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들겨 맞고 사는 알바들

2020.11.27 17:19

이인철 조회 수:10

8. 두들겨 맞고 사는 알바들

    이인철

 

 

 

 늦은 밤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겉으로 봐도 만취 상태였다. 담배 진열대 앞에서 연신 머리만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아마 담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어떤 담배를 찾으시는데요?" 이번에는 낮은 목소리로 '실버'라고 말하며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국산 담배 가운데는 그런 이름이 없다. 그래서 재차 물었다. "어떤 담배를 찾으시는데요?" 그때야 손가락으로 찾는 담배를 가리켰다. 그것도 모르냐고 빈정대면서. 하도 어이가 없어서 담배를 꺼내드리고 계산을 하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감히 손님이 얘기하는데 말대꾸를 한다고.

 지난밤에도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찾는 물건이 지금은 없다고 했더니 계속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고 다그쳤다. 어쩔 수 없이 헛웃음만 웃고 있으니 이번에는 아예 훈계조였다. 손님을 맞이할 때는 어떻게 하고  물건을 설명할 때는 어떻게 하라는 등 마치 가게 주인이 종업원을 교육하듯 반말까지 곁들이면서 횡설수설했다. 그래도 고객은 왕이기에  참아야 했다.

 동장군이 지나가고 만물이 소생하면 비 맞기를 즐기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비가 내리는 어느 주말 저녁, 바바리코트를 걸친 40대 후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온몸이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을 흉내 내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무엇을 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금방이라도 총을 빼들 것 같이 노려보더니 홱 돌아서 나가버렸다. 이런 고객들이 차츰 늘어나면서 그만큼 편의점 근무도 어려워진다. 때론 폭언에, 때론 고함에 오죽하면 두들겨 맞는 알바까지 늘어날까? 

 수많은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편의점의 부부 폭행 사건이 있다. 빈병을 보관하는 플라스틱 상자 위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길래  위험하다고 이를 제지하자 갖은 폭언과 함께 폭행을 했다는 게 알바 여학생의 말이다. 더욱이 충격적인 것은 동행한 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돌아온 것은 욕설뿐인데 아버지뻘 되는 남자가 내뱉은 말은 "너희 아버지를 불러봐. 배운 것이 없어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어?" "벌금을 물 테니까 경찰에 고발해라."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이 영상을 공개한 알바는 "저? 저희 부모님의 소중한 딸이란 걸 알아주시고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워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고객들에게 구둣발로 폭행당하고 심지어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고 10대 어린 청소년들에게도 얻어맞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갈수록 오만무례(傲慢無禮)해지는 사회. 한마디로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사람들의 행동이 점차 거칠어져가는 것은 아닐까?

 어떠한 편법이라도 내 자식의 출세만을 원하는 도를 넘어선 지나친 자식 사랑. 나의 말이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불쾌감을 주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학교교육의 부재. 그러나 공교육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배려보다는 오직 일류만을 추구하며 경쟁만을 부추기는 게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반면 물건을 살 때마다 항상 곱게 웃음 띤 얼굴로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하는 어느 여학생의 미소. "수고하십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가게를 찾아올 때마다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반복하는 40대 중반 남자의 인사 때문에 오늘도 고된 하루지만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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