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2020.09.12 17:48

윤근택 조회 수:60

살다보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최근에 내가 써서 인터넷 매체에 올린 작품,‘U턴(1)’속에서 꽤 의미 있는 문장 하나를 다시 뽑아 옮기고자 한다.

  “사고(思考)는 처녀의 젖가슴처럼, 애인의 젖가슴처럼 말랑말랑해야 한다.”

  나는 그 문장을 통해, 어떤 ‘확증편향(確證偏向)’을 꼬집은 것이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일컫는다.

  나는 아주 최근에, 날만 새면 만나게 되고 힘 합쳐 일을 해야 하는, 지근(至近)에 있는 어떤 이의 그 확증편향으로 말미암아, 그의 ‘상황인식 부족’내지 ‘위기관리능력 부족’내지 ‘상상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수모 아닌 수모를 되레 겪은 일이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참말로, 방귀뀐 놈이 성을 내는 꼴이었다는 거 아닌가. 바르르 떨며 그야말로 비분강개하던 그 꼴을 생각하면...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속상함은(?) 조금씩 누그러든다. 다음과 같이 여김으로써 그를 퍽이나 측은하게 생각하게 이르렀다.

  ‘반듯한 직장에서 인간경영을 전혀 해본 적 없고, 오로지 말단(末端)에서 ‘부림’만 당해 고자질에 익숙했던 모진 이를, 내가 또 한 차례 여기에서 다시 만난 것에 불과하리니.’

  아울러, 그 ‘사달’을 겪은 이후 내내 ‘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난다.’는 옛사람들의 그 귀중한 가르침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난다.’에 쓰인 ‘중’과 ‘소’는 각각 ‘중[僧]’과 ‘소[牛]’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는 데 특히 유의한다. 우리네 선조들이 그처럼 귀중한 가르침을 우리한테 누대에 걸쳐 물려주면서 ‘스님’을 속되이 ‘중’이라고 칭했을 리가 없다. 다만, 이따가 잠시 소개하겠지만, ‘길을 가다가 보면 더러는 소나기도 만나게 된다.’를 연상케도 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 이따가 ‘소나기(←소내기)’의 유래에 등장하는 스님과 농부와 소에 관한 스토리는 양념조로 따로 소개하겠다. 사실 거기 쓰인 ‘중’은 ‘중짜(中-)’를, ‘소’는 ‘소짜(小-)’를 각각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거 아닌가.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짜(大-)’즉 최선이겠지만, 살다보면 차선(次善)도 만나게 되고 또 그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는 일도 맞닥뜨릴 수도 있음을 그처럼 다독여준 말임에 틀림없다. 혹하게 말하자면, 저 러시아 대문호로 알려진 ‘푸시킨’도 우리네 선조들이 이미 깨달았던 그 진리,‘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난다’를 때늦게야 자기식으로 그렇게 노래한 듯싶다.‘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라고.

  어찌되었든, 나는 아주 최근에 환갑, 진갑 다 지났음에도 철없는(?) 어느 노인으로 인하여 속상해 한 일이 있다. 아메바처럼 단세포적인 사고(思考)를 지닌 채, 돌출 언행을 내지른 그로 인하여 마음 아팠던 게 사실이다. 하더라도, ‘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나는 법이려니, 더 이상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턱이 없다. 특히나, 내가 환갑, 진갑을 다 지난 터에.

  이즈음에 한 차례 추임새를 넣고 소나기 이야기로 옮겨가야겠다.

  “사고(思考)는 처녀의 젖가슴처럼, 애인의 젖가슴처럼 말랑말랑해야 한다.”

  ‘소나기’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본 스님과 농부와 소나기비에 관한 이야기. 새겨듣기에 따라서는 ‘살다보면 소나기비도 만나게 되고, 그 소나기는 잠시 피해가야 한다’는 교훈도 위 ‘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와 맥이 닿아있다.

  옛날에 어느 탁발스님이 무더운 여름날 탁발한 쌀을 자루에 담아 짊어지고 가다가 큰 나무 그늘에서 쉬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농부 한 사람도 소로 논을 갈다가 그 나무 그늘에서 함께 쉬게 되었다.

  농부가 탄식조로 말했다.

  “곧 모를 내야 할 텐데, 비가 안 와서 큰일이네요.”

  그러자 스님은 입고 있던 가사(袈裟)를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대꾸했다.

  “보아하니, 해지기 전에 비가 내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비를 학수고대하던 농부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 아, 이렇게 쨍쨍한 날 무슨 비가 온단 말입니까?”

  그렇게 시작된 수작은 결국 내기로 이어졌다. 농부는 자기의 소를 걸고, 스님은 쌀자루를 걸었다. 그런 다음 농부는 다시 논을 갈고 스님은 나무 밑에서 한참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른하늘에 천둥이 쳤다. 곧이어 시커먼 비구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여 들더니 곧 장대 같은 장대 같은 빗줄기가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님, 참으로 용하십니다. 비가 올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스님이 이내 대꾸했다.

  “소승이 입고 있던 가사를 만져보고 알았지요. 소승은 빨래를 자주 못하니까 늘 옷이 땀에 젖어 있지요. 땀은 곧 소금이니, 물기가 닿으면 눅눅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내기에 진 농부는 소의 고삐를 스님한테 쥐어주려고 하였다. 하지만, 물욕(物慾)을 멀리하는 스님이, 농부한테 없어서는 아니 될 소를 건네받을 턱이 없었다.

  스님이 떠나자마자 장대같이 쏟아지던 비가 뚝 그치고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하늘도 금세 맑아졌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부터 여름날에 갑자기 쏟아지다가 뚝 그치는 비를, 농부가 소를 걸고 내기를 해서 생겨난 비라 하여 ‘소내기’로 부르게 되었는데, 변형되어 오늘날 ‘소나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시금 마음 추스른다.

  ‘살다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나는 법. 그리고 소나기도 만나게 되는 법. 그 소나기를 잠시 피해 가야 한다. 이야기 속 그 농부처럼 어리석게도, 자기가 애지중지해야 할 일소를 내기로 몽땅 내걸 수는 없는 일.’



  작가의 말)

  나는 생활 가운데에서 겪는 아주 사세(些細)한 ‘사달’조차도 글감으로 이처럼 녹여 쓰곤 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나한테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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