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 by 임수자

2011.01.23 06:52

김영교 조회 수:408 추천:54

박완서(朴婉緖, 1931-2011) 별세 ‘문단의 큰 어른’ 박완서씨가 22일 오전 6시17분 별세했다. 향년 80. 사진 김경호 기자 고 박완서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 받지 마라” 22일 새벽 담낭암 투병 중 별세 문학계 거목의 마지막 유언 잔잔한 울림 고인은 지난해 가을 담낭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치료를 받아 왔으나,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병세가 나빠져 세상을 떠났다. 1931년 개성 외곽 개풍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전쟁이 터지면서 갓 입학한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했으며,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에 소설 <나목>이 당선하면서 늦깎이로 등단했다. <나목>은 아직 휴전협정이 맺어지기 전 스산한 서울을 배경 삼아, 전쟁이 할퀴고 간 작가 자신의 황폐한 청춘기를 되살린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화가 박수근과의 만남이 비중 있게 그려진 것 때문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976년 첫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출간한 그는 이후 <배반의 장미> <엄마의 말뚝>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등의 소설집과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을 펴냈다.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모독> <어른 노릇 사람 노릇> <호미> 등의 산문집에 이어 지난해 7월에도 신작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내놓았다. 이밖에도 <부숭이의 땅힘>을 비롯한 동화와 가톨릭 묵상집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등의 저서가 있다. 고인은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인촌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4년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되었으며, 2006년에는 모교인 서울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 장녀 호원숙(작가), 차녀 원순, 삼녀 원경(서울대 의대 교수), 사녀 원균씨 등 4녀와 사위 황창윤(신라대 교수), 김광하(도이상사 대표), 권오정(성균관대 의대 학장), 김장섭(대구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식은 천주교 식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 묘지로 정해졌다. (3410-6916) 최재봉 기자 ■ 빈소 표정 고인의 빈소에는 활짝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이 놓였다. 박 선생은 지난해 10월 담낭암 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돼 이달 11일부터 자택에서 큰딸 호원숙씨(57·여)와 함께 지냈다. 큰딸 호씨는 "어머니가 주무시다 편안히 돌아가셨다"며 "특별한 임종 시에 유지를 남기시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셋째 사위인 권오정씨(53)는 "더 이상 장모님의 훌륭한 말씀을 듣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프다"며 "장모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인생의 재미중에 하나"였다고 심경을 전했다. 오전 11시께 찾은 고인의 빈소는 지인들과 가족들의 장례준비로 분주했다. 오전 11시30분께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화도 도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박 선생의 지인들과 문학계 후배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다. 오전 11시50분께 빈소를 찾은 가수 김창완씨(57)는 "한달전쯤 고인을 만났을때 '몸이 안좋아요'라고 첫 마디를 나눴다'"며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고인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눈가가 촉촉해진 김씨는 "그래도 선생님이 많은 것을 남겨주셨다"고 안도했다. 고인의 빈소 입구에는 "부의금을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고인은 평소 "문인들은 돈이 없다"며 "내가 죽거든 찾아오는 문인들을 잘 대접하고 절대로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사위인 권씨가 밝혔다. ⓒ 한겨레 http://www.hani.co.kr 임수자 dona nobis pacem!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문학계의 큰별이 지셨습니다. 평소 제가 이분의 글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저에게도 잔잔한 충격이 오는군요. 우리 임후배님처럼 문학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는 얼마나 충격이 크겠습니까. 젊어서는 생활에 바빠 문학작품의 진가를 모르고건성 읽은 것같습니다. 이제 늙어 은퇴하고 인생을 돌아 보면서 시간을 가지고 읽는 문학작품은 정말 가슴 깊게 명상과 감흥을 줍니다. 젊어서는 강의를 살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러시아문학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나를 위해 읽으니 아주 좋군요. 요즘은 안똔 체홉의 단편들을 읽으며 그 중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젊은 시절 이야기 by 김호중 dona nobis pacem! Grant us peace! 금요일은 공연히 왔다 갔다 부스럭거리며 밤샘하다시피 하다가 토요일 늦게까지 자는 버릇을 깨고 오늘은 일찍 잠이 깨었습니다. 인터넷 아침신문을 보다가 박완서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망연히 그의 부음 소식을 읽어갔습니다. 박완서는 문학이라는 고지를 향해 걸어갔고, 그리고는 정상에 섰습니다. “일등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자연히 그리 되었다”는 조규화 교수님처럼 그는 아마도 일등을 할 생각이 없었던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자연스럽게 일등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쉽게 문학을 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박완서의 천부적인 재능에 놀라고는 했습니다. 문학의 언저리에 있는 저에게 과분한 말씀을 주신 것 큰 용기로 알겠습니다. 안똔 체홉의 단편 기대하겠습니다. 교수님의 수상록 유년시절 속편을 고대하면서 by 임수자 자기의 일상사를 숨김없이 털어 내 놓은 박 완서님의 글들은 문인과 독자라는 높은 턱을 허물 듯 너무나 가깝게 우리의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병아리 작가들이 수필이라는 분야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촉매 역할을 했는 지도 모릅니다. 요즘 인간의 수명이 이제는 100세를 간다고들 합니다. 2008년 작가 박경리씨의 장례식장에서 조사를 하셨던 분인데 속절없이 올해 초 또 이렇게 아까운 나이에 거목이신 여류문인께서 세상을 하직 하시니 너무나 커다란 상실감에 빠지게 합니다. 삼가 박완서 작가님의 명복을 빕니다. by 이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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