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30 13:36
남편 따라서 병원을 갈 때 심심하면 암송하려고 가져갔던 ‘신석정의 작은 시집’이 화두가 되어 병실사람과 대화를 했다. 그녀의 고향은 전주라서 고향 사람, 그리고 동갑이라는 매개로 더욱 따뜻한 가슴을 열어주었다. 이후 짬이 날 때마다 자판기 커피를 나누었다. 그녀는 집이 얼마 멀지 않은 곳이어서 매일 외출을 했다.
그 때마다 필요한 물품을 부탁하기도 하면 도움을 주었다. 웃음이 멎은 병실에 생기를 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 처럼 둥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고 거의 누워서 생활을 했다. 간혹 클래식 음악 소리가 침상 밑으로 흘러나올 뿐이었으며 외진이 있을 때만 일어나 모습을 보였다.
신석정 집안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뒤 선입견 때문인지 표지 모습과 닮아 보였다. 그 옆 침대에는 젊은 청년이 입원을 했다. 병색도 없는데 왜 입원했을까? 잠시 생각하다 잊었다. 다음 날 젊은이가 수술을 마치고 왔다. 젊은 엄마는 아들을 안고 “자지마, 자지마.“를 외치며 뺨을 때린다.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가 싫어 생각을 접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뺨을 때리는 엄마의 손은 멈춤 없이 계속되었다. 슬며시 옆으로 가서 청년의 침대를 들여다보니 창백한 얼굴로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수술을 했다지만,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고 쇼크 상태였다. 나는 황급히 간호사실로 뛰어가 ”쇼크요.“ 하고 외쳤다.
간호사들이 곧바로 뛰어왔다. 교수가 오고 청년은 바로 수술실로 이송되었다. 재수술을 했다고 한다. 청년의 엄마가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청년은 아버지에게 자기 간을 이식해 주는 수술을 했다고 한다.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는 중환자실로 갔으나 아들은 건강해서 바로 입원실로 올라왔단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재우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자려고 해서 뺨을 때렸다” 고 하며 혈관이 터져 출혈이 되는 줄도 모르고.….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워했다.
나는 괜히 쑥스러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아드님을 하느님이 보살펴 주신 것다.”고 했다. 오래전 병원에서 쇼크 환자를 접한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 이 청년의 상태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평소에 남의 침대를 잘 기웃거리지 않는 성격인데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내 눈에 띄어 쇼크임을 직감하고 그 청년을 구한 것 참 신기하다.
간호사실 바로 앞방에 있게 해 준 것도 모두 청년과 무슨 연결 고리로 이어진 듯 조화로웠다.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 했다. 그렇게 천륜으로 만난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을 선뜻 내어준 청년이 기특했다. 그리고 그의 효성이 아름답다. 청년과 함께 입원해 있던 남편도 연이 맞는 의사를 만나 새 생명을 얻기도 했었다.
간이 나빠서 정기 진료를 받던 중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간 진료를 하던 분이 왜 위를 검사해보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권유에 따라 위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위암 초기였다. 바로 수술을 받고 완치를 했던 생명의 은인이었다. 비록 남편은 떠났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여러 해 동안 알뜰하게 건강을 보살펴 준 의사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귀한 생명을 연장시켜 준 그분의 고마움을 품고 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이웃들과 어울려 사는 삶은 기적보다 소중하다.
◇ 박귀덕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했으며 전북문인협회 부회장, 행촌수필 회장, 전북수필 회장, 수필과비평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수필집 <삶의 빛, 사랑의 숨결>,외 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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