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연가

2020.11.21 12:54

송병운 조회 수:14

 선유도 연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송 병 운

 

 

 붉은 꽃이 손을 흔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전거를 멈추고 다가갔다. 해당화였다. 붉은색이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운데에는 노란 꽃술이 꽃잎과 어울려 기막히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수줍게 웃는다. 이렇게 예쁘니 해당화를 소재로 한 시나 노래들이 만들어졌나 보다. 대중가요 중에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배호의 <해당화 피는 마을>도 구수하면서 애잔한 노래로 남아 있다.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권윤경의 <해당화>도 있다. 어쩌면 가사의 첫 구절 때문에 이 노래에 이끌렸을 것이다.

               

                바람에 해당화 필 때 사랑은 시작되었고
                남들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 세월은 흘러만 갔어요

               

  오늘 함께 온 여섯 친구들. 남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의 세월도 소리 없이 흘렀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있다. 세월을 잊고 살자며 뒤늦게 뛰어든 라이딩 취미. 주로 강변을 따라 달린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했던가? 틈만 나면 만경강을 중심으로 섬진강, 금강 그리고 백마강 등을 찾았다. 그러다가 섬 투어를 하자는 의견이 나와 선유도까지 오게 된 것이다.  

 

 2년 전 가을이던가? 우리는 승용차로 선유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배를 타야만 가능했던 섬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참으로 멋진 풍경들이 이어졌다. 특히 장자대교와 선유대교 덕분에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등을 편하게 다니며 섬 투어를 즐겼었다. 그러나 승용차의 한계를 느껴야만 했다. 섬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곳은 길이 좁아 승용차로 갈 수 없었고, 또 어떤 곳은 경치는 예쁘지만 걷기에는 너무 먼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주는 것이 자전거였다.

 

 신시도 선착장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멀리서 바라 볼 때도 기막히게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더욱 아름다운 섬. 가끔씩 만나는 빨간 해당화가 우리를 응원해주었다. 이처럼 구석구석 찾으려고 이곳을 찾은 것이 아니던가? 사진 작가들은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멀리 보이는 전경은 물론, 갈매기의 소소한 움직임마저 포착하려 애를 쓰고 있다. 낚시를 즐기는 이들의 여유로운 몸짓도 섬의 아름다움과 벗삼고 있었다.

 

 조그만 동네로 들어갔다. 옹기종기 이어져 있는 작은 집들.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가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를 보며 팔자 좋은 사람들이라고 욕을 할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바다가 맞닿은 골목에 들어서니 어망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송구한 마음으로 “수고 하십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별다른 표정 없이 “예 ~” 하며 부지런히 손길을 움직인다. 그물망을 손질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맑은 모습보다는 쓸쓸한 눈망울로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돈벌이를 위해 한국의 조그만 섬마을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고향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끔은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가족들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겠지. 그래서일까? 까만 피부에 눈망울이 슬프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만일 내가 이곳에서 교직생활을 했다면 어땠을까? 혹시 섬 처녀를 만나 사랑하다가 이곳에 눌러 살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느 날 육지로 떠나고 섬 처녀를 유행가의 주인공처럼 만들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내 성격상 처녀를 육지로 데려가든지 내가 이곳에 머물렀던지 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이 섬에 살았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손재주가 없는 내가 섬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배가 고팠다. 섬에 왔으니 당연히 회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깔끔한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번 왔을 때는 그런 가게에서 식사를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구석진 곳이라도 토박이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자고 했다. 조그맣고 허름한 가게가 있었다. 그래도 주인장은 말투가 시원시원했다. 예전에는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거의 자기 집에서 유치했다고 자랑했다. 회가 자연산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은 것은 사실이다. 가게 이름처럼 으뜸이라며 엄지척을 해주었다.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들어섰다. 관광객이 별로 없어 한적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해변. 기암절벽과 낙조가 아름답다는데 낙조까지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백사장 건너편의 망주봉, 유배되어 온 충신이 매일같이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사진을 찍어보니 정말 예뻤다. 동행중에 두 사람이 바닷물이 만나는 모래밭까지 다가가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모래 속에 빠지지 않고 힘차게 달린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달리는 사람도,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는 우리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가을에는 제주도를 일주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삶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던가? 갈매기는 우리를 관심 없이 지나치지만 우리는 그들을 가슴에 안았다. 해당화 꽃은 별 의미 없이 길가에 피어 있지만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 사랑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도 소소하지만 누군가에게 미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를지라도 해당화의 꽃잎처럼 아름답고 힘차게 살고 싶다.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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