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첫 수필집 발문

2020.07.12 19:57

김학 조회 수:3

<이진숙 첫수필집 발문>

                                                여류 화가가 자기 삶속에서 건져 올린 수필들

                                     -이진숙 첫 수필집 『바람과 새들이 준 선물』출간에 부쳐-

 

                                               김 학(수필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지도교수)

 

 

1. 수필가 이진숙의 문학 환경

 

 수필가 이진숙은 청빈한 경찰관인 전주이씨 아버지와 가난한 살림에도 꿋꿋이 생활하는 장수황씨 어머니 사이에서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이진숙은 경찰인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초등학교를 무려 다섯 군데나 옮겨 다니다가 전주에서 졸업을 했고, 전주기전여중‧고를 거쳐 익산 원광대학교를 졸업했다.

 이진숙은 미술을 전공하여 33년 동안 전라북도 중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진숙은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전주시내 한적한 곳 장동에 터를 마련하여 2층 집을 짓고 살면서 그림을 그리고 틈틈이 글을 쓰는 한편 텃밭을 가꾸며 남편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진숙은 조선시대 여인처럼 조신하게 살다가 20대 중반에 중매로 임실군 운암 출신 전주최씨 최득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맞벌이를 하며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다. 이 자녀들은 전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대학은 서울로 진학을 했었다.

 아들 최기용은 유리공예를 전공하고 영국 에딘버러디자인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그 모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또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며느리 원미선은 에딘버러디자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영국에서 보석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딸 최지은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IBM KOREA에 다니며 핀란드 총각과 연애결혼을 하여 1남2녀를 낳았다. 딸은 한국에서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근무하다가 온가족이 남편의 나라인 핀란드로 돌아갔다. 딸은 핀란드로 돌아가서도 마이크로 소프트사에 다니며 핀란드 제2의 도시 에스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아들은 영국에 살고 딸은 핀란드에서 사니, 우리나라에는 노부부만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수필가 이진숙은 자기 계발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화가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듯이 교직에서 명예퇴직 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공부를 시작하여 종합문예지『대한문학』2015년 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당당히 수필가로 등단했다. 마침내 등단 5년 만에 첫 수필집을 출간하게 된 셈이다.

 화가로 활동하던 이진숙이 수필가란 또 하나의 타이틀을 자랑하게 된 셈이다. 수필가 이진숙은 이번 첫수필집『바람과 새들이 준 선물』에서 70편의 수필을 6부로 나누어 한 권의 수필집을 엮었다. 이제 이쯤에서 수필가 이진숙의 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2. 이진숙 수필 들여다보기

 

 수필은 작가와 독자의 힘겨루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펼쳐지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이야기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독자의 심리상태를 예상하고 그에 대처하면서 수필을 빚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읽을거리가 풍부한 오늘의 독자는 겨자씨 같은 결점만 발견되어도 읽던 책을 금세 덮어버리려고 한다. 수필가는 독자의 그런 심리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독자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지 않게 작품을 빚어야 한다는 말이다. 독자가 처음부터 호기심을 갖고 작가에게 끌려오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 편의 작품을 다 읽은 뒤에 독자가 머리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치며 공감의 미소를 자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가 수필가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공항이 이렇게 슬픈 곳인 줄 처음 알았다. 매번 설렘을 가득 안고 출국하여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곤 하는 곳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싶다」의 서두

 

 요즘엔 누구나 해외나들이가 일상화 되고 있다. 수필가 이진숙도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를 왜 이렇게 비장하게 표현했을까? 서울에 살던 핀란드 사위가 자녀 3남매를 데리고 핀란드로 떠나게 되자 그 이별의 슬픔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다. 행여 공항에 가는 길이 막힐세라, 세 녀석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식탁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했다. 전날부터 가지고 갈 짐들을 차에 실어놓은 터라 간단히 가방만 챙겨서 출발했다. 가는 내내 차속에서 3남매는 엄마와 신나게 노래하며 마치 즐거운 가족여행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일찍 서둔 덕에 여유 있게 도착하여 수화물을 부치고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나니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이란다. 갑자기 가슴이 탁 막히고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애써 웃으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고, 사위에게 잘 가라는 포옹을 하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애써 참고 또 참으며 웃는 얼굴로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차장으로 가는 내내 남편도 나도 남아 있는 딸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속에서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보고 싶다」중에서

 

 손자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는 외할머니의 마음을 진솔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이들 외손자외손녀 3남매는 태어나서 외할머니 뒷바라지를 받으며 자랐으니 얼마나 깊이 정이 들었겠는가?

 수필가 이정림은 『수필쓰기』라는 자기 수필이론서에서 수필가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첫째. 수필은 소리내어 통곡하기보다는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글이다.

 둘째. 수필은 기쁨을 활짝 드러내기보다는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게 하는 글이다.

 셋째. 분노를 폭발시키기보다는 조용히 잠재우는 글이다.

 넷째. 수필은 고독을 천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글이다.

 수필쓰기의 정도를 일깨워주는 가르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쭉쭉 뻗은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수십 차례, 아니 수백 차례의 붓질로 내가 생각한 소나무가 화면에 나타나는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밖의 날씨가 더워서 온 세상이 다 녹아내릴 것 같아도 내 손끝에서 태어나는 소나무를 보면 시원한 청량음료를 마신 듯했다. 몸이 피곤하여 2층 작업실에 오르는 계단이 힘들어도 손에 붓만 잡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운 힘이 솟구친다. 누군가 예술은 마치 마약과도 같다고 했다는데,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엇인가가 오늘도 2층 작업실로 나를 이끈다.

「그림을 그리며」중에서

 

 화가로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심정을 진솔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화가들은 그래서 피곤해도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릴 것이다. 수필가들은 현재에서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또 미래로 상상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수필가 이진숙의 단독주택은 뜨락이 넓어서 온갖 꽃들이 다투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수필가의 집이요 화가의 집이니 그러려니 싶다.

 

 매일매일이 설렘의 연속이다. 현관 바로 옆에 있는 장미와 조팝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팝콘을 만들어 내느라 분주하다. 덩달아 옆집 배과수원에서도 팝콘 터지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린다. 화단 한쪽에 있는 외동백은 나무에서 꽃을 피우더니 이내 바닥에도 그득하게 붉은 꽃을 피워내고 있다. 마당 가득 자두 꽃향기가 그윽하니 우리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하다.

 닭장주변에는 머위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언덕에 있는 두릅나무는 ‘지금이 딱이야‘ 하는 듯 연녹색 봉오리가 솟아있다. 또 돌보지 않아도 솟아오른 취나물이 눈에 띈다. 그 아랫녘에 원추리도 파릇한 것이 입맛을 돋우고 있다. 텃밭에 있는 쪽파도 뒤질세라 새벽에 단비를 맞고 더욱 새파랗게 올라와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모습에 나는 덩달아 매일 열리는 그들의 축제에 한 몸이 된 양 즐기고 있다.

「우리 집은 지금 축제 중」서두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룬 이진숙의 단독주택 봄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상상만 해도 아름다운 화원을 떠올릴 만큼 감동적인 정경이다. 수필가 이진숙은 스스로 가야할 길을 확실히 알고 있고 흐트러짐 없이 그 수필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어서 믿음직스럽다,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가 기억에, 철학이 이성에 의지할 때, 문학은 상상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상상력이 들어가지 않은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 말은 수필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금과옥조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5년 만에 아들 내외가 집에 왔다. 아니 처가에 왔단다. 5년 전에도 하나뿐인 처남이 장가를 간다며 왔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장인 어른의 칠순이라며 왔다. 우리 내외는 그간 서너 차례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에딘버러에 가서 그들과 같이 오랜 시간 여행도 했었고, 또 재작년에는 모처럼 딸의 계획으로 태국에서 가족여행에도 함께 했었다. 나는 또 지난해 10월에 프라하에서 아들 내외와 같이 여행을 했었다. 하지만 며느리의 부모님은 그들이 에딘버러에 유학을 가서 영주권자가 된지 2년이 지나도록 한 차례도 그곳에 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딸을 보고 싶은 심정이 오죽했을까?

 다행스럽게도 그간 두 번의 큰 행사 덕분에 그나마 딸과 사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처가의 모든 행사를 다 끝내고 드디어 아들 내외가 여동생과 함께 전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출발했다는 전화를 받고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전주에서 에딘버러까지 비행기를 타고 열두어 시간을 가는 것만큼 지루했다.

「Welcome to Korea」서두

 

 오랜만에 외국에서 돌아온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이 진솔하게 잘 그려지고 있다. 수필가 이진숙은 어떤 글감을 만나더라도 멋진 수필로 빚을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다. 수필가 이진숙은 수필공부를 하러 오는 날에도 수강생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다. 남편 홀로 두고 밖에서 어울려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의 날이면 남편이 승용차를 몰고 와서 아내를 모셔 간다. 집에서 부부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위해서다.

 

 우리 내외는 맞벌이를 했다. 그러니 젊은 시절에는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겨우 아침 한 끼 차려주는 것이 다반사였다. 물론 남편도 직장생활 하면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지낼 때가 태반이었고…. 특히 ‘대두 한 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으레 퇴근 후는 술에 떡이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다. 이렇게 30년도 넘는 세월을 각자의 생활로 바쁘게 살다보니 나는 남편에게 살가운 아내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공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나보다 먼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이른 아침에 내가 출근하고 나면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먼 훗날 집을 지을 요량으로 근교에 땅을 조금 마련해 두었는데, 매일 그곳으로 출근하여 혼자 점심을 해 먹고 퇴근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직장을 정년퇴직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지만 평생 곁에 있어야 할 남편을 외롭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또 평소에 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 퇴장하자’라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삼 세끼 내 남편」 중에서

 

 이 단락만을 보더라도 수필가 이진숙은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현대판 신사임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요즘의 여성들이 퇴직한 남편을 일컬어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라 비아냥거린다는데 아직도 이렇게 남편을 배려하는 아내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심성의 소유자이기에 독자가 감동할 수 있는 수필을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윤오영 선생은 일찍이 시를 복숭아(挑)에, 소설을 밤(栗)에, 수필을 곶감(乾柿)에 비유한 적이 있다. 곶감은 감으로 만들지만 그렇다고 감이 곧 곶감은 아니라고 했다. 감의 껍질을 벗겨서 시득시득하게 말리면 속에 있던 당분이 겉으로 나타나 하얀 시설(柹雪)이 앉는다. 그 시설이 앉은 다음 혹은 납작하게 혹은 네모지게 혹은 타원형으로 접어야 한다고 했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라는 것이다. 곶감을 접는다는 것은 바로 수필의 형태를 일컫는다고 했다. 수필은 이렇게 해서 만든 곶감이라는 것이다. 곶감을 접는다는 것은 바로 수필의 형태를 말한 것이다.

 수필가 이진숙은 산책을 즐긴다, 특히 집에서 가까운 전주수목원을 자주 찾는다. 수목원 가는 길에 보이는 정경을 그의 눈은 하나도 흘려보지 않는다.

 

 흔히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심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으니 ‘고려장’이라 다름없다고 한다. 그 말에 틀렸다거나 맞는다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것 중 가장 야릇한 곳이기도 하다. 드디어 수목원 들어가는 길이 훤하게 내 눈에 보였다. 지금은 넝쿨장미가 한창인 듯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넘치게 피어 있다. 가로수도 가장 아름다운 청록색으로 빛나는 때인 양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나는 가끔 나 혼자 수목원에 온다. 수목원 오는 길에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나에게 소중한 길동무들이다. 수목원에 들어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또 나의 소중한 길동무들을 만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옷이 흥건하게 젖어 있다.

「수목원 가는 길」결미

 

 웃음과 칭찬은 사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이 두가지 무기를 잘 활용하면 세상살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간난아이는 하루 평균 300번을 웃는데 어른이 되면 17번밖에 웃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순수성을 잃었기에 웃을 일이 줄어든 것이리라.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웃음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모름지기 웃음이란 무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가 이진숙은 잘 웃는 사람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의 할머니가 항상 얼굴에 웃음을 띄고 있으니 인상 좋은 할머니로 보이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신고 가신 꽃신은 참 예쁘기도 하고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그리고 내 기도를 들어주신 양 서너 시간의 혼란 속에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셨다. 훌훌 털어버리셨다고는 하지만 어찌 이승에 한 점 미련이 없으셨을까! 구순이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지낸 남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친구 같이 다정한 분에게 따뜻한 눈길도 주지 못하고 한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고 떠나셨으니,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꽃신을 신고 길 떠나신 시어머니」중에서

 

 남편을 두고 구순에 눈을 감으신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자는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과 남편의 아내사랑에 힘입어 고부갈등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후일담이 눈길을 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어느덧 나도 6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 마음고생을 시킨 시어머니와 언젠가는 마음을 터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으려니 생각했었다. 현실은 TV드라마가 아니었다. 식구들이 둘러 앉아 지켜보는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또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눈을 감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디.

「꽃신을 신고 길 떠나신 시어머니」 중에서

 

 수필가 이진숙의 이목구비는 언제나 열려있다. 수필가로 등단한 뒤부터 그 기능은 더 눈부시다, 거미가 망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듯, 벌과 나비가 꿀을 따러 꽃을 찾아 나서듯 수필소재를 찾는다. 그의 눈에 보이고, 그의 귀에 들리며, 그의 코로 맡게 되고, 그의 혀로 맛보게 되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수필이란 비단으로 짜여진다. 그는 앞으로도 영원한 수필 사냥꾼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3. 수필가 이진숙이 가야할 길

 

 사냥할 때 진돗개는 한 번 목표물을 물었다 하면 결코 놓지 않는다고 한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는 이야기다. 수필가라면 이런 진돗개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수필가가 펼쳐놓은 그물에 한 번 걸렸다 하면 그것이 어떤 소재이던 결코 놓치지 말고 한 편의 수필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진숙 수필은 수필 이론이 몸에 밴 뒤 빚어낸 수필들이다. 오랜 창작활동에서 터득한 문리(文理)가 아닐까 싶다. 구성이 짜임새 있고, 내용 전개나 결미도 함축성이 담겨져서 독자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수필가 이진숙은 앞으로 더 많은 여행, 더 많은 독서, 더 많은 대화로 견문을 크게 넓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필의 소재는 아무 곳에나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을 찾아낼 줄 아는 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수필이란 안경을 끼고 찾는 사람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수필가 이진숙의 첫수필집 『바람과 새들이 준 선물』출간을 축하하며 앞으로 제2, 제3의 수필집을 잇달아 출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문운창성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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