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장재마루에서

2020.10.16 01:18

이희석 조회 수:17

고향길 장재마루에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이희석

 

 

 

                                                 

  상량한 바람이 솔솔 창틈으로 들어온다. 집 안에만 있자니 갑갑하여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정읍의 관문인 말고개를 넘어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고향길로 접어들었다. 장구산마을을 지나 어릴 적 힘겹게 넘던 장재에 다다랐다. 고향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잿마루에 올라섰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얼굴을 스쳐 시원하다. 산새 울음이 간혹 들려올 뿐 옛 산길은 끊기고 그 자취는 찾아볼 길이 없다. 재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쌓아 놓은 돌무더기도 사라져 버렸다. 길길이 자란 나무들 사이로 찬연한 햇살만 비켜 들고 있다.

  요즈음은 찻길이 뚫려 고향 가는 길이 편해졌지만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평탄치 않았다. 재 넘고, 고개 넘고, 냇물도 건너며, 산모롱이 길게 휘돌아 지루하게 걸어가야 했다. 구불구불하고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는 바사삭하는 다람쥐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우리 집에서 반 마장 거리에 있는 ‘장재’는 그 이름처럼, 오르막이 길고 가파른 산길이었다. 산허리 중에 그나마 쉬운 곳에 길을 냈으나 굽이굽이 돌고 돌아 가쁜 숨 몰아쉬며 가풀막길을 힘겹게 올라야 넘을 수 있었다. 옛 자취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우리 마을의 길목이요, 삶의 애환이 서린 칠보산 줄기의 고개였다. 이웃 동네 사람들도 이 재 넘어야 읍내에 갈 수 있었다. 장을 보기 위해 곡식을 이고 진 사람도, 쇠전에 팔려 가는 송아지도 숨을 헐떡거리며 넘어야 했다.  

  이처럼 험하고 비탈진 장재를 처음 넘어 본 것은 대여섯 살 무렵, 근동 모든 산과 길들이 붉은 꽃물결로 일렁이던 시기였다. 산 너머 교회에 따라가면 과자를 준다는 동네 형들의 말에 솔깃하여 덩달아 재를 넘어갔다. 아마 넘기 힘들고 먼 곳인 줄 알았더라면 절대 따라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후 어쩌다가 이십 리가 넘는 읍내로 장 보러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재를 넘어 따라다녔고,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자주 넘었다. 그 시절 고갯길을 걸어서 통학하면서 한 여학생을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재 너머 마을에 산 그녀와는 갈림길이 합해지는 고갯길에서 만나 내리 3년을 같이 다녔지만, 그때는 어찌 그리 소심했던지,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이 뻘그레 달아올랐다. 그녀나 나나 너무 수줍음을 타고, 내성적이어서 설레는 마음을 누르기만 했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던 그녀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고갯길이 낭만적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 시절 해마다 추석이나 설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농사지은 곡식을 팔아 명절빔을 사기 위해 읍내 시장에 나가셨다. 아버지가 날이 어둑어둑 저물도록 안 오시면, 등에 불을 밝히고 재 너머로 마중을 나가곤 했었다. 도중에 바람이 불어 등불이 가불가불 춤을 추다가 꺼질 때는 덜컥 무섬증이 났다. 그 당시만 해도 재 너머 길가의 방죽에 귀신이 산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옆에서 귀뺨을 때려도 모르게 깜깜한 밤에 길동무도 없이 그곳을 지나갈 적에는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고 어째 으스스했다.

  그랬던 장재도 전변무상(轉變無常)하는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맞닥뜨렸다. 길을 넓히고 포장하는 게 미덕인 시대의 흐름 따라 산마루가 깎이고 등성이가 휑하게 뚫렸다. 예전의 구불구불 비탈진 산길은 온데간데 없고 쭉 내뻗은 고갯길로 변해 버렸다. 행인들에게 좀 더 쉽고 빠르게 넘나들 수 있는 편리성은 주었지만, 구절양장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누리던 정취를 빼앗아가 버렸다. 불꼬불 이어진 옛길을 남겨 놓았더라면 느림의 미학을 터득하는 공간으로서 잘 활용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내가 걸어온 역정을 머릿속에 떠올려보니 아직도 내 인생에는 ‘넘어야 할 삶의 고갯길’이 많이 있음을 깨닫는다. 아니, 벌써 내 나이 칠십 고개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 고개를 어떻게 넘어야 할까?

  어떤 글을 보니 칠십 고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망가진 몸을 보수하기 위하여 달력에 병원 갈 날짜를 표기하여 집 다음으로 병원 문턱을 들락날락하고 약봉지가 많이 늘어나 먹는 순서를 적어 놓고 먹고 명이 짧은 사람은 인생 종착역으로 떠나가는 건강에 제일 신경을 써야 할 고개라고 한다.

  팔십 고개는 이제 살 만큼 살았고 할 일은 끝났으니 죽어도 호상이라 생각한 고개이고, 구십 고개는 건강한 사람은 백 세까지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요, 아픈 사람은 죽지 못해 살면서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 날을 기다리는 고개고, 백 세 고개는 장수명을 타고났지만 갈 때 동행자가 없어 외롭고 쓸쓸하게 떠나야 하는 고갯길이란다.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딱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진작부터 ‘인생 백 세 시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도 평균 수명 80세에 맞춰진 교육 정년 복지 등 국가정책의 큰 틀을 백 세 시대에 맞게 새롭게 세웠다지 않던가? 내 인생길 앞으로도 넘어야 칠십 고개, 팔십 고개, 구십 고개는 더 험하고 힘든 고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쉽게 넘었던 고개도 그리 없었고 높다고 넘지 못한 재도 없었으니 미리 발싸심하여 무엇 하랴?

                                                                             (202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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