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교로 간 17회 엘에이 3인방의 변

2013.12.09 05:01

노기제 조회 수:1020 추천: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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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타교로 간 17회 엘에이 3인방의 변
                                                                                    박기순
        “야, 넌 부고도 안 나왔는데 왜 왔니?”
        고교졸업 30주년 재상봉 때, 엘에이 인근에 거주하는 사대부고 17회 졸업생들이 의견을 모아 서울에서 주최하는 재상봉 파티에 참석 했을 때, 내게 날아 온 질문이었다. 그렇게라도 반겨주던 김인기가 친근하게 느껴진 건, 쭈볏쭈볏 당황해야 할 내 긴장을 풀어 준 때문이다.

        그 시점을 발판으로 17 동기들의 모임이 활성화 되었다. 미국 엘에이 동기들 모임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동기 모임이 잦아지고, 외국에 거주하는 동기들에게 보내오는 초청 또한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그 당시, 주저하는 마음으로 인근에 계신 강신호선생님께 여쭸다.
        “가고는 싶은데 가도 될까요?”
        “넌 너무 유명해서 아무도 네가 부고 졸업생 아니라고 생각지 않을테니 가라.”

        최종학력 서울사대부중으로 사대부고 졸업 동기생들 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내게 주어지는 기쁨은, 그 때 그 나이로 돌아간 물감 번지지 않은 도화지 그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 이대부속고등하교로 간 박태호,  서울남자고등학교로 간 한규복, 그리고 이화여자고등학교로 간 나 박기순,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엘에이 17동기 모임에 등록이 된 셈이다.

        누구에게나 생길법한 질문이다. 세 학교 모두 일차전형인 학교이니, 사대부고에 응시했다가 실패해서 타교로 가게 된 경우와는 다르다. 이들 셋은 도대체 왜? 타교로 갔을까?

        먼저 치과의사가 되어 엘에이 근방에서 개업하고 있는 이화여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한 박태호의 변을 들어보자.
        이유는 확실하지 않은데 담임이시던 태성옥 선생님께서 어느 순간에 “에라 이놈아, 넌 이대부고나 가라.” 탁 뱉아 버리듯 한 말씀 하시길래 “그러지 뭐.” 아무런 의문도, 생각도 하지도 않고 그 순간 그냥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약간 의아해서 한 동안 멍하니 박태호를 보면서 “그게 다야?” “응, 그래서 이대부고 갔어.”
        이대부고 역시 남녀공학이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난 모양이다. 운명인가?

        서울남자고등학교로 간 한규복은 패기만만하게 제법 강한 이유를 내 놓는다. 사대부고가 남녀공학이라 아마도 교육자체가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엉거주춤 중성이 될 것같은 두려움에 확실하게 남성다운 남성으로 키워낼 것 같은 남자학교로 가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3년 후, 졸업하면서 많은 후회를 했다며 아쉬움을 함께 표한다.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교육제도나 교육자인 선생님들이나, 어느 면 하나도 사대부고를 따라가지 못하는 열악한 교육이었다고 회상한다.

        나, 박기순의 변은 이렇다.
        중학 3년동안 내가 누린 교정이 내게는 특별했다. 뒷동산 청량대의 자연을 안고 살면서 정서적인 성장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건물 앞쪽에 큰 대자로 누운듯한 엄청나게 넓은 운동장,  그 운동장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백 여 계단. 중학생의 작은 가슴으로는 어느 광활한 대륙의 한 부분인 듯 착각하고 지냈다. 좁은 어린아이 마음을 한 없이 넓게 잡아 당겨 늘여 주던 넉넉한 공간들이었다.

        그런데, 을지로 3가 쪽에 살던 내가 성동역에 있던 사대부중을 통학하면서 을지로 5가에 자리한 사대부고를 하루에 두 번씩 보며 지날 때, 그 답답해지던 내 가슴을 확실히 기억한다. 빨간 벽돌 건물. 전혀 보이지 않는 운동장이란 공간. 어느 이름 없는 감옥소 같은 인상을 받으며 3년을 지켜봤다.

        내겐 외삼촌이 한 분 계셨다. 엄마의 큰 오라버니시다. 숙모 되시는 분은 일본분이시고 그 집 큰딸인 외사촌이 나와 같은 학년인데 이화여중생이다. 숙모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여자는 물과 같다. 어느 그릇을 만나느냐에 따라 모양이 각양각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니 그 그릇을 만나 모양이 결정 되기 전에, 너 스스로 예쁜 모양새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러면 날마다 접하는 생활환경을 너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을 때, 기왕이면 아름다운 환경을 택하라” 는 내 인생 최초로 접한 길잡이 되는 말씀이었다.

        아무런 생각 보태지 않았다. 잔디로 녹색의 장원을 이루고, 장미나무가 즐비하고, 등나무길이며 노천극장이며 어느 한 곳 예쁜 꿈을 꾸기에 부족한 곳이 없다. 산책로가 따로 필요 없다. 등하교길이 모두, 아름다운 등나무 아래를 걸어야하고, 각양각색의 장미꽃들이 화사하게 인사를 건네는 꽃밭을 지나면서 한껏 하늘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꿈을 만난다.

        그렇게 이화여고를 지원하고 타교생이 된거다.
        다행히 이완규선배님의 제의로 서울사대부속중고교 동창회라 이름 하여, 우리 셋 모두 편하고 당당하게 동창회 모임에 참여하게 됨이 감사하다. 가끔 엉뚱하게 억측하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따로 변명을 하거나 따져 묻지 않기로 하면서 이 글을 쓴다.

        부고로 못 가게 원서를 안 써줬다거나, 타교로 가지 못하게 우수학생을 말리는 방침과는 달리, 문제학생(지리 선생님을 티나게 좋아하던 학생)이라  붙잡지 않았다는 둥 자신이 교사였기나 하듯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황당한 친구들 이 글을 참조해주면 좋겠다.

        다행히 가까이 계신 강신호선생님이 우리 중3때, 5반을 담임하셨고 그 반 반장이던 강원자가 성심여고로 갔기에 선생님께 여쭸다. 반장이 타교로 가는데 담임이신 선생님이 만류하셨었나를. 우리학교(사대부중)는 아이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일은 없었다고 확실하게 말씀 해 주셨다.

        고교 3년보다 나는 3년 더 어린 중학 3년의 추억을 지닌 채 부중 친구들을 만난다. 그 말은 친구들 마음보다 3년이 더 어린 것이 내 마음이란 뜻이다. 뭔가 좀 부족하더라도 3년 아래 동생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기 바란다. 그래서 더 이쁜 꿈을 꾸며 살 수 있다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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