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필

2020.12.12 22:35

강순필 조회 수:259

한국의 수필



개요

동양에서 '수필'이라는 용어는 중국 송나라 때 홍매(洪邁)가 지은 〈용재수필〉에서 처음 보인다.

이 책의 서문에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써둔 것을 수필이라 한다"는 언급이 있으며, 한국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일신수필'(日新隨筆)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이때부터 수필은 하나의 문학 장르로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수필은 크게 고대수필·근대수필·현대수필로 나눌 수 있다.

고대수필

고대수필은 한문수필과 한글수필로 나뉘는데, 고대수필의 역사는 고려시대 이인로의 〈파한집〉, 최자의 〈보한집〉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한문으로 씌어진 고려시대의 수필은 잡기(雜記)·필기(筆記)·야록(野錄)·야문(野聞)·쇄담(鎖談)·야담(野談)·총화(叢話)·야화(野話)·만필(漫筆) 등으로 불렸다. 물론 여기에는 가벼운 비평이나 구체적인 형식의 틀을 갖추지 못한 소설의 원형에 가까운 장르도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 수필을 중수필(essay)과 경수필(miscellany)로 나누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모두를 수필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부분의 고대 한문수필은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기의 한문수필은 이제현이 〈역옹패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낙수(落水)를 벼룻물로 삼아 한가한 마음으로 붓가는 대로 하여 울적한 회포를 풀거나 닥치는 대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그 역할을 이루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볼 때, 대단히 서툰 것도 많으나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는 김부식의 〈아계부 啞鷄賦〉와 기행수필인 이규보의 〈남월행일기 南月行日記〉 등은 형상화의 측면에서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한문수필과 한글수필이 공존하게 된다.

대부분의 한문수필이 사대부들에 의해 씌어진 데 반해 한글수필은 왕궁의 나인과 여성들에 의해 씌어진 것이 특징적이다. 이때 크게 활약한 한문수필 작가로는 강희맹, 서거정, 성현, 최보, 김정, 유성룡, 이순신, 혜경궁 홍씨, 김만중, 유형원, 이익, 박지원, 의령남씨, 유씨부인 등이 있다. 특히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중국으로 떠나는 사행(使行)의 일행이 되어 압록강·랴오양[遼陽]·신광녕·산하이관[山海關] 등을 거치며 느낀 바를 진솔하게 적은 한문수필의 백미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김만중의 〈서포만필〉과 이익의 〈성호사설〉도 보고 느낀 것을 자료와 고증을 통해 열거한 짜임새 있는 한문수필들이다. 한글수필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후에 비로소 씌어지기 시작했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과 정조의 왕위계승, 그리고 한많은 여인의 궁중생활을 섬세한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함흥판관 신대손의 부인 의령남씨가 쓴 〈의유당일기〉는 동해바다의 일출광경을 여성스런 필체로 그려낸 기행수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한글 의인체 수필의 한 양식을 개척한 유씨부인의 〈조침문〉과 〈규중칠우쟁론기〉도 여성 특유의 꼼꼼함을 보인 한글수필이다.

근대수필

1895년에 펴낸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 비롯된 근대수필의 역사는 1910년대 이후 한국문학사에서 유례없이 문학잡지의 융성과 더불어 성장하게 되었다.

특정한 수필문학 작가층이 형성되지 않았던 이 시기에는 소설가·시인을 비롯한 화가·음악가들이 수필을 썼고, 이들 중 나혜석의 〈이상적 부인〉, 최남선의 〈평양행〉, 이일의 〈만추의 적막〉, 염상섭의 〈국화와 앵화〉 등은 여행을 통해 느낀 감상에 역사성이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의 내면적인 자아성찰의 문제들을 격동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번민과 더불어 나타내고 있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필문학의 전문화가 서서히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우선 수필문학 전문지인 〈박문〉이 발간되고, 최재서가 주관했던 〈인문평론〉과 이태준이 편집을 맡았던 〈문장〉 등에 수필고정란이 생기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외국문학 전공자들이 늘어나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수필론의 정립이 이루어 지면서 김기림·김진섭 등은 '수필의 문학성과 그 영역'에 대하여, 김광섭 등은 '수필의 형식과 그 표현'에 대한 이론적 탐색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이론적 뒷받침 속에서 정래동·고유섭·이병기·이은상·계용묵·노자영·피천득·민태원·이양하·이효석·이상·이희승 등이 수필을 썼다. 이중 김진섭의 〈인생예찬〉, 민태원의 〈청춘예찬〉, 이양하의 〈신록예찬〉, 이희승의 〈청추수제 淸秋數題〉, 이상의 〈권태〉와 같은 본격적인 수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 수필들은 대부분 직관적이고 관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데 근원적으로 인생과 자연을 음미하고 그 속에 몰입하는 조선시대 선비사상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한 김진섭의 〈인생철학〉, 고유섭의 〈고려청자〉 등에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진리에 대한 순수한 성찰을 담아내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40년대 일본의 강압정책이 극도에 달하면서 다른 문학 장르와 마찬가지로 수필 역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현대수필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조선청년문학가협회가 주관한 잡지 〈문예〉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던 현대수필은 6·25전쟁 이후 크게 성숙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수필의 제재는 다양해졌으며 그로 인해 전문적인 수필가들이 많이 등장한 것이다. 문예지를 중심으로 한 여러 잡지에는 매달 50~60여 편의 수필이 발표되었고, 〈수필문학〉·〈한국수필〉 등의 수필 전문잡지가 속속 간행되면서 더욱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수필가로는 조지훈·박목월·모윤숙·전숙희·조연현·서정주·김소운·피천득·안병욱·김형석·김태길·김동길·서정범·유안진·신달자 등이 있고, 이들 가운데 몇몇은 지금도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수필로는 1970년대에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물질문명의 확산으로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성향을 보인 수필이 대거 등장했는가 하면 철학적이거나 순수서정을 드러내는 수필도 많이 씌어졌다. 1970년대 수필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안병욱·김형석·김동길 등이 이른바 '70년대 작가'의 소설이 보여준 '성과 타락' 속에서도 맑고 순수한 문학정신을 지켜왔으나 차츰 대중과 영합하려는 작가들의 출현으로 인해 수필문학은 퇴색하게 되었다.

한편 다양한 문예지와 수필문학 전문지가 발행된 결과 수필문학이 활성화되는 듯 했으나 발표지면의 확대가 오히려 질적으로 낮은 수필가들을 양산하여 콩트 위주나 감각적인 수필작품이 많이 발표되자 이를 극복하는 것이 수필문학의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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