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말되게 하라

2020.09.27 17:19

한성덕 조회 수:4

말이 말되게 하라

                                               한성덕

 

 

 

  사람들이 말을 너무 쉽게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할 때 상투적인 말처럼 사용하는 정치판의 말들을 들어보자. ‘사실이 아니라면 사퇴하겠다. 잘못으로 밝혀지면 전 재산을 내놓겠다. 내가 책임질 일이라면 목숨을 내 놓겠다.’ 얼마나 억울하면 저럴까 싶어서 안쓰러운 마음도 없진 않다. 그러나 일이 다 끝나면, 하나같이 농담과 변명으로 마무리하는 게 꼴불견이다. 말 같은 말을 왜 말 같지 않은 말로 사용하는 걸까?

  지난 93일 오전 7시쯤이었다. 강원도 평창군 송정교 앞으로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급히 뛰어나왔다. 이제 막 다리에 들어선 차량을 향하여 ‘건너오지 말라’고 소리치며 손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30초 만에 다리는 급류에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요, 급박한 순간이었다. 건너편 승용차를 향해 소리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손동작의 언어를 보여준 사례로 일종의 ‘몸짓언어’(body language)였다. 음성이나 문자언어가 아니라 몸짓, 손짓, 또는 표정 등 신체동작으로 의사나 감정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다하여 이를 ‘침묵의 언어’라고도 한다. 외국에 나가면, 짧은 영어 탓에 손짓, 발짓, 몸짓, 얼굴표정 등 신체를 총 동원해서 소통한 게 어디 한두 번이던가?

  언어에는 힘이 있다. 진실성과 적절성에 따라서 듣는 이의 삶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분노를 몰아치게도 한다. 또 책망과 칭찬, 꾸짖음과 격려, 비꼼과 얼러주는 말도 있다. 심지어 사랑의 밀어와 애정의 편지라도 누구에게는 약이요, 누구에겐 독이다. 청년시절, 세 아가씨가 내 자취방에 들어왔다. 사람이 없는 줄 알면 얼른 나가야지 ‘와! 이때다 싶었나?' 일기장을 나란히 보았다는데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6개월쯤에서야 한 아가씨의 이실직고(以實直告)로 알았다. 그때야 비로소, A의 태도가 왠지 생뚱맞고, 시무룩하며,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고 몸서리친 적이 있었다. 내 일기장의 사랑담에서 상처가 되었던가 보다. 그 바람에 사랑의 글도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된다는 걸 알았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는,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3가지를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말은 자녀의 인성개발에 해를 끼치지만, 부모의 선한 삶은 자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아닌가? 첫째, 둘째, 셋째하다 보니, 아우구스티누스 생각이 난다.

 어느 날 자신의 제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최고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서슴지 않고 ‘겸손’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물었으나 역시 겸손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겸손의 반대를 묻자 ‘교만’이라고 했다. 그러면 ‘교만은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했다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이 전해진다. 이 역시 말보다 행위를 강조한 것이리라.

 

  우리의 삶에서 말은 참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본보기는 말보다 한 단계 높고, 겸손은 본보기보다 더 나은 차원에 속한다. 나는 감히 말한다. 어느 것의 경중을 떠나, 언어에 품격을 실어서 ‘말이 말되게 하라.’ 그런 자에게 누가 삿대질을 하고, 인상을 쓰면서 으르렁거리겠는가?

                                        (2020. 9.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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