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21.01.07 12:12

윤근택 조회 수:22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열일곱 번째, 일백열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7.

  신선로(神仙爐) 모양의 무쇠나무난로다. 조손(祖孫)은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아직도 오지 않은 외손주녀석 으뜸이한테 말을 건넨다.

  “으뜸아, 지난 번엔 (제 118화) 이 할애비는 ‘오리나무[五里木]’가 거리상 5리마다 이정표로 심은 데서 붙여진 나무 이름이라고 들려준 바 있다? 길과 관련된 나무이름이 또 있다면?”

  녀석은 의자를 이 할애비쪽으로 더욱 바짝 당기며 경청하려 든다.

  “으뜸아, 아주 오래 전 옛날 교통수단은?”

  녀석이 모를 리 없다.

  “한아버지, 그야 당근(당연히) 말[馬]이었지. 그러기에 요즘 우리가 쓰는 동력의 단위 ‘마력(馬力;horsepower)’도 거기서 생겨났잖아.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가 짐마차를 끄는 말이 단위시간에 하는 일을 측정해서 정한 마력(HP)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사실 기차의 바퀴도 네 발로 달리는 말의 다리의 움직임을 본따 ‘링크’를 붙인 거라고 동화책에서, 그림책에서 읽고 본 적 있는 걸! 심지어, 기차를 ‘철마(鐵馬)’로 부르기까지 하잖아. 모두 말[馬]이 기준이었다?”

  ‘고 녀석, 알분떨어(아는 체하는 게 많아) 무슨 말을 못하겠다.’

  “으뜸아, 맞아. 네 말마따나 우리 선조들의 교통수단은 말이었어. 말을 타거나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거나 했지. 말은 언제고 위에서 네가 ‘당연히’를 달리 말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지. 그러니 말과 관련된 나무이름이 금세 떠오를 법도 한데?”

  그러자 녀석이 알아맞히려 한다.

  “한아버지, ‘당근나무’? 아니면 ‘채찍나무’?

  “땡. 답은‘말채나무’인 걸. 말채란, 말을 빨리 달리도록 모는 데 쓰는 채찍이니, 하기야 네가 말한 대로 ‘채찍나무’라고 해도 되겠는 걸!”

   아래는 녀석한테 말채나무에 관해 더 들려주는 이야기다.

  ‘말채나무는 가지가 층층 달린다고 붙여진 ‘층층나무과[層層木科]에 속하는 나무. 말채나무 가지가 봄에 한창 물이 오를 때 가느다랗고 낭창낭창해서 말채찍을 만드는 데 아주 적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말채찍으로 사용할 정도면 탄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아주 단단해야 한다. 그러한 재질이다.

  말채나무·곰의말채나무·노랑말채나무·흰말채나무 등으로 분류된다. 말채나무는 잎의 측엽(側葉)은 4~5쌍, 가지는 나중에 자색(紫色)으로 변하고, 꽃차례는 위가 평평하다. 곰의말채나무는 잎의 측엽이 6~9쌍, 가지는 나중에 황색 또는 적갈색이 되고, 꽃차례는 둔두(鈍頭)이다. 흰말채는, 말채나무와 곰의말채나무가 열매가 검게 익는데 비해 열매가 희고, 가지가 가을철에 붉어지는 점이 식별점이다. 노랑말채나무는 흰 열매, 나무껍질이 겨울에 짙은 노랑을 띤다고 붙여진 이름. 흰말채는 노랑말채와 마찬가지로 흰 열매를 달되, 나무껍질이 여름에는 푸른색을 띠다가 겨울에 빨간 색으로 변한다. 추위를 견디기 위함이다. 흰말채는 함경북도·평안북도 등 추운 지방에 주로 자라며 관상가치가 있어, 생울타리용으로 즐겨 심는다. 흰말채는 열매색깔을 기준으로, 노랑말채는 나무껍질 색깔을 기준으로 이름지었으니, 흰말채를 ‘붉은말채’라고 이름지었더라면, ‘노랑말채’와 균형을 이뤘을 텐데... . ’

  다소 장황한 위 수목학 강의(?) 듣고 있던 녀석이 말한다.

  “한아버지, 지난날 한아버지가 익혔다는 수목학의 ‘뿌리와 줄기[根幹]’를 이제야 알겠어. ‘분류’가 주요사항으로 들어있는 학문. 근데(그런데) 으뜸이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얻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게 뭐게?”

  녀석이 자못 궁금해 하는 이 할애비한테 야무지게 말한다.

  “한아버지, 어쨌든 세상의 모든 이들이 다들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자기만이 지닌 독특한 그 무엇 때문에 이름들이 다 다르고 말이야.”

  이 할애비의 수목학 강의는 이래서 대만족이다. 이 할애비가 녀석의 이름을 그 무엇도 아닌 ‘으뜸’으로 지어준 까닭을 깨닫는 듯도 하고.

  산골 농막에 다시 어둠이 찾아들고, 나무난롯불은 사위어가고.


  118.

  또 마른 행주 쥐어짜듯하여 118화를 채울 것입니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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