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感謝)의 인사 이 신 우

2018.06.02 12:34

ssanahee 조회 수:76

감사(感謝) 이 신 우

 

감사란 무엇일까? 감사는 어떻게 찾아오고 어디에 머무는 것일까? 가슴 덥히며 솟아난 눈물, 남을 의식해 참아내는 그 감정일까. 이것이 복이라고 소중히 감싸 안아보는 마음이 감사일까.

 

글을 배워 감정을 글로 옮길 수 있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동네 어머니들의 글 심부름을 도맡았다. 대한민국의 건실한 남자인 아들이 수행하는 병역 의무와 아들 걱정하는 고향의 어머니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책임진 대필자였다.

참새는 작아도 알을 낳고, 제비는 강남을 오고 가는 자연 현상을 비교하며 비록 少年이라도 참새같이 부지런하고 제비처럼 민첩했다.

당시의 어머니들은 우리글을 해득하지 못했다. 38선을 지키는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나는 성우가 되어 낭독했고 아들 그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음성을 글자로 옮겨 예쁜 글씨로 적었다. 동네 어머니들에게 붙들려 뛰어놀고 싶은 시간을 빼앗겨도 싫다 하지 않았다. 또래에서 유일하게 나만 글자를 소리로 바꾸어 들려드리고 말씀을 글자로 옮겨 보내는 일에 감사했다.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에게 흐뭇한 미소를 안겨줄 수 있었으니 글쓰기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인가 싶어 기분이 좋았다.

세월이 흘러 내게 지워진 병역의무를 수행할 때는 아침마다 어머니 앞으로 문안 편지를 드렸다. 아버지께 드리는 문안도 따랐지마는 언제나 어머니가 우선했다. 군사우편 도장이 찍힌 아들의 편지를 날마다 받아 읽는 우리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소식에 내 가슴은 감사로 넘쳐흘렀다.

 

굴곡진 세상 길, 미합중국으로 열릴 때 아들이 꾸는 꿈에 생채기라도 날까 말씀도 아끼시던 울 어머니. 그 어진 마음이 통했을까, 미 대사관 앞에 늘어선 이민 희망자들의 긴 대열을 제치고 열린 새로운 길은 차례를 기다리는 수고도 없앴다.

백인 아닌 중동계 이민관은 얼굴 보니 질문할 것도 없네.”라며 도장을 찍던 그때, 조상님께 드리는 또 한 번의 감사를 가슴에 담았다.

수백 개의 봉제 업체가 모여 있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봉제 업체 역사에서 오후 6시면 작업장 문을 닫아거는 업체는 내 것 말고는 없다. 그중에서 제일 일을 잘하는 업체로 주 정부가 주는 상을 받은 업주도 나 아니고는 없다.

골프를 배우자는 친구들의 권유가 뿌리 얕은 나무에는 어울리지 않아 거부하고 볼룸댄스를 했다. 골프에 소비하는 긴 시간을 이질 문화적응에 애쓰는 자식들과 함께했다.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해가는 자신에게 감사했다.

공정사회, 법과 원칙이 확실한 미국이라 하지만 연방법과 주법이 일치하지 않아 불협화음이 많은 국가이기도 하다. 무조건 적으로 조여 오는 노동법을 피해야겠다고 폐업을 결정한 시기와 볼룸댄스를 가르치는 스튜디오를 열자는 생각이 적시에 이루어졌음도 내 잘나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조상님의 도움이 함께 함이라 믿어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불만 없이, 진정 군담 한번 없이 새벽 5시면 잠자리 접고 딸을 도우러 다니기 5, 음대학원 마친 피아니스트 딸을 의사로 바꿔놓고 모녀가 함께 웃는 모습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10년이 지나는 지금도 끝나지 않은 역할을 감사로 이어간다. 생각해보면 하루, 또 하루 숨 쉬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감사이다.

그러나 내 가슴은 감사의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대필하던 글솜씨는 글공부할 곳을 찾아보게 했고 그 꿈은 사랑방글샘터에서 여문다. 글로써 만들어간 인연은 큰 선생님을 뵈었고 어진 누이 같은 안내자를 모셨다. 대필할 때의 어린 감정이 큰 나무 그늘에 쉬며 살찌우고 자라 대한민국 문단에까지 등용문을 열고 서게 되니 이 어찌 감사를 멈추겠는가.

 

2018519. 나는 드디어 처녀작품 모음집 소리 없이 흐르는 시집을 출판하고 큰 스승과 누이 같은 안내자와 문학 동호인을 한자리에 모셨다.

70여 명의 동호인이 댄스 스튜디오에 모여 앉았다. ‘문인과 댄스 스튜디오도무지 조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것이 한자리에서 마주한 이신우 시인의 처녀 시집 출판 기념회’, 모든 참가자의 호응으로 너무 멋졌다.

이신우가 감사의 노래를 불러온 정점이 여기였다. 한 달을 정성 담아 준비하여 모신 자리, 참석해 주신 분들이 잘했다는 말로 인사해주는 위로의 자리. 1, 4의 손녀들 재롱이 참석한 문인들을 활짝 웃게 했을 때, 지금까지의 감사가 절정의 꽃을 피웠다. 나는 진정한 복장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내 생애 가장 복된 자리에 서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기억하리라. 노스승의 축사를. 잊지 않으리라 낭랑한 목소리의 시 낭송을. 남은 생 함께 살리라 참석한 문학동호인들과. 지켜 가리라 어린 손녀들이 주는 티 없는 사랑을.

 

내 손녀 Chloby 자매와 그의 엄마, 아빠, 나의 작은딸, 맛있는 음식 대접 드리자고 손수 불고기를 요리한 아내 그리고 못난 시인이 함께 고개 숙여 드리는 이 인사가 바로 감사이다.

감사는, 느낄 자에 사례할 자를 써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이다. 가슴에서 우러나 가슴을 덥히고 가슴속에 산다. 못난 사람의 시집 출간 기념 잔치에 바쁜 업무 제쳐두고 참석해주신 선남선녀 앞에 온 가슴 열어놓고 감사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