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

2006.05.04 06:29

노기제 조회 수:934 추천:121

첫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
                                                                노 기제

          가족관계가 아닌,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첫 순간에 대강은 어떤 느낌을 받는다. 그걸 첫인상이라고 할까. 인상이라면 꼭 얼굴에 제한이 된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풍겨오는 냄새 같은 것을 말하고 싶다.
어릴적부터 못 생겼단 수식어가 나를 따라다니던 때문인지 사람을 처음 보는 순간 잘 생기고, 예쁜 얼굴 쪽으로 눈길을 둔다.  그 사람 내면의 어떠함을 알기도 전, 외모로 호, 불호를 결정한다.  그 후 시간을 함께 공유하는 동안에 서서히 드러나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습관, 모습의 변화에 따라  그만 그 첫인상에 매겨졌던  점수가 형편 없이 어긋나 있음을 곧잘  발견 한다.
   내가 대 여섯살 아이적에 동네에서 하던 일이 있다. 서울 명동 뒷골목, 미화 딸라 환전 장사  아줌마들이 진을 친 동네다. 그 중엔 아주 갖난 아이를 등에 업고 서성이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그 아줌마들 등에 업힌 애기들을 쫓아 다니며 어르고 만지고 안아 보겠다고 조르는 일이다. 그 중에 아주 예쁜 애기들만 골라서 말이다. 혹여 얼굴이 못 생긴 애기라면 절대로 다가 가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일 먼저 내가 후한 점수를 매긴 남자 아이는 우리반 반장 김주일. 그 아인 정말 잘 생긴 얼굴이었다. 얼굴색도 어찌그리 하얗던지. 사납게 찢어진 내 작은 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크고 동그란 눈에 서글서글하니 어진 눈빛을 가진, 무척 조용하지만 부드러움이 느껴지던 아이었다.  꼭  찾아 만나고 싶은 인물이다.          
   그 후 남녀가 한 교정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하고 눈에 띄는 남학생들을 하나하나 스치면서 기억 해 둔 몇 학생이 있다. 뭐랄까. 나의 이상형이라고 찍어 둔 남학생들이라고나 할까.  누가 뭐랄 일도 없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으니. 그리곤 까맣게 잊고 살았다. 세월이 가고 동창들 모임이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변한 모습으로 다시 옛 그 얼굴들을 대하게 되었다.
사대부중 입학 당시부터 3년의 중학 생활을 마칠 동안 남 모르게 선택했던 몇 얼굴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물론 알아 볼 수 없게 변한 얼굴도 있었다. 이름을 듣고서야  비로서 첫 느낌이 빗 나간 참담함을 경험한  순간도 있었다. 게다가 예전처럼 내숭 떨고, 부끄러워 얼굴 피하는 일 없으니 서로 얼굴 마주하고 옛 얘기도 편하게 한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해 보면, 아차, 내가 생각했던 그 냄새가 아닌 것을 발견한다. 목소리 톤이나, 대화법이나, 눈 빛, 얼굴 표정에서 내가 그리던 그림이 아님을 본다.
피식 웃는다. 내가 나를 생각해도 우습다. 뭘 하는 거야?  어느새 동창이 아닌 남자를 찾았던 심사를 들켰으니 실소를 할 수 밖에. 한 사람 한 사람 확인하는 작업이 끝나면서 그 잘 생겼던 얼굴들을 드디어 단순한 동창으로서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대신 마음속에 감춰 두었던 철없는 소망은 꺼내 버려야 했다. 그리곤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함께 여행도 한다.
   반을 넘겨 살아버린 인생이다. 이미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는 동창들도 여럿 된다.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난 그 중에도 맘에 두었던 얼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남아 있는 전부가 다 마음에 들어 온다. 귀한 관계다. 어느 관계에서 이렇듯 정겹고, 스스럼 없고, 편한 이성을 만날 수 있을가.
어느새 고교 졸업 40년이 됐다. 나이 숫자를 보면 분명 늙어버린 모습들이어야 하는데 어림 없다. 아직도 우린 서로가 애틋하고 나는 여자, 그대는 남자로서 뭔가 가능성을 기대 해 보기도 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40년 넘게 헤어져 각각 자기 자리에서 살아왔기에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은 옛날 그 시절 그 모습이다. 착시현상이다. 아주 지독한 착시현상이다.
다시 모였던  첫 시간엔 실망도 했지만, 만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그 착시 현상은 확실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보여질 내 모습이 완전히 단발머리 여중생으로 돌아갔다고 나 자신이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습도 예전에 내가 사모했던 그 시절의 모습으로 바꿔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잔잔하게 따스한 대화들이 오가며, 열흘간의 단체여행을 했다. 잠간 스치며 느꼈던 감정들이 확인 되는 기회다. 역시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겪어봐야 알 수 있다. 40년 전의 첫 느낌이 맞아 떨어질 리가 없다.  실망 할 사이도 없이 변해버린 모습들을 그대로 흡수하며 어울린다.
기대하지 않은 탓일까. 그 여럿중 한 사람의 모습이 확대되어 내게 다가온다. 우선 얼굴 모습이 옛날 그대로임에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과묵하다. 예전의 나를 기억한다. 언제나 밝은 모습이 보기 좋단다. 열심히 사는 생활 태도가 부럽단다. 동창들을 배려 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단다. 함께 동행하지 않은 자기 아내랑 애들을 챙기는, 가정에 충실한 모습이 비쳐진다.  보통 땐 입다물고 나서지 않는다. 분명 옛부터  반장급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말을 해야 할 때가 되면 확실하게 말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대강 그런 사람이다. 인물 좋고, 조용하고, 말 할 시기를 정확히 알고, 나의 좋은 점을 칭찬해 주고, 절대 큰소리로  간섭하지 않고,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단점을 지적해 주고, 나의 부족한 점은 넓은 아량으로 감싸주는 사람.  긴 시간  함께 있어도 싫증나지 않는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주는 사람. 그런 사람 한 사람 찾게 되었디. 그것도 내가 어릴적에 골라서 내 맘에 숨겨 놓았던 몇 중에서 찾은 행운이다. 비록 여행이 끝나 각자의 현실로 돌아간다 해도, 평생에 그려보던 이상형 한 사람 간직할 수 있는 난 축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
                                                200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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