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인심

2015.01.22 19:22

성백군 조회 수:193

슬픈 인심 / 성백군

잎 다 떨어진 늦가을 감나무에
홍시만 남아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나는 입맛 도는데
집 주인은 감을 먹을 줄 모르는지
작은 새떼들이 잔치를 벌입니다
팔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것들
두서너 개쯤은 따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남의 집 울안에 있는 것들이라서 그냥 지나갑니다

북가주 Walnut Creek, 동네 울 밑에는
오랜지, 사과, 석류 같은 낙과들이 많습니다.
쌓아놓고 썩히느니 비닐봉지에라도 담아 울 밖에 내다 놓으면
마켓에 과일 사려 갔다가 가격표 보고 놀라 내려놓는
나 같은 행인에게는 좋은 선물이 되련만,
더러는 이미 땅바닥에서 역한 냄새를 풍기고---,
그 인심 고약하다 하였더니, 그 게 다가 아닐 거랍니다
저 집에는 우리처럼 둘만 남은 늙은 부부 힘 부쳐 따지 못할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처럼 사는데 바빠서 둘러볼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며
함부로 속단하지 말랍니다

오다가 울 밖 잔디밭에서 떨어진 석류 3개를 주었습니다
웬만한 자봉 만합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보이는 빨간 알맹이들이 영롱한 보석 같아서
몇 알 빼내 깨물었더니 우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한 댓 박은 될 것 같습니다
잘 먹던 아들과 며느리가 울 밖에서 “주었다.” 하였더니
맛이 변했다며 밀어냅니다
그게 아닌데, 거저 주는 것은 의심나서 못 먹는 세상
돈 주고 산 것만 먹는 세상
왜, 울 밑에 혹은 나무에 그대로 내버려두었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 세상, 돈이 제일인 세상
세상은 부유해지는데 부유해지는 만큼 격차는 벌어지고
행복한 사람은 점점 줄어듭니다

석류 한 댓 박을 그의 다 혼자서 먹었는데,
괜찮겠지요? 슬픈 인심도 인심이니까요
괜찮아야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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