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에 대한 연민 / 박봉진


화과나무를 보면 답답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 “그러면 안 돼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남을 배려하면 도우고 싶고, 뭔가 주고 싶고, 때론 받는 낙도 있다. 그렇잖고 무슨 살 맛 나랴. 혹 눈에 안 띄어도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으면서 천방지축 뻗은 가지에다 넓적하고 껄끄러운 잎사귀를 무성하게 매단다. 이웃 나무들을 가로막고 일광을 독점하려는 속셈에서다. 뿌리는 또 어떻고. 땅속 깊숙이 내려 수분을 빨아올릴 일이지. 지면에서 얕은 땅 지평 아래로만 사통팔방 문어발처럼 뻗어 그 둘레를 선점한다.


말리는 그 근성. 원산지 지중해 지역이나, 중동의 사막지대 오아시스 근처라면 모를까. 캘리포니아 한 여름 뙤약볕에 그냥 두면 얼마 못가 잎사귀가 시들해져있다. 어찌 그냥 두랴. 그쯤이면 내 속도 좀 알아주련만. “대나무도 60년이면 꽃을 피운다는데, 어디 꽃 한 송이 피워보렴.” 그럴 순 없단다. 오곡백과와는 생판 달리 꽃을 바깥에 피우지 않는다. 제안으로만 꽃을 피워 불리고 키워 열매를 익힌단다. 그래. 벌, 나비가 발 부칠 데 없게 하고. 바람까지도 일없다 하는 독존을 자랑삼는다. 유전자를 들먹이고 조상 탓을 하니 딱하다.


연도 인연이니 어쩌랴. 뜰이 좀 넓다고 샀던 집에 무화과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톱질자국이 남아있는 고목 둥치에다 가지는 뒤엉킨 쑥대머리였다. 전지를 하고 매년 다듬어 줘 지금은 큰 일산 수관(樹冠)으로 서있다. 울안이고 집 바깥장소 그 그늘에 나가 즐겨 머물고 있다. 나상으로 견뎌낼 겨울나기를 대비, 속가지를 솎고 도장 가지는 쳐 다듬어줘야 할 때다. 철지난 가마솥더위가 몰려와 민소매로 그 일을 했다. 조심했지만 잎사귀에 시달리고 잔가지들이 흘러낸 유독수액에 내 어깨와 팔뚝은 울긋불긋 흉한 문신에다 따가운 물집까지-.


믿는 도끼에 당한 꼴이다. 무화과나무는 뽕나무 과 종(種)이면서, 뽕나무와 닮은 것은 잎사귀 겉모양과 표피뿐이다. 그럼에도 과대포장처럼 무성한 잎사귀로 눈을 홀리다니. 이른 아침 성으로 들어오다 시장기가 들어 무화과나무를 본 그분. 잎사귀뿐임을 알은 심기가 상상된다. 그러나 내 생각 한쪽엔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 그분이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그 나무를 말려 죽인 것처럼 비쳤다. 이미 포커스를 잎사귀에 맞춘 일성임에도. 색맹의 속단. 다시 보다말고 어허, 무화과나무가 바로 나로구나! 때늦은 이 회개. 비우고 채울 일이 아득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59 새벽 공원에서 차신재 2014.10.01 88
10358 영산홍 차신재 2014.10.01 34
10357 섬진강에 떠 있는 봄 차신재 2014.10.01 404
10356 쑥부쟁이 차신재 2014.10.01 39
10355 동백꽃 차신재 2014.10.01 33
10354 도산서원 차신재 2014.10.01 32
10353 헛소문 차신재 2014.10.01 14
10352 산타모니카 에서 차신재 2014.10.01 11
10351 할아버지의 성묘 차신재 2014.10.01 20
10350 풍경 소리 차신재 2014.10.01 19
10349 봉숭아 차신재 2014.10.01 248
10348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차신재 2014.10.01 322
10347 언니의 첫사랑 차신재 2014.10.01 8
10346 내 속에 뜨는 달 차신재 2014.10.01 13
10345 단풍 물들 듯 / 석정희 석정희 2014.09.29 6
10344 한국인 거주자 숫자의 힘 최미자 2014.11.20 8
10343 천 개의 바람 서용덕 2014.09.26 5
10342 종신(終身) 성백군 2014.09.22 6
10341 관광과 여행 (알라스카) 서용덕 2014.09.19 4
10340 [이 아침에] 누군가 나를 자꾸 외면한다면9/18/14 오연희 2014.09.1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