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팔영산

2020.10.06 12:53

신팔복 조회 수:11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고흥 팔영산(八影山)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신팔복

 

 

 

 

  산이라면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다. 바다와 접해있는 고흥 팔영산이 그중 한 곳이다. 여덟 봉우리와 어울리는 바다 풍경을 보고 싶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차를 몰아 여수로 가는 내내 바라던 일이 이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직은 늦더위가 남아 있어 햇볕은 따가웠다. 높아지는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가뿐해져서 테이프를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여수반도의 끝자락 화양면 백야대교를 건너 백야도등대를 다시 보고 나왔다.

 

  고흥으로 가는 77번 국도는 구불구불했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 위로 크고 작은 섬들이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여자만(汝自灣) 해돋이 전망대를 지나 연륙교인 조발대교를 건넜고 연도교인 둔병대교, 낭도대교, 적금대교를 차례로 지나 다시 팔영대교를 달려 고흥군 영남면에 도착했다.

 

  여자만 끝을 에워싼 섬들을 한 길로 연결한 백리섬길의 일부였다. 올해 완공했다는 이 다리들은 모두 다섯 개인데 그 모양이 서로 달랐다. 그중 낭도는 제일 큰 섬이었고 적금도는 팔영산이 환히 보이고 해변을 끼고 도는 절벽 아래로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은 곳이었다.

 

  국립공원 팔영산은 고흥의 경치 중 으뜸으로 꼽는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병풍처럼 이어지며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이다. 유일하게 산지가 해상공원에 편입되어 공식 명칭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지구로 불리고 있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능가사를 지나 팔영산 야영장에 도착하여 안내판을 보고 산행을 시작했다. 작은 골짜기로 계곡물이 흘러내리고 우거진 숲이 그늘을 만들어 시원했다. 우리 내외는 젊은 사람들 뒤를 따라 쉬엄쉬엄 걸었다.

 

  흙과 자갈이 엉켜있는 산길을 한참 동안 오르다가 능선이 나타나면서 바위를 뭉쳐놓은 듯한 1봉 유영봉(491m)이 보였다. 숨가쁘게 철 계단을 딛고 올라보니 상당히 너른 반석이었다. 먼저 오른 사람들의 틈에 끼어 유영봉 돌비석 앞에 서서 능가사 쪽 신선대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여자만의 푸른 바다와 굽어 내리는 산줄기, 좁은 들에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벼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유영봉에서 올려다보는 2봉과 3, 4봉은 형제처럼 서로 끌어안은 모양이었고, 잘 마른 메주처럼 이리저리 갈라진 바위틈 사이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좋은 곳에 자리 잡지 못하고 하필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생명은 참 모질기도 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암벽을 감싸고 도는 가파른 철계단 난간을 잡고 지팡이에 힘을 주며 제2(성주봉)에 올랐고, 바위에 부딪히는 바람 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가냘프게 울린다는 제3봉 생황봉(笙簧峰)에 올랐다. 사자처럼 팔영산을 지킨다는 제4봉 사자봉, 다섯 신선이 노닌다는 제5봉 오로봉(五老峰)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는 봉우리들의 올망졸망한 경치는 병풍을 두른 듯 아름다웠다. 어느 바위산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비경이었다.

 

  가장 험난하고 어려운 6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에 꽂아 만든 철난간과 쇠줄에 의지하여 바위에 찰싹 달라붙어 기어올랐다. 뒤따르는 아내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올렸다.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암벽 길이었다. 뒤돌아보는 순간 아찔한 높이였다.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며 올라선 제6봉의 정상 두류봉(頭流峰) 596m 높이였다. 힘들었던 만큼 확 트인 푸른 바다와 여러 섬이 나타났다. 두 팔을 벌리면 새처럼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리아스식 해안의 어마어마한 경관에 한참 동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깝게는 포두면 볏논이 산 아래에 펼쳐있고, 저 멀리 수평선 끝으로 나로도 우주기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우주를 향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의 요체였다. 오늘도 우주개발에 몰두하고 있을 과학자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인공위성 발사 로켓이 하루 빨리 성공적으로 개발되기를 기원했다.

 

  이제 남은 두 봉우리는 평탄 지형으로 500m가량 남았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나 제7봉 칠성봉(七星峰)에 발자국을 남기고 가까운 적취봉(591m) 8봉에 올랐다. 하늘은 파랗고 산에 비치는 햇빛도 열기가 식어가고 있었다. 힘든 등정이었지만 다시 7봉으로 되돌아서 탑재를 거쳐 팔영산 주차장으로 내려와 6시간 산행을 마쳤다. 몸은 피곤했어도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서 숙제를 끝낸 학생의 마음같았다.

                                                                              (2020. 10. 5.)

 

*선비따라 남도 江山기행(38) -고흥 팔영산(八影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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