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2020.07.16 14:04

이우철 조회 수:0

나그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이사(移徙)를 하느라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자주 오를 수 있는 전주 학산이 있고 주변에 마음을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니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데, 며느리의 복직을 앞두고 세 아이가 눈에 밟혔다. 고향에서 조금씩 멀어지다 보니 못내 아쉽고 마음은 아리지만 이 일이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여 거처를 옮기기로 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사다니기가 부담스럽다. 한 곳에서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75세에 정처없이 고향을 떠났다지만 나는 목적지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해보니 신접살림을 시작한 이후 십여 번 이사를 다녔다. 신혼 초에는 경제적 형편 때문에 그랬고, 가족이 늘어나면서는 집을  조금씩 넓혀 가느라 그랬다. 우리의 욕심은 늘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허둥대며 길을 걸었다.

 

 사십대 초반, 처음 마련한 기린봉아파트는 뒷산이 좋았고 시내가 가까운 곳이었다. 주택조합을 결성하고 3년여 동안 정성들여 지은 건물이니 애착이 많은 곳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는 어머니 계시는 호성동으로 이사를 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여름이면 개구리, 매미소리로 잠 못 이루던 마을, 비록 교통은 불편했지만 아들과 딸이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기까지 정이 들었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최근에 살았던 곳은 평화동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여가생활하기에 딱 좋았다. 자연경관이 잘 어우러진 산이 있고, 고향 가는 길목에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학산(鶴山)을 오르내리며 마음의 휴식을 찾았고 수시로 고향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함께 산을 오르며 대화를 나누었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잔잔한 기쁨이었다.

 

 아들이 사는 곳은 ‘세종시’다. 요즘 젊은이들과는 달리 세 자녀를 두었으니 아이들을 기르느라 온 정성을 쏟으며 산다. 기를 때는 힘들어도 자손이 번성하는 일이니 이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으랴. 사랑스럽고 날로 변해가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새 힘이 솟았다. 안타까운 것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다니던 며느리가 직장을 7년째 휴직중이니 애가 탔을 것이다. 지난해 극장가를 휩쓸던 영화 “82년생 김지영” 은 며느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 부부는 복직을 앞두고 갈등하는 며느리를 돕기로 했다. 말 못하며 겪는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아들 사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평화동에 살면서 학산에 정이 들었고 등산에 맛을 붙이던 중이었으니 아쉬움은 컸다. 하지만 우리의 손길이 필요하다는데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손자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요 든든한 버팀목처럼 느껴졌다.

 

  모든 일에 명암이 있기 마련,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은 당연한 일이다. ‘옷은 새 옷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는데 친구 동호인들과의 관계가 제일 아쉬웠다. 그럼에도 지역마다 교회와 문화센터는 있을 터, 거기서도 그간 다져온 취미활동을 하다보면 많은 동료가 생기리라. 수필공부는 당분간 전주로 다니기로 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을 낯설게 보라’했으니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해보리라.

 

 우리가 바라는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도 선물처럼 ‘이것이다’고 가져다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가족과 함께하며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끈한 인연을 맺다보면 행복은 찾아들 것이다. 또 다른 나그네 여정을 시작해보자.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손녀가 ‘할아버지!’하며 달려드니 행복하다.

                                                                                 (202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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