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쫓기면서 사는 사람들

2020.12.05 16:27

이인철 조회 수:8

  1. 항상 쫓기면서 사는 사람들

                                                                           이인철

 

 

 편의점에 근무한 지도 벌써 5년여가 지났다. 매주 금요일 퇴근 무렵이면 항상 바빠지는 게 일상생활이 되어버렸다. 일주일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는 저녁시간인지라 친구와의 약속 또는 직장인들의 회식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40대 초반의 회사원으로 보이는 고객이 담배 한 갑을 샀다. 그러나 정작 담배는 테이블에 놓아둔 채 계산만 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쫓아가 고객을 찾아보니 금세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두서너 시간이 지난 뒤 그 사람이 또 찾아와 같은 담배를 찾았다. 혹시 조금 전에 담배를 사러 온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담배를 사긴 샀는데 어디서 빠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놓고 간 담배를 내주니 그때야 계면쩍은 웃음을 지었다. 

 바쁜 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느 여자분은 물건을 손에 든 채 계산부터 해달라고 졸랐다. 왜 그렇게 바쁘냐고 물었더니 가게 앞 도로의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고 했다. 알바를 처음으로 실습하고 첫 손님을 받던 날이었다. 빨리 계산을 해주지 않는다고 자식 또래의 젊은 고객의 시선이 얼마나 섬뜩했는지 지금도 가끔 그 악몽에 시달린다. 심지어는 물건도 고르기 전에 얼마냐고 묻는 일이 부지기수며, 결재도 안됐는데 신용카드부터 빼가는 고객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객이 나간 후 결재가 안돼 물건값을 물어줄 때도 종종 있었다.

 특히 핸드폰에 저장된 신용카드의 경우 신호음이 울리면 대부분 고객들은 결재가 된 것으로 알고 그냥 나가 버린다. 하지만 사실상 신호음은 카드에 접속하는 신호로 잔금이 없을 때는 뒤늦게 화면에 결재가 불가능하다고 뜬다. 얼마나 바쁜지 결제하고 난 카드나 교통카드를 놓고 가는 고객도 상당수다. 그러다 보니 편의점마다 고객들이 놓고 간 신용카드가 수북하게 쌓이지만 찾아가는 고객은 그리 많지 않다. 카드를 찾는 것보다 재발급을 받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인의 삶. 오랫동안 겪어온 군사문화의 영향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1970년대 직장생활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일 근무가 시작되기 전 어김없이 국민체조를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시간에 빠지지 않기 위해 출근길부터 줄달음질이었다. 앞에선 간부들과 눈도장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촌 지방도 마을마다 기상을 알리는 새마을노래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지면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이때는 관공서 화단조차도 군대 모습 그대로였다. 모두가 직각형으로 새로 단장되었다.                            

 1971년 ​ 8월 31일,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428km를 불과 3년 5개월 만에 완공한 것은 성공신화로 불리고 있다. 당시 토목공사로는 거의 인력에 의존하는 수준이었으나 전투를 방불케하는 공사 독려로 공사기간 동안 무려 77명의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금의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한편에 자리 잡은 위령탑을 보면 왜 그리 공사를 서둘렀는지 역사 굴곡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린다. 

 반대로 유럽에서 최근 일기 시작한 다운시프트(down shift) 빡빡한 근무시간과 고소득보다는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보다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제라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잠시 여유로운 차 한 잔이 생각나는 밤이다.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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