산의 이소헌서예실에서 먹을 갈면서 마음도 닦고 있다. 그리고 특수 대안학교 형태인 무궁화학교에서 관리자로 봉사하고 있으니 아파트가 나에게 준 늘그막의 선물이다. 내가 사는 동도 미소드림 아파트는 변방에 있어서 주위에는 논밭이 많다. 요즈음 낮에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아 아파트 건물에 부딪혀서 공명효과를 더해 뻐꾸기 왈츠는 숲속의 아파트로 잠재우고 있다. 해질 무렵에는 주위의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합창이 시멘트 정글을 녹여 오순도순하게 이웃을 불러낸다. 이때쯤이면 나와 아내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악산 줄기에 걸쳐 펄럭이는 황혼의 비단 자락을 바라보면서 두 사람의 황혼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자고 잡은 손 놓지 않고 매일매일 오솔길을 돌고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자연을 찾아서 주거지를 정했으나, 현대산업사회에서는 자연의 환경을 조성하고 집단 주거지를 정하여 문화와 의료혜택을 만끽하고 있어 평균수명도 연장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은 사회라는 장소에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물리적 환경과 인간을 고기와 물에 비유했다. 너무나 평범한 진리 속에 현대사회의 아파트 문화를 예견한 일면의 설파로 본다.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아파트문화는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전주 동도 미소드림아파트로 이사 올 때는 손자를 돌봐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들네와 아파트 동 번호와 층수는 같고 라인만 다른 아파트 2채를 샀기 때문에 아들네와 우리는 숙식은 따로 하고 있다. 자녀가 결혼 후에도 부모와 같이 사는 가족 형태를 확대가족이라 하며, 가족 구성은 확대가족과 같지만 확대 가족처럼 한 집에서 살지 않고 현대산업사회에 알맞은 절충형 가족 형태로 각 가계가 가까운 데 살면 각자의 생활문화를 즐기면서 자주 만나거나 돕는 형태의 가족을 수정확대가족(修正擴大家族)이라 한다. 그래서 나와 아들네의 가족 형태는 수정확대가족으로 산업사회에서 노인문제와 아동문제를 아우르게 하는 가족 형태로 심리적 부담 없이 오붓하게 사는 우리는 신세대 아파트 가족이다.

                                                                        (202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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