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기(2)

2020.12.06 12:20

신팔복 조회 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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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여행기 (2)

–불교국가 라오스 사람들-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신팔복







다음 날 새벽에 스님들의 탁발공양에 나갔다. 어둠 속에 시장길을 지나는데 메콩강에서 잡았다는 1m도 넘어 보이는 큰 물고기를 팔고 있어 구경거리였다. 식당에선 국물을 끓여내고 돼지고기와 생선도 구워 팔았다. 달걀과 열대과일도 많았다. 출근하려는 사람들인지 이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옛날 우리의 저잣거리가 상상되었다. 가이드는 배탈이 염려되니 사 먹지 말라고 했다. 반듯하고 깨끗한 4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이 거리는 탁발하는 장소로 관광객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정해 준 곳이라 했다. 공양에 쓸 물건은 집에서 만들어 오기도 하지만, 상인이 만든 음식이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과자를 사서 쓰기도 했다.



우리는 중년 여인이 가져온 따뜻한 찰밥을 샀다. 친구 4명이 낮은 의자를 인도에 놓고 앉았다. 나는 찬물에 씻은 손으로 밥을 주물러 한 입 먹어보고 내 뒤에 서 있는 아내에게도 주었다. 이곳 주민들은 찹쌀을 섞어 밥을 지어서 먹는데 공양밥은 간이 맞고 쫀득해 좋았다. 어둠 속에서 전등불을 비추며 스님들이 다가왔다. 큰스님부터 차례로 섰는데 제일 나중에 어린 스님이 뒤를 따랐다. 보통 7, 8명은 되었다. 주걱으로 조금씩 밥을 떠서 은색의 발우에 넣어주고 합장의 예도 드렸다. 탁발은 여러 절에서 오는데 큰스님이 인솔하고 온다고 했다. 탁발이란 걸식하여 얻은 음식을 담은 발우에 목숨을 기탁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음식의 고마움을 깨닫고 농부의 고충을 잊지 않으려는 수행의 길이었다. 스님들이 계속 찾아 왔다. 공양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우리가 음식공양을 끝내고 사거리를 돌아 오는데 여인들이 혼자씩 앉아 정성껏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을 공양하고 있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스님이 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란다. 스님이 된 자기 아이들이 탁발하러 오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더욱 정성으로 공양하는 듯 보였다. 몸은 건강한지, 불교 공부는 잘하는지 등을 어미 된 마음으로 살피기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스님과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절에서도 탁발한 음식이 남으면 가난한 이웃에게 보시한다니 서로가 자비(慈悲)를 베푸는 것이로구나 생각했다.



라오스에서는 국립학교에 갈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아이들은 불교 학교에 다니는 것을 큰 희망으로 삼는다. 결혼도 불교식으로 하고 신혼부부는 사원을 찾아 참배하며 평생을 약속한다. 또한 죽음을 맞이해도 가족이 모두 승복을 입고 초상을 치르며 예불로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고 불교 전통에 따라 화장하며 기쁘게 보내드린다. 생과 사를 손의 안팎과 같이 여기는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이다. 스님이 된 자식이 집에 다니러 오면 항상 부모보다 상좌석에 앉히고 멀리 있는 형제자매도 고향 집을 찾아와 스님에 예를 갖춘다. 좋은 음식도 스님이 먼저 맛을 보고 식사하고 나면 가족이 즐겁게 식사하는 절차도 풍속으로 남아있다.



낮에 돌아본 거리는 건기라서 흙이 메말라 붉은색의 흙먼지가 황사처럼 날렸다. 판잣집과 같은 상점 길에는 볼썽사납게 쓰레기가 몰려 있었다. 그러나 잘 사는 집은 터도 넓고 예쁜 담장에 조경도 잘된 저택이었고 고급 자가용도 있었다. 트럭이나 오토바이가 달려가면 종이 쓰레기와 흙먼지가 날렸다. 가정집이나 가게 앞에는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탑을 세웠고 아침저녁으로 향을 피우고 과일과 과자를 올려 기도하는 불교적 신앙도 볼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불교국가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루앙프라방 여행을 마치고 비엔티안으로 가서 다시 전세버스를 타고 5시간 동안 방비엥으로 갔다. 산 고개를 넘는 도중에 만나는 마을은 역시 비포장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서도 개, 염소, 닭과 어울려 살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도 보았다. 마을마다 먼지투성이가 된 구멍가게도 있었다. 나뭇불을 피우고 여러 명이 모여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울창한 숲을 지나는데 넓은 도로를 내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맡아서 고속도로를 내고 있다고 했다. 트럭과 굴착기도 많았다.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는 몰라도 대단한 기반사업으로 보여 라오스의 앞날이 밝게 느껴졌다. 아직도 높은 산골짜기에서 살아가는 부족들에게도 큰 혜택이 되려니 싶었다.



방비엥은 중국의 작은 계림과 같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산세가 높고 웅장하며 뾰족한 산들이 모여 있었다. 차츰 도시가 형성되고 있고 반듯한 길도 내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너르지는 않았다. 마을엔 고삐 없는 누런 소가 5, 6마리씩 돌아다니며 풀을 뜯고 있었다. 시골이라서 방목하는 소들이었다. 닭과 개도 거리로 돌아다녔다. 므앙송초등학교가 있어 들어갔다. 양철지붕 같았고 붉은색을 칠했는데 기다란 뱃집 모양의 단층 교실이었다. 운동장 가운데는 몇 그루의 큰 나무가 있고 풀이 조금 자라고 있었다. 한 교실에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인 의자와 책상은 우리나라 전쟁 뒤의 모습깉있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 웃었고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저학년에서부터 고학년까지 있었다. 늦은 것 같은데 오토바이로 태워다 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도서관이 열려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우리나라 태극기와 라오스 국기가 걸려 있어 놀랐다. 간판이 있어 읽어보니 우리나라에서 지원해준 학교였다. 안쪽을 들어가 살펴보았다. 먼지가 낀 동화책들이 쌓여있고 학습 도구도 조금 있었다. 숙직실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매점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에게 우리 태극기를 가리키며 그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파는 물건은 과자류 등을 비닐봉지에 넣어 묶어 매달아 놓고 팔았다. 먼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변기 옆에 물통이 따로 있었다. 길가에서 아주 짧은 몽당연필을 발견했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 쓰던 것과 같아 그 시절이 생각났다. 가이드가 알려준 이 나라의 학제는 초등 5년, 중·고등 7년, 대학은 2, 3, 4년제가 있다고 했다.



메콩강의 지류인 쏭강이 방비엥을 돌아나가고 있었다. 카약과 비슷한 좁고 긴 배를 둘씩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데 강변에는 여름철에 장사하는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검정 물소떼가 물가에서 놀고 있어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석회동굴이 있는 피서지 불루라군에 갔을 때도 동굴 앞에는 작은 암자에서 향냄새가 퍼져 나왔다. 돌아오는 날도 탓루앙 사원을 찾아가 라오스의 역사와 불교 유적을 살펴봤다. 불교는 라오스인들의 삶 자체였다.

(2019.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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