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2020.12.05 22:22

곽창선 조회 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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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이루는 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 창 선









원인 모를 불면증에 시달리다 보면 잠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건강한 사람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이라고 하지만, 습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잠을 잘 자는 것은 큰 복이다. 잠을 설치고 나면 생활의 질이 저하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이사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불과 하천 하나 건너로 옮겨 왔건만 생각보다 적응이 쉽지 않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이사를 해 왔지만 이번처럼 여러 생각에 젖어 잠 못 이룬 적이 없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셋방살이 설움을 겪다가, 금암동에 새집을 마련하고 느끼던 흐뭇함을 잊을 수 없다. 집을 장만했다는 자부심으로 주위를 돌면서 쓸고 닦고, 벽에 못 하나 박으려다 망설여지던 생각이며, 화단에 꽃나무 감나무를 가꾸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세 번 이사 끝에 아내가 선호하던 진북동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후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던 아내를, 위로하던 생각이 어제일 같기만 하다. 바뀐 환경이 어색했지만 이곳에서 살아 온 20여 년은 내 삶을 꽃피우고, 열매 맺은 황금기였다. 벌써 노을이 짙게 물들어 서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세월이 무심하기만 하다.



비 내리는 밤, 비바람에 쫓기는 낙엽의 아우성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 마지막 가을 잔치를 망처 버리는 아쉬운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이사 후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뭔가 모를 아쉬움 때문에 서성거리고 있다. 뚜렷이 떠오르는 것보다 막연한 잡념들이다. 깊이 잠든 아내의 숨소리가 곱다. 자리에 눕기가 바쁘게 잠들어 버리니 참 부러운 사람이다. 그 곱던 모습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하고 주름에 백발이 성성하다. 아옹다옹 살아 온 45년, 어느덧 필수불가결한 동반자요 보호자가 되였다. 어릴 적 엄마 곁을 떠나기 싫었는데, 이제 그녀가 곁에 있으면 평온해지니 망령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아파트는 공간이 좁고 불편하다. 오밀조밀 붙어 있어 마치 성곽에 갇힌 듯하다. 어두운 밤, 조각난 하늘 사이로 이별의 설움을 달래듯 소곤거리는 빗소리 따라, 밤은 깊어 가고 있다. 눈망울은 더욱 초롱초롱해진다. 벌써 이틀 밤을 설치고 보니 잠이 보약이라던 말이 실감난다. 입시 때 밀려오는 잠을 쫒아 보려고, 약을 복용했지만 이제는 수면 유도제를 벗 삼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거실 소파에 수북이 쌓인 빨래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무심코 양말이며 수건을 정리하던 중, 빨래하며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된다. 밥하고 빨래하는 게 아녀자의 미덕이라지만 정말 겨울철 빨래는 아녀자들이 넘어야 할 큰 고갯길이었다. 보름에 한 번씩 빨래하는 날이 있었다. 가마솥에 펄펄 끓인 물에다 옷가지를 담그고 빨래터에서 흐르는 물에 빨래를 하셨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방망이로 두드려 땟국을 빼시던 어머니, 종종 손이 얼어 터진 손마디에 동동 구루무를 바르는 게 전부였다. 철부지인 나는 사흘이 멀다 하고 흙투성이가 되었고 어른들의 옷가지는 풀 먹여 다듬이로 곱게 다듬어야 했으니, 그 고난이 오죽했을까?

추운 겨울 다듬이에 무명옷을 올려놓고 야무진 방망이로 누나와 의좋게 토닥토닥 두드리던 다듬이 소리는 어머니의 사랑의 소리요, 마음의 소리였다. 난타장단에 버금가는 멋진 화음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두드리다 지치면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 국물에 목을 축이며 밤이 깊도록 수고하셨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실내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모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어머니에 대한 회한이 물씬거린다. 이제 잡다한 아내의 집안 일을 도와서 이제라도 어머니의 수고에 보답해야겠다.



주위에 부러운 사람들이 많다. 물질적으로 또는 입신양명했다며 으스대는 주역들이 아닌, 주어진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 당찬 모습들이다. 고향에서 사환을 거쳐 30대에 면장을 지낸 선배, 지필묵을 다지며 노을을 곱게 물들이는 벗, 야학에 정열을 불태우는 벗, 장애우와 함께 하며 그들의 영육을 일깨우는 목사 등 모두 나에겐 부러운 이웃들이다. 이들은 모두 주어진 조건을 이겨낸 이웃들이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 피어야 더욱 곱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 그들이 더 존경스럽다. 그들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전령사들이다.



잡다한 심경을 털어 버리려고 창문을 열었다. 가로등에 비치는 뜨락엔 어느새 비가 그쳤다. 앙상한 가지를 흔들어 대는 바람 소리가 마치 다듬이의 환청소리로 들려, 니니로소의 밤하늘의 트럼펫 얀주를 벗삼아 눈을 감았다.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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