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친구

2020.10.24 17:57

이인철 조회 수:7

29.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친구

     이인철

 

 

 

 옛말에 진정한 친구는 평생 한두 명 두기도 힘들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70이 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그것도 가세가 기울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옛적 위세만 믿고 어느 정도 자본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일어설 것 같다는 믿음때문에 가깝게는 친인척부터 친구까지 손을 벌려 봤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에 불과했다. 현실은 냉혹했다. 대부분은 아내가 통장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여유돈이 없어서, 심한 경우에는 가까운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오라고, 더구나 할 일을 찾지못해 심하게 방황할 때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순간에 내 주변사람 모두 전화가 끊겼다. "개 요즘 골치아파." 이 한마디로 사회와 단절되는 순간이다.

 더구나 빚쟁이들과의 처절한 싸움은 매일 생사를 넘나든다. 막연한 재기의 꿈보다는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수시로 빚쟁이들의 전화 추궁에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현관문을 부서져라 두드릴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지 모른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은 것도 다행이다 싶다. 애당초 재기라는 것은 투자라는 것 자체가 화려한 무늬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후회해본들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몸으로 부디쳤으면 이런 심적 고통은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성경구절을 수도 없이 읊조렸다. "가난한 자는 부자의 지배를 받게 되며 빚진 자는 돈을  준 사람의 종이 되리라."라는 경고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하루 빨리 종의 입장을 벗어나자고 다짐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고 했다. 사람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때는 누구나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슬플 때는 위로해 주는 그저 좋은 관계로 가능하다. 그러나 참으로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고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얼마나 만나기가 어렵기에 영혼이라고 표현했을까?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지칠 때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면 힘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소주 한 잔 나누면서 격려하거나 손을 잡아주는 친구가 얼마나 절실하게 기다려지는가? 더구나 친구나 가족이 멀리하면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을 때 심한 외로움에 젖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하게 보일까? 가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소식을 들을 때면 내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한해 평균 3백여 명 이상의 노인들이 심한 외로움에 목숨을 잃는다니 남의 일이 아니다. 나 자신도 심한 불안감에 쌓일 수밖에.

 일요일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 나가는 어느 90대 노인의 말이 생각난다. 교회에 나가 교인들과 인사만 해도 하루해가 금방 지나가고 다음 주일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교회가 신앙을 전파한다는 목적 이외에도 소외된 노인들에게 얼마나 마음의 위로의 역할을 하는지를 처음 깨닫게 된 것이다.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나만의 외롭지 않는 비법을 개발했다. 나와 내 자신속의 나와 대화를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잔소리가 심해 싫었으나 차츰 하는 말이 일리가 있어 요즘에는 곧잘 대화가 죽이 맞는다. 최근에는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서로 연구하면서 현실의 나를 찾아보자는데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바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너무 열중하다 보니 산책길에서는 서로 대화를 삼가자고 약속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기 때문이다.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했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겟는가."라는 말을 되새기면서 오늘도 나는 행복을 꿈꾸고 있다.

                                                                       (2020.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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