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해서 가는 가까운 멕시코는 일 년에 한두 차례 남편 출장길에 동행한다. 본토 타코 맛을 즐기는 것과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특별한 일이 펼쳐질 것 같은 설렘 때문에 따라가기를 청한다.

갈 때마다 들르는 타코 전문점이 있다. 손님이 볼 수 있는 거리에서 밀가루나 옥수수 가루를 반죽하여 큰 불판에 구운 토르티야에, 바로 옆에서 지글지글 구운 스테이크 고기를 쓱쓱 썰어 넣어 준다. 그 외에는 모두 손님이 자기 취향에 맞게 넣을 수 있도록 기다란 테이블에 아보카도.토마토.빨간 무.양파.콩.홍당무 피클.구운 파와 할라피뇨 등 10가지도 넘는 재료가 준비되어 있는데 끊임없이 새 것으로 채워넣어 얼마나 싱싱하고 풍성한지.

지금은 건물을 단장하여 에어컨도 넣고 밖에 있던 화장실도 안으로 들여놓고 주차요원도 있지만, 10 여 년 전만 해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포장마차 식당이었다. 1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한여름에 불판 앞에서 토르티야와 스테이크를 굽는 직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더위에 그 집 타코를 먹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광경이라니. 미국 번호판을 단 차도 드물지 않게 보였는데 소문 듣고 간 우리도 그중에 끼어 있었다. 이스트 반죽하여 즉석에서 구운 토르티야를 먹고 나면 손에서 향기가 난다고나 할까. 10년 넘는 세월을 그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찾아가고 있으니 미국에서 먹는 타코와 뭐가 다른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 맛과 분위기를 오래 유지했으면 좋겠다.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공업도시를 달리다 보면 간판 이름만으로도 어느 나라 업체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하니웰.프렉스트로닉스.벤치마크 같은 미국 회사도 보이지만 소니.산요.파나소닉.샤프 같은 일본 회사가 눈에 더 쉽게 들어온다. 10여 년 전 팡팡 잘나가던 소니는 회사 규모도 크고 채용 인원도 많아 근처만 가도 왁자지껄 분위기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엔 소니 간판 대신 다른 이름의 간판이 붙어있고 주변도 썰렁하다. 첨단 아이템으로 갈아타지 못한 결과이다. 그때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동종 업체로 수평이동할 수도 혹은 더 좋은 직장을 얻는 행운을 얻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마지막 직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십수 년 동안 수많은 타코집과 유수한 기업체들이 일어나고 스러짐을 보아왔다. 성공과 추락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했다. 남은 세월이 한량없이 펼쳐져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던 이삼십 대에는 급격한 변화의 분기점을 20년 단위로 생각하다가 10년.5년.1년… 점점 짧아지더니 어쩌면 '오늘 하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래전 시내 버스 운전석 앞에 많이 걸려있던 사무엘의 '오늘도 무사히' 기도하는 그림의 의미가 새삼 절실해진다.

미국에 비하면 도로도 거칠고 먼지도 많고 여러 면에서 뒤떨어져있지만 생활 환경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다소 무거운 화두를 안고 국경선을 건너온다. 멕시코에 살고 있는 사람들, 멕시코인, 미국인, 한국인, 인디언 멕시칸 그리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민족… 모두 '오늘도 무사히'였으면 좋겠다.



미주 중앙일보 201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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