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옛날이여

2020.10.27 21:48

이인철 조회 수:19

1. 아, 옛날이여

    이인철

 

 

 

 요즘 어쩌다 뉴스를 보면 자식에게 두들겨 맞는 부모, 용돈을 안준다고 자기집에 불을 지르는 방화사건, 심지어는 유산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고,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내를 살해하는 등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패륜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는 돈과 방탕한 생활과 관련된 범죄가 갈수록 포악해지고 있다. 오직 자신만의 출세, 명예, 돈 때문에 점차 타락해가는고 있다.

 우리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난할 때는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어렸을 적 명절이 생각난다.

 춘궁기에는 쌀밥은 커녕 보리밥도 때우지 못할 때면 양동이를 들고 주정공장 앞에 서있는 마을주민들을 볼 수가 있었다. 막걸리를 빚고 남은 주정찌꺼기를 얻기 위해서였다. 쌀로 빚은 주정찌꺼기라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지만 조금만 먹어도 콧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보아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아마 술기운에 취해서였던 모양이다.

 쌀, 보리가 부족하다 보니 시래기, 감자, 고구마, 잡곡 등을 섞어 만든 비빔밥은 종류별로 만든 맛의 변신이었다.그때는 왜 그리 맛이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최고의 건강식이었다. 

 일년내 설날에만 맛볼 수 있었던 쇠고기국. 무에 가려 많아야 서너 점 될 성싶은 작은 고깃덩이지만 그 맛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씹고 또 씹어도 육즙이 넘쳤다.

 명절 전날 부치는 호박전, 김치전, 이날 만은 찬장속에 남은 반찬 모두가 부치개로 변신했다. 가마솥에는 시루떡이, 하얀 김을 내뿜으며 떡이 익어갈 때면 세상 모든 게 부렵지 않았다. 어린 나이지만 이날만은 동화속의 왕자가 된 느낌이었다. 비록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온 식구들이 모여앉아 따스한 온기를 느꼈었다.

 그리고 나는 밤새 바빴다. 그 먹음직 스럽던 음식을 온동네를 찾아다니며 조금씩이나마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우리가 풍족하게 먹기도 시원찮은 양인데 왜 이 귀한 음식을 남까지 챙겨줘야 하는가 하는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간 순간 내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누어준 것보다 더많은 갖가지 음식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선조들이 체득한 나눔의 정은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하게 살지 않는 법을 스스로 깨우쳐 살아 간 것이다.

 경주의 최부자집 얘기가 눈길을 끈다. 무려 12대가 3백 년간 만석의 재산을 유지했지만 주변 1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을 철저히 지켰다. 매년 춘궁기에는 한 달에 백 석정도의 쌀을 이웃에게 나눠 주었다.

 지금도 각 동사무소마다 늘어나고 있는 사랑의 쌀뒤주. 조선시대 낙안군수가 세운 이른바 운조루 뒤주다. 운조루는 구름속의 새집처럼 숨어서 사는 집이란 뜻이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이웃들이 언제든지 편안한 마음으로 쌀을 담아가도록 배려한 것이다. 주인에게 쌀을 직접 얻다보면 혹 상할 수 있는 자존심까지 배려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푼 쌀이 수확량의 20%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자기 자식의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서슴치않는 빗나간 자식사랑. 자신만의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부조리와도 타협하는 왜곡된 출세주의. 자기 가족끼리만 대를 이어 부를 누리기 위해서 회사돈을 횡령하거나 거액의 세금을 포탈해 가면서 변칙적으로 상속을 일삼는 일부 기업가들도 있다.

 빈자의 성녀로 추앙받아온 머더 테레사는 "가난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과 내가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했다. 즉 가난은 함께 나누지 않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나눔의 미덕, 이것이야말로 하루 10만 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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