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은 지금도 전쟁 중

2020.11.28 11:49

이인철 조회 수:3

6. 편의점은 지금도 전쟁 중

                                                                                 이인철

 

 


 고객이 뜸한 아침 시간이라 매장 정리에 정신이 없을 때였다. 한 40대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카운터로 바삐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카운터 정면을 응시하던 그 청년은 냅다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순간적인 일이다. 깜짝 놀라 카운터로 달려가 "무엇을 드릴까요?" 하고물었더니 금방이라도 폭력을 휘두를 듯 험한 표정으로 노려보더니 곧바로 휑하니 나가 버렸다. 말하기도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밖을 쳐다보니 신경질적으로 트럭을 몰고 도로로 빠져나갔다. 아마 종업원이 제 자리에 없다는 이유인 것 같았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느 가게든 또 찾게될 텐데 자기 성질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꼴이다.

  한창 술시인 밤 10시쯤이었다. 마침 카운터 옆 매대 빈자리에 물건을 채우고 있을 때였다. 40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가 들어오자마자 마치 자기 집 하인 부르듯 "여봐!"하며 소리를 질렀다. 황급히 달려가 "무엇을 드릴까요?" 했지만 기분이 매우 언짢아 보였다. 손님은 담배 한 갑을 사더니 낮은 목소리로 점잖게 말했다. "기분 나쁘냐고." "그렇게 다짜고짜 큰소리를 치는데 어찌 기분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대답이 화근이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놈의 집구석 장사를 그만두게 만들겠다. 이번엔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겠다."라며 카운터에 진열된 물건들을 시원스럽게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태어나 처음 당하는 모욕인지라 나도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한 순간이었다. 아마 하는 행동으로 봐 잘 나가는 직장인인 것 같았다. 이어 방금 산 담뱃갑을 던지며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었는지 나보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놈의 새끼 한 번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말로만 듣던 편의점 폭력 사건에 바로 내가 당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자식뻘 되는 어린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수모를 당하니 피해자들의 입장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지 실감이 났다. 이 모습을 문밖에서 지켜보던 일행 중 한 명이 성급히 달려와 정중히 사과하며 이해해달라고 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이해하라는 말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편의점에서는 흔히 겪는 일이다. 들어오면서부터 고함이나 듣기 싫은 "여봐!"라는 반말쪼는 주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다. 아마 오랜 직장생활에서 습관화된 버릇인 것 같다. 그런데 술에 취하면 이런 젊은이들도 많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금요일 밤이면 인근 술집마다 말 때문에 손님들 간에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인근 파출소도 이들로 아수라장이다. 심지어는 경찰관에게 폭행도 서슴치 않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담뱃값 인상을 한 달여 전에 미리 발표하는 바람에 애연가들에게 시달리던 기억이 난다. 초저녁이면 담배가 모두 품절돼 궁여지책으로 고객 한 명에 3갑에서 결국 한 갑씩만 팔던 때였지만 새벽부터 사재기하는 사람까지 몰리면서 편의점은 애연가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이때는 유독 힘센 사람들이 설치던 때였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무조건 명령조였다. "여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싸, 전부 얼마야?"다. 한 달여 동안 매일 이들과 담배와의 전쟁을 벌인 셈이다. 

 요즘 언론에는 대기업의 가족과 유명인사들의 갑질이 자주 오르내린다. 내 자식만 부를 누리고 출세하면 된다는 부모들의 빗나간 자식 교육의 결과가 아닌가?

  아니면 공교육 현장이 입시교육에 매달리노라 사회교육의 부재 탓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취를 감추면서 나 혼자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폭력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부유층의 갑질은 이젠 서민사회에서도 끊이지 않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20. 11. 29.)

?img=AP%2B9WrkoW40Ca6iohARnFqu9FztrFoMlM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87 크산티페의 변명 정근식 2020.12.02 8
2086 전주천의 작은 변화 박제철 2020.12.02 5
2085 요즘 젊은이는 안 돼! 백승훈 2020.12.01 20
2084 누가 더 행복할까 고도원 2020.12.01 15
2083 다섯 가지 교훈 소종숙 2020.11.30 6
2082 밥알을 생각하십시오 맹사성 2020.11.30 4293
2081 인생의 3가지 싸움 안병욱 2020.11.29 54
2080 변해명 2020.11.29 14
2079 해바라기 오창익 2020.11.29 4
2078 애완견도 고객인가 이인철 2020.11.28 10
2077 공존의 미학 김덕남 2020.11.28 2
2076 나 하고 싶은대로 산다 이인철 2020.11.28 2
» 편의점은 지금도 전쟁 중 이인철 2020.11.28 3
2074 편의점은 쓰레기 처리장 이인철 2020.11.27 17
2073 관리 소홀로 물 쓰듯 버려지는 돈 이인철 2020.11.27 6
2072 두들겨 맞고 사는 알바들 이인철 2020.11.27 10
2071 찾지 않는 들꽃 구연식 2020.11.27 6
2070 시비를 즐기는 사람들 이인철 2020.11.27 2
2069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김병남 2020.11.26 7
2068 완장 김세명 2020.11.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