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분노

2020.09.15 18:05

김수영 조회 수:93

거룩한 분노 김수영


   요즈음 날이 하도 더워 수박을 많이 먹는다. 주스를 만들어 먹으면 많이 마실 수 있어서 갈증을 추기고 마시기 편하다. 어제 저녁에 수박을 먹고 껍데기를 버리려 바깥 쓰레기통에 갔다가 돌아서는 순간 차도에 깔아 놓은 플라이 우드(Plywood)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턱을 콘크리트 바닥에 박아 죽는 줄 알았다. 턱이 떨어져 나간 줄 알았다. 파라메딕이 오고 구급차가 와 응급실에 실려 갔다.

   내가 단골로 다니는 UCI 메디칼 센터에 가기를 원했으나 구급차 요원이 그곳은 문을 닫아서 다른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심한 통증 때문에 내 고집을 부릴 수도 없고 해서 병원 응급실은 다 똑같을 거로 생각하고 내 버려두었다. 응급실은 24시간 오픈하고 있는데 문을 닫았다고 거짓말한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병원이라 어리둥절했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딱딱한 의자에 앉혀 놓고 CT 를 찍는다고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고는 3시간여를 의자에 앉게해서 어이가 없었다. 온 전신이 쑤시고 아프고 침대에 눕고 싶은데 진통제 약만 주고는 날 몰라라 관심이 없었다. 이런 응급실은 난생처음 보는 것 같아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너무 아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응급환자가 왔는데 침대에 누이지도 않고 딱딱한 의자에 3시간이나 앉게 만드냐”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의사에게도 항의해도 수간호원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발뺌을 하고 응급실에 있는 모든 보조 직원들도 들은 척도 안 했다. 아니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아니 어찌 아픈 환자를 이렇게 대우할 수 있느냐”며 고함을 쳤다. 

   한 직원이 안락의자를 갖고 와서 침대처럼 만들어 주어 그곳에 그제야 편히 누울 수가 있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방사선 의사가 엑스레이 판독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담당 의사가 찾아 와 자기 스마튼 폰에 사진을 찍어와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오른쪽 턱뼈가 반 정도 금이 가서 약간 벌어져 있다고 말했고 왼쪽 무릎도 가장자리로 뼈가 벌어져 있다고 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목뼈와 머리를 다치지 않아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제야 상처의 심각성을 알고 의사가 의자에 오래 앉게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였다. 그 사과를 듣고 나의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십여 장의 치료 방법을 상세히 적은 지시사항을 적은 서류를 주어서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다. 분노는 모든 일에 덕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참고 다스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기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분노를 참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처럼 불의에 화를 내고 호통을 쳐야 하는 것이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셔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라들의 상과 비들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 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의는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도다” 하시면서 화를 내셨다.그리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라”라고 하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말구유에 태어나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겸손의 극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분의 거룩한 분노는 서슴치 않으셨다. 

   나에게 안락의자를 갖다준 직원에게 감사했다. 환자에게 잘해 주어야 다음에 또 환자가 찾아올 것인데 불 친절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인술을 베푸는 의료진이 귀하고 값진 것이다. *2020년 8월 28일 중앙일보 문예마당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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