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겨 가는 예감

2014.11.27 03:22

노기제 조회 수:65



20141120
                            빗겨 가는 예감
                                                            노기제

     속수무책이다. 내 의지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소망만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우릴 사랑 하시니까 막무가내 기도하며 매달리라고 말은 하면서도 데이빗의 방을 나오며 이미 내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정신 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심한 통증으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 해 보이는 지금, 데이빗에게 필요한 건,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 대신에, 아픔에서 자신을 해방 시켜 줄, 주사약이 급선 일게다. 그럼에도 난, 무사태평한 음성으로 잔잔하게 기도하기를 권유하는 구태의연한 이 태도는 뭐란 말인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데이빗을 처음 보았을 때만해도, 전혀 환자 같지 않던 모습이었다. 훤칠한 키에 핸섬한 모습이, 어느 드라마에서 한 두 번은 본 듯한 인상에 그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용하게 미소를 짓는 인사법도 마음에 들었다.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지만, 그럴 여유를 남에게 보이지도 않았다. 과묵하지만 얼굴엔 항상 밝은 기운이 돈다. 어깨너머로 들리는 소문은, 간암 말기로 병원에서 포기한 몇 달 안 남은 환자라 한다.



     그래? 그럼 내가 살려야지. 마침 오렌지카운티 어바인 어느 교회에서 일주일 예정으로 이상구 박사 세미나가 있다. 어쩜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까.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 쳤을 때, 간단하게 물어 봤다. 이상구 박사 들어 본 적 있느냐고. 건강강의로 유명하신 분이란 건 알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미국에서 세미나를 하시는데 가서 들어 보겠느냐 물었더니 아주 쉽게 그러겠다고 답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흔하게 듣던 대답은 ‘고맙지만 괜찮아요’ 아니면 ‘다음에요’ 였다. 그런데 이렇게 선듯 ‘그러죠’ 라고 확실하게 의사 표시를 해 주다니. ‘넌 이젠 살았다’ 우리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유전인자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강의를 통해 깨닫기만 하면, 어떤 질병에서라도 회복할 수 있으니, 간암 말기가 뭐 대수냐. 넌 분명히 살 수 있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니 내가 고맙고, 기이하게 시간 맞춰 한국에 사시는 이상구 박사가 근처 교회에서 세미나를 하게 되고, 강의를 열심히 듣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아 다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으니 이건 기적 같은 기회다. 데이빗. 살아라. 제발 이 기회를 꼭 붙잡고 살아라. 교통체증이 심한 시간대라 두 시간은 족히 운전해서 가야하니 차에서 먹도록 간단한 저녁을 준비 해 줬다.



     착한 아이처럼 시키는 대로 잘 한다. 첫 강의를 듣고, 이상구 박사님께 질문을 하고, 뭔가를 좀 깨달았다고 심증이 갔었는데, 이어지는 이튿날 강의는 약속이 있어서 못 간다고 한다. 답답해지는 내 마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아 버리다니.



     아파트로 돌아와서 내 컴퓨터를 빌려 줬다. 유튜브를 통해 이상구 박사 세미나를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니 듣고, 또 듣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기를 기도했다. 컴퓨터도 없고, 기계치라 웹사이트를 찾고 그러는 걸 전혀 못한다 해서, 고정시킨 세미나 강의를 차례로 클릭하면서 들을 수 있도록 해 줬다.



     우리가 병에 걸리기까지의 생활이 중요한 원인이 되니, 어찌 살았나 물었다. 강아지와 새를 분양하는 사업을 휜랜이란 지역에서 잘 하다가 경기가 나빠지면서 타격을 받아 망하고, 집사람마저 떠나버리고, 어렵게 견디던 중 좋은 여자 만나서 잘 살다가 병들고 나니, 그 여자도 또 떠나서 혼자 여기까지 오게 됐단다. 간호원으로, 결혼해서 잘 사는 딸아이가 있지만 후리웨이를 못 타서, 남편이 시간이 되는 때만 아빠를 만나러 온다고 한다.



     섬기는 교회 목사님이, 매주 화요일이면 오셔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정성으로 거두고 계시니,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알것이다. 그래서 내겐 희망이 보였던 거다. 데이빗, 넌 살 수 있어.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모든 걸 다 맡기고, 순간마다 기쁘게, 감사함으로 살면서 진선미로 생활을 채운다면 고장난 유전자들 확실하게 회복 시켜주실 터니, 넌 살았다. 넌 살았어.



     세미나에서 봉사자로 일하는 그 분들의 회복이야기를 들어보면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 받던 많은 환자들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만나고 회복 단계로 들어간 간증들이다. 그렇다. 너도 반드시 회복할 수 있다고 믿어라.



     이제 딱 두 달 지났다. 데이빗을 데리고 강의 들으러 갔던 그 날이. 그렇게 멀쩡하게 훤하던 인물이 사라졌다. 통증이 심해서 먹지도 못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 해져서 병원에 입, 퇴원을 반복하더니 급기야 양로병원으로 옮겼다. 비록 혼자 외롭게 투병중이지만, 데이빗, 힘내라. 넌 꼭 살 수 있어. 살 수 밖에 없거든. 하나님께 부르짖어. 너무 아파서 못 견디겠다고. 이게 뭐냐고.



     두 손 모으고 데이빗을 대신해 하늘에 불평을 쏟아 올렸다. 데이빗은 복수가 차서 숨도 편치 않아, 말도 못한다. 지독한 아픔을 호소하는 데이빗에게 해 줄 말을 잃었다. 통증이 오죽 심하면 간간이 정신줄을 놓는 듯 보인다. 자신이 가릴 곳을 가려야 한다는 생각도 없는 듯 보인다. 들어서는 나를 보며 싱긋 웃고는 들릴 듯 말듯 아퍼어. 그리곤 다시 감기는 두 눈. 혼자가 된다. 누가 방문을 왔는지. 뭐라는 건지. 상관 할 여지가 없이 눈을 감는다.



     손만 꼬옥 잡아 줄 뿐이다. 그만 간다. 또 온다. 아무런 말이 필요치 않다.
하나님, 어디 계신거에요? 진정 데이빗을 혼자 놔두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