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하나님 만났어

2020.09.25 14:19

정남숙 조회 수:11

여보, 나 하나님 만났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중환자실 담당의사가 황급히 환자보호자를 찾는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환자가 위기를 넘기고 보호자를 불러 달라고 했단다. 면회시간 상관없이 드나들 수 있는 특권 아닌 이해로 수시로 환자를 면회할 수 있었다. 황급히 달려간 보호자에게 환자의 첫마디는

“여보, 나 하나님 만났어!”였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농장을 일구노라 비지땀을 흘리며, 평생 해보지도 않았던 농사일에 신이 나서 서울생활을 접고 귀향하기를 참 잘했다며 결단을 내려준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었다. 3년남짓 불철주야 농장에 엎드려 농장을 예쁘게 가꾸던 어느 날, 갑자기 입맛이 없다며 식사량을 줄였다. 평소 식사는 하루 세끼 걸러본 적이 없고, 그것도 항상 두 공기 이상을 먹는 대식가였다. 또 운동을 좋아해 겨울날씨 영하20도가 넘어도 냉수마찰에 런닝셔스 바람으로 국립묘지 뒷산을 오르내리며, 간이 헬스장에서 못하는 종목 없이 운동을 좋아하던 자타가 인정하는 운동마니아다. 그런데 갑자기 입맛이 없다니, 그 동안 쉬지 않고 농장 일을 하느라 힘들어 지친 줄 알고, 잠시 쉬면 괜찮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하루이틀이 지나다 보니 수척해진 모습이 눈에 역력했다. 아픈 곳도 없는데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겠단다. 들깨모종에 한창 바쁜 내게 일손을 돕지 못해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한 번도 병치레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바쁜 일손을 내려놓고 병원을 찾았다. 과거에 앓았던 갑상선 검사며 위·대장 내시경까지 다 해봐도 이상이 없었다. 입맛을 돋우려 각종 죽이며 맛 집 순례를 해도 여전히 먹지를 못했다. 나 혼자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는 중에 피는 속일 수 없나보다. 작은아들이 휴가를 왔다. 우리아들들은 항상 엄마아빠가 무슨 일을 당할 때는 우연히 찾아와 이렇게 함께한 적이 많았다.

 

  작은아들은 월요일 회사 연수원으로 단체워크숍을 떠나는데, 일요일에 갑자기 몸이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가는 상황이 일어났다. 몸 상태로 인해 워크숍에서 제외되어 휴가로 처리하고 엄마아빠 만나러 온 것이다. 아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아들은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도 다시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 집 주치의 같이 늘상 봐주시던 동네의사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영상의학과에 가보라고 했다. 촬영을 마치고 보호자를 부른 영상의학과 선생은 거침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췌장암 말기’라고 했다. 암이란 말에 순간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어서 하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개월 시한부이니 환자 원하는 대로 잘해주라고 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왔는지, 거짓말이고 오진일 것 같았다. 만일 이런 처지에 아들이 옆에 없었다면 나 혼자 어찌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다음날 아침 큰아이가 황급히 내려왔다. 큰아들도 믿기지 않은 듯 주치의가 이 이상 검사는 무의미하다며 완화치료에 들어가자, 권해도 믿지 못하고 현대의학이 할 수 있는 한 어떤 검사라도 다 해 보자고 했다. 사실 우리는 암에 대한 어느 정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우리나라 암의 최고권위자인 이진수 박사가 큰아들 처남과 절친한 사이라서, 그 동안 몇몇을 소개하여 급한 수술을 받아 완쾌되기도 하고, 지금도 완화 중인 환자가 많이 있기 때문에 어떤 암이라도 다 치료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췌장암은 손을 쓸 수가 없다는 말을 듣고도 큰아들은 대학병원 검사를 받자고 했다. 마침 시집 조카딸이 대학병원 암센터에 근무 중이라 예약도 쉽게 할 수가 있었다.  

 

 “여보, 왜 암센터야?

급히 수속을 밟아 암 병동에 입원을 하고 묻는 남편의 말에

 “응, 일반병동은 입원실이 없어서.”

 말을 얼버무리고 조카 덕분에 임시로 암 병동에 올 수 있었다고 말해줬다. 지금까지 우리부부는 서로를 속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았으므로 남편은 내 말을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조카딸 덕분에 병실도 전문의의 진료도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정밀검사 시술을 했으나 실패했다. 췌장은 십이지장 뒤 은밀한 곳에 있어 종양채취가 어렵다며 환자에게 고통을 덜 수 있게 그냥 포기하자고 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남편에게 의사를 통해서보다 내가 직접 병명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말을 꺼냈다.

 

  “여보, 사실은 우리에게 안 좋은 친구가 찾아왔나봐.”

망설이다 어렵게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선뜻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 걱정하지 마.” 하더니 내 손을 꼭 잡으며,

 “하나님이 부르시면 순종해야지.”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남편은 세상 떠나는 일을 제일 무서워 했다. 초상집에 다녀와서 우리도 떠날 준비 기도를 하자하면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화를 내고, 자신의 집안은 장수하는 집안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말라며 천년만년 살 것이라 믿는 사람이었다. 항암주사 한 번 맞지 않고 방사선 치료도 없었다. 한 달쯤 지나 퇴원을 권고 받고 추석 전날 퇴원을 했다.

 

  아이들은 공기 좋은 시골농장에서 지낼 수 있도록 간이침대를 들여놓으며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추석 당일 일찍 서울로 올라갔다. 아버지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갑자기 숨소리가 이상했다. 기관지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불안하여 조카딸에게 전화해보니 깜짝 놀라며 바로 119에 신고하여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사실 나는 의학상식이 전혀 없다. 우리식구들은 그동안 병원신세를 진 적이 없었다. 건강해서인지 조금 아프다가도 참고 기도하면 거뜬하게 일어나고 멀쩡했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은 0원에 가까웠다. 암 환자에게 가래가 끓는 것은 최후를 알리는 신호라는 것도 몰랐었다. 꼭 한 달째였다.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호흡기를 꽂았다. 의식이 없었다. 11시쯤 담당의사는 자녀들을 부르라고 했다. 오후에 귀경하던 아이들은 서울 집에 도착하기도 전 되돌아 달려와야 했다. 그 밤은 무사히 넘기고 중환자실에서 일 주일쯤 지나서였다. 천군천사의 호위를 받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던 중, 하나님을 만나 “집사람 손잡아주고 가겠노라.” 약속했다고 한다. 가사상태에서 다시 소생하여 나를 찾은 것이다. 우리아이들은 SNS에 병상사진을 실어 병마와 싸우는 아빠를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있었다. 다시 의식이 돌아와 3개월 동안 요양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한 것은 당신을 만난 것”이라며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발병 4개월 동안 남편은 아프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췌장은 다른 장기보다 못 견디게 아프다는데 신기하게 괴롭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면서 물어봐도 괜찮다고만 했다. 믿음 좋은 사람이라 하나님이 고통을 거두어 주시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항상 웃는 얼굴로 호스피스들을 위로하고 의사들의 수고에 감사했다. 내일이면 45주년 우리결혼기념일이다. 다음 주일에는 장로장립 35주년 퇴임예배가 예비되었고, 중환자실에서 얻은 바이러스 균도 오늘아침 검사에 깨끗하게 소멸되었다는 통고도 받았다. 마침 아이들도 모두 내려와 있었다. 새벽 6, 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능력 있는 원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 우편 보좌에 장로님이 앉아계신 것을 보여주셨으니 할렐루야를 세 번 외치라 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야하는’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집사람 손 잡아주고 가겠노라”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듯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웃으며 품위 있게 하나님 품에 안기자,”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웃는 모습으로 그냥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우리는 긴 이별을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미련과 자책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남편과의 이별은 절반의 상실이 아니라 99% 이상 내 인생 전부를 잃은 것이며,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아버지를 잃게 한 것이 나의 잘못인 것 같아 미안할 뿐이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일러주신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너무나 젊은 나이 아까운 이별이라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선 하나님의 때인 것 같다.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의 꿈으로 보여 주셨다고 한다. 이젠 나도 ‘하나님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2020.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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