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과 숱한 애국자들

2020.07.26 13:57

두루미 조회 수:2

주시경과 숱한 애국자들이 지킨 말과 글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려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려진다.”

1914년 오늘,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은 이 말을 남긴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급사했다는 비보를 듣고 넋을 잃습니다. ‘크고 맑은 샘’이란 뜻의 호처럼 위대한 정신의 인물이었지만, 과로와 가난 때문에 허약하게 지내다가 급사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마련한 밥을 먹다가 급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망원인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한힌샘은 1446년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우리말 문법과 사전 편찬의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뜻을 이은 제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큰사전을 만든 것은 영화로도 나왔죠?

한힌샘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회의를 느끼고, 배재학당에 입학해서 새 학문을 만납니다. 그곳에서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한글을 가르치는 것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헐버트는 “조선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놔두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는가?”라고 주장했습니다.

헐버트는 미국에서 서재필 박사가 귀국하자 함께 ‘독립신문’을 만듭니다. 한힌샘은 ‘독립신문’ 한글판의 교열을 맡았고 한글 띄어쓰기를 선보였습니다. 헐버트는 영문판 편집을 맡았고요.

주시경 선생은 지리, 수학을 별도로 전공했으며 9개 학교와 조선어강습원에서 우리말, 지리,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보따리로 책을 싸서 빡빡한 수업일정에 맞춰 뛰어다닐 때, 보따리가 휘날리는 모습 때문에 별명이 ‘주보따리’였다고 합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면 지식이 넘쳐나서 그런 이름이 생겼을 수도 있겠지요?

한힌샘과 숱한 학자들이 목숨 바쳐서 지키고 다듬은 한글은 세계 지성인들의 극찬을 받고 있습니다.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 자신의 말을 표현하기 위해 한글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고, 한류 열풍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지요. 무엇보다, 쉽고 과학적인 한글은 대한민국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기여했고,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이 됐지요.

그러나 요즘 한글과 한국어가 퇴보하고 홀대받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사람들은 영어 단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말 단어나 표기 모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요. 인터넷 뉴스 댓글을 보면 표기가 제대로 된 것이 드물 정도입니다. 거리와 가게,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공장소에는 맞춤법과 표기 원칙에 어긋난 글들이 널려 있습니다. 공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의 기사에서도 틀린 표기와 어법이 넘쳐납니다.

물론, 우리 맞춤법이 수정을 거듭해서 세부적으로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저도 종종 틀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중한 말과 문자를 올바르게 쓰려고 노력은 해야 할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컴퓨터 문서파일에서 단어 아래에 줄이 쳐져 맞춤법 오류 가능성을 뚱겨주면, 혹시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은 해야겠지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말과 글에 좀 더 유의해야 합니다. 정확한 단어, 아름답거나 핵심적인 말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글과 말이 번져가야 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지 않나요?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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