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는 떠나고

2020.12.08 11:22

김재교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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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떠나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석청 김재교





9월이 왔다. 가을을 물고 여름의 문을 서서히 닫는다.

50여 일 장마 속에 태풍과 홍수로 전 국토를 억망으로 비틀고 모든 농작물들이 신음소리를 내게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 가을꽃은 피고 열매도 열리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날씨는 서늘해지고, 새벽 산책길 따라 논둑길을 내려가면 이슬에 젖은 벼꽃이 장화에 달라 붙는다. 이제 가을꽃은 배추모와 무. 씨앗도 심어야 하는 절기다.

나는 장마 속에서도 무척 가을을 기다렸다. 작년가을 용담호 동쪽 주천생태공원단풍과 선운사 극락교 단풍의 절경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우리고장 경천호수 일몰과 위도 해넘이는 흰 모시 노을구름이 분홍 다리미로 내 가슴속에 달구어 넣는 한 순간이 였다. 소나무 이파리 사이로 쏟아지는 부채 햇살이 정자를 붉게 물들인 저녁노을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뭉쿨했다. 수일이 지나 배추모와 일반 배추모를 구입해서 심고 가을채소 씨앗도 뿌렸다. 새벽 산책길에 들어서니 감나무 푸르던 감은 볼에 연지를 바르고 길목에서 웃고 있다. 대추나무도 가을을 알리고 있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날 새벽에 운일암반일암, 용담호 동쪽 주천생태공원과 팔경을 찾았으나 자연환경의 변화는 어쩔 수 없나보다. 작년의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고 나뭇잎들이 단풍들기 전에 떨어지고, 설익은 가을을 맛 보았다.

다음날 선운사를 찾았다. 선운사에는 붉은 꽃무룻이 이제 막 가을을 열고 있었다. 카메라에 많이도 담고 다시 김제 신포를 거쳐 만경평야에 도착하니 길가의 코스모스가 늘씬한 몸매로 나를 반겼다. 가물가물한 만경평야에는 녹두빛 파도가 일어나고 있엇다. 바람이 일 때 푸른 치마자락이 더욱 아름다웠다.

바다에는 흰 파도가 있지만 만경평야에는 푸른 파도가 있다. 바다파도는 소리가 요란하고 사납게도 파도가 일지만 평야의 푸른 파도는 밀려갔다 소리도 없이 제자리로 돌아 온다. 오는 절기를 누가 막으랴? 며칠 사이인데 칠월 중순부터 울어대든 매미도 한낯에만 울고 해질 무렵에는 귀뚜라미가 가을을 물고 저녁을 흔든다. 새벽에 카메라를 메고 사진을 담으려 나가니 우리 집 주위가 많이도 변했다.

낙엽이 쌓여 수북하게 딩굴고 있다. 아침에 낙엽을 밟으면 으삭하는데 점심때쯤 밟으면 바스락 바스락 한다. 나는 낙엽을 쓰지 않는다. 늦도록 가을맛을 가슴에 담는다. 이제 배추와 무도 많이 자라고, 벼 이삭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늘 초저녁 눈썹달을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대추나무에 가을 대추가 얼굴을 붉히고 있다. 내 주 학교 공부시간에 우리 집 가을을 선보일 모양이다. 그러나 하늘이 푸르고 맑은 대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문우님들이 대추 따기에 많이 참석했으면 좋겠다.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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