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와 특화거리

2020.07.22 13:37

한성덕 조회 수:3

 가로수 특화거리

                                                                    한성덕

 

 

 

  20015, 성지인 이스라엘을 다녀온 바 있다. 내친김에 몇몇 나라들도 여행을 했다. 프랑스의 초고속열차(TGV)를 타고 해저터널로 영국을 갈 때는, 감탄도 감탄이지만 캄캄하고 너무 답답했다. ‘창문 전체를 강화유리로 만들어 바다속을 보면서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도, 300km 고속인데 무슨 구경이야. ~ 지나가고 말건데.’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의 나라들 건물은, 마치 움직이는 박물관처럼 보였다. 고고(高古)한 맛에 고풍스러운 멋까지 풍겼다. 지금도 몽마르트 언덕에서 위용을 뽐내던 ‘사크레쾨르’ 대성당(1910년 완성)이 눈에 선하다. 그 언덕이 시내에서 가장 높다지만 129m에 불과했다. 그런데 몽마르트언덕을 돋보이는 게 가로수 아니었나? 할 정도로 가로수에 대한 인상이 짙다. 그 나무를 보는 순간, 나는 잎과 꽃에 홀딱 반했다. 잎의 대부분이 일곱 개인 속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고깔모양의 꽃이 너무 예뻤다. 어떤 세파에서도 꺾이지 않을 것 같은 꽃의 위풍당당함이, 프랑스인들의 자존감을 대변하는 듯했다. 가이드가 ‘마로니에’라고 일러주었다. 대중가요에서 듣던 그 마로니에란 말인가? 지난(至難)한 세월 속에, 한국인이 어떻게 파리까지 와서 이 나무의 꽃을 보고 노래로 만들었는지 의아했다.    

  아무튼, 가로수는 추억을 담아낸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은 단연코 으뜸이다. 이국적 풍경은 판타지를 연출하고, 한 여름의 초록빛 동굴은 그 자체가 멋스러웠다. 전북 진안에도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다. 영화 ‘국가대표’와 드라마 ‘내 딸 서영이’를 비롯해, 각종 영화와 TV에 등장하면서 인기가 상승했다. 곧게 뻗은 나무에 흐드러진 잎의 메타세쿼이아 길은 운치가 있다. 진안은 산과 어우러져 더욱 그렇다. 따스한 햇살 속 연둣빛의 봄, 싱그러운 초록빛의 여름, 붉은 색상에 가슴 설레는 가을, 그리고 앙상한 가지의 겨울을 보여준다. 추해보이는 겨울 같지만, 북유럽의 눈 쌓인 숲속인 듯 몽환적인 풍경에 몸을 떤다. 어머니를 뵈려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무주를 오가며 종종 가는 길이다.    

  전주에서 출발하면, 완주군 화심에서 구도로인 모래재를 넘는다. 꼬부랑하기로 유명한 속리산의 말티재를 방불케 한다. 고개 정상의 터널을 지나면 십리 길 아기 메타세쿼이아가 반긴다. 인기상승에 따라 진안군에서 몇 년 전에 대대적으로 심었다. 좀 더 가면, 1,5km의 길에서 기존의 아름드리 메타세쿼이아가 장관을 이룬다. 추억을 담아내는 가로수로 폼 나는 길이다.

  전주시내 가로수 대부분은 느티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다. 최근에는 도로중앙에 소나무가 보인다. 한옥마을의 회화나무는 특종감이다. 일찍부터 ‘학자의 나무’ 또는 ‘선비의 나무’로 사랑받던 수목이 아니던가? 나무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어 한옥마을에 썩 어울린다. 이처럼 거리의 특성을 살리고, 그 특성에 맞도록 전주 시내를 가로수 특화거리로 만들면 어떨까? 이를테면, A거리는 무궁화, B거리는 소나무, C거리는 마로니에로 시작해서 배롱, 자작, 자귀, 팽나무, 플라타너스 등으로 말이다. 최근에는 마로니에가 진안에서 재배되고 있다는 말에 놀란 적이 있다. 파리의 추억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나는, 전주를 ‘한국의 명품도시’라고 뽐내면서, 도로 양쪽에는 정작 무궁화나 소나무가 없음을 무척 아쉬워하는 사람이다. 전주 시내를, ‘가로수특화거리’로 조성하면 얼마나 좋을까? 추억을 담아낼 생각에 그저 가슴이 설렌다.  

                                       (2020.7.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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