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그향기/여행기

2010.09.19 09:55

김수영 조회 수:1142 추천: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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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 그 향기  


   제주도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 Spirited Garden)’은 전에 ‘분재 예술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분재나무와 정원수로 가득 채워진 이 아름다운 정원은 조그마한 나무들이 거의 모두가 백 년이 넘는 나무들로 꽉 차 있다. 분재는 뿌리가 자라지 못해 키도 자라지 않아 난쟁이 나무처럼 보이지만 예술품으로 다듬고 가꾸어 분재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아름다운 하나의 조각품을 연상케 했다. 

   이곳에서 관광객에게 분재 나무를 소개하는 큐레이터(Curator)가 15분가량 중요한 분재 나무를 소개하는데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분재나무를 가꾸고 키우는 데 담긴 애환과 사랑과 감정을 시적인 표현으로 묘사해 듣고 있는 관광객의 마음을 뭉클하게 감동을 주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정말 아름다웠지만 표현하는 큐레이터의 마음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 일조 이 석의 아름아움에 심취해 말문이 막혀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큐레이터가 향나무에 관해 설명할 때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향냄새가 그 향나무와 그녀에게서 풍기는 것 같아 향냄새에 심취해 황홀감마저 느꼈다. 향나무는 살아 있을 때 나뭇잎과 수액에서도 향기가 나지만 나무줄기에서 더 많은 향냄새가 난다고 한다. 향나무는 살았을 때보다도 죽어서 더 강한 향냄새를 풍긴다고 하니 참으로 귀한 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향나무로 만든 목침이나 목각 그릇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 향긋한 향냄새를 맡게 되면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이 깨끗해 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철재 나 풀라스틱 그릇에서는 느껴 보지 못하는 어떤 생명의 신비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향나무가 자랄 때 소나무처럼 상록침엽수이므로 사시사철 춥고 더운 날씨에 비바람을 맞으며 눈보라에 시달려도 꿋꿋이 자란다. 보고 있노라면 아픔을 견디어 낸 끈질긴 생명이 요동치는 듯 느껴진다. 인고의 결정체가 향으로 피워오르지 않았을까. 향나무의 향은 어떤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 이상으로 나의 마음에 향기를 심어준다. 내가 향나무가 되고싶은 꿈을 갖게 해 주어 마음에 향기로 가득 충전하고 다음 관광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주에 있는 촉성 누를 관광하고 논개가 임진왜란 때 일본 적장과 함께 남강에 투신자살했다는 바위(義岩)를 둘러보고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며 감회에 젖었다. 변영로의 시 ‘논개’를 읊어보며 그녀의 갸륵한 조국애를 기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논개 사당도 둘러보고 그녀가 뿌리고 간 죽음의 향기야말로 자자손손 향냄새를 맡을 것이요, 우리 가슴속에 그녀의 혼이 맥맥히 이어 저 나갈 것이리라. 다시 한번 논개의 시를 읊으며 논개의 향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었다.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그다음 발걸음은 거제도에 있는 6.25 전쟁 당시의 ‘포로수용소’를 구경하고 앞바다에 있는 외도를 구경하면서 주인공 개발자 이창호 씨와 최호숙 부부에게 깊은 감사가 흘러넘쳤다.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아름다운 아 열대성 식물로 가득 채워진 보타니아 비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1969년 땅을 개간한 후 실패의 연속이었으나 끈질긴 희망과 집념과 피와 땀의 노력으로 외도 해상농원을 만들었고 1995년 문을 연후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남해안 최대의 관광지가 되었다. 이 외도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마지막 촬영 지로도 유명하다. 

   남편을 수년 전 여의고 홀로 남은 최 호숙씨는 ‘외도’란 수필집을 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농원을 만들겠다는 꿈에 30여 년을 매달린 우여곡절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바다는 파도가 있어야 멋지고 인생은 좌절과 시련이 있어야 더욱 아름답게 인생을 꽃 피울 수가 있지 않겠는가.

   홍쌍리 청매실 마을도 관광했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에 위치한 홍쌍리 청 매실 농원(매실 마을)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이 나누어지는 곳에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움과 매실 농원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아 그 수려함이 뛰어난 농원으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른 봄 매화 축제가 끝나고 청매실의 수확이 끝나 이곳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지는 못했다. 산자락에 펼쳐진 무수한 매화나무가 빼곡히 무성히 자라고 있어서 푸른 하늘과 남빛 섬진강과 청록색 매화나무가 조화를 이루며 이곳 특유의 운치를 자아냈다. 

   청매실을 담 삭혀 갖가지 음료수와 밑반찬을 만드는 수백 개나 되어 보이는 항아리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매실 농원을 벗어나 하산하는 길 양쪽에 매실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었다. 농가에서 부업으로 심어놓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보성에 있는 대한 다원도 녹차 나무를 산비탈 전체에다 심어놓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1939년 개원한 국내 최대의 다원으로 1957년 대한다업 장영섭 회장은 6.25 전쟁으로 황폐해진 차 밭을 일대 임야와 함께 인수 대한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활성산 자락 해발 350m 오 선봉 주변의 민둥산에 대단위 차 밭을 조성하였다. 또한, 삼나무. 편백, 주목, 은행나무, 단풍나무, 동백나무 등 약 300여만 그루의 관상수와 방풍림을 심어 현재는 170여만 평의 면적 중 약 50여만 평의 차 밭이 조성 되어 580여만 그루의 차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곳의 녹차 밭은 국내 유일의 녹차 관광농원으로 1994년 관광농원 인가로 조성되었다. 또한, 수십 년 전 차밭 조성과정에서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는 다원의 명물로 영화, TV 녹화 촬영 지로도 유명하다. 쭉쭉 뻗은 삼나무는 500m 가량 산책길 양옆에 나란히 서 있는데 명물로 손꼽힐 만 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늘을 찌르듯 곧게 솟아있는 삼나무는 하늘을 완전히 가리다시피 울창했고 연인들 끼리 팔짱 끼고 걷는 산책로로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삼나무와 편백나무는 외관상으로는 전문인이 아니면 구분이 어렵다고 한다. 외형적으로 보아 잎이 부드럽고 찌르지 않는 것은 편백이고 잎이 뾰족하여 찌르는 것은 삼나무라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지로 뽑힐 만큼 아름다운 녹차 밭으로 마음에 진하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번 여행 중 향나무의 향기로 내 마음에 와 닿은 몇몇 사람들을 열거해 보았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새사람이 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변화시키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한다. 위대한 인물들은 손꼽힐 정도로 극소수다. 향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에게도 향나무처럼 향기를 내 뿜는 사람들이 있다. 그 향기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풍길 때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향기를 맡고 자기도 서서히 향기를 내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향냄새를 맡았다. 이 향냄새가 몸에 배기 원하고 몸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도 배어나기를 소원해 본다. 그리하여 한그루의 향나무가 되어 죽어서도 더 진한 향기 를 내는 사람 향나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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