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와 추억

2014.11.28 03:38

최영숙 조회 수:101

    
                    

선배님, 한국에 잘 갔다 왔어요.
추수 감사절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까 이미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었네요. 어디에서나 캐롤이 들려오고, 식품점 안에는 갓 구워낸 빵 냄새와 계피향이 가득 차있어요.
아마 펌킨 스파이스 커피에서 풍기는 향일 거예요.
아니면 따뜻한 애플사이다....
모두가 지나간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게 만드는 향이지요.

상점에 들어서니 빨간 조끼를 입은 직원이 반갑게 인사합니다.
“해피 할러데이!”
이 계절에 영락없이 듣는 말이지요. 그 말에 저도 변함없이 대답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언제부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없어졌나요? 이제는 크리스마스가 만인이 즐기는 공휴일이고, 또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을 배려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저는 왠지 섭섭해요. 하지만 이처럼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축하하며 즐기는 날은 그래도 크리스마스뿐이지요?

동영상 뉴스를 보니, 이라크에서도 트리를 세우고 거기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크게 써 놓았더라고요. 물론 상업적인 착상이긴 해도 귀엽잖아요.

차 안에서 라디오를 켰는데 거기에서도 크리스마스 노래가 쉬지 않고 흘러나오네요. 징글벨, 북치는 소년, 화이트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가 우리 마을에 오시네.... 그러다가 “오 거룩한 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언제 들어도 명곡이야!”
마지막 소절을 따라 부르다 남편이 끝내 탄식을 해요. 그 사람에게 일생 소원이 하나있는데, 그건 바로 “오 거룩한 밤”을 무대 위에서 한 번 멋있게 불러보는 거랍니다. 그런 남편에게 저는 큰 소리 칩니다.
“당신, 내가 이태리로 유학을 보내 줄 테니까 그 꿈 이뤄보시지!”
남편이 그 말에 또 환하게 웃습니다. 제가 몇 년 째 주는 빈 상자 크리스마스 선물인데도 그 사람은 행복해 해요. 후훗! 아무튼 크리스마스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제일이야!”
남편의 속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저는 작년과 다름없이 고집을 부립니다. 왜냐하면 추억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제가 중학교 시절에 영어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배운 크리스마스 노래이거든요.
먼 나라, 이국의 크리스마스를 꿈꾸게 만들었던 노래, 어쩌면 거기에서부터 이국에 대한 꿈을 키웠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고집하는 내 앙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말합니다.

“차암, 그 때는 왜 캐롤만 들으면 그렇게 맘이 들떴는지 몰라...친구들하고 밤새도록 쏘다녔다니까, 크리스마스의 뜻도 모르고 말야.”
남편은 학창시절에 뜻도 모르고 즐거워했다는 크리스마스를 그리워합니다.

그때는 친구들이 모두 청청하게 살아있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꿈을 가진 시절이었던 거지요.
앞날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뜨거웠을 테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면서 앞으로의 생을 살 것인가,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사뭇 낭만적인 기대를 가졌겠지요.

남편은 기대와는 달리, 내가 요런 여자 만나서 이처럼 고단하게 살게 될 줄이야... 하고 생각하는 지도 몰라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오늘,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에는 금테를 두른 찻잔에 커피를 따르고, 아주 새빨간 그릇에 초컬릿 과자를 담아서 남편과 마주 앉았지요. 안드레아 보첼리의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으며 우아하게 커피를 마셨답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카드 만드는 일로 분주했어요. 도화지를 자르고,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풀칠을 하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금가루, 은가루를 뿌려서 만드는 저만의 비법이 있었는데, 때마다 방안은 온통 금가루, 은가루 범벅이 되는 바람에 엄마한테 잔소리도 제법 들었어요. 그 카드를 받은 사람들은 진짜 행운이었는데... 세상에 단 한 장뿐인 카드였거든요.

몇 년 전에 멕시코 남쪽 선교지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맞던 해였어요. 선배님은 그곳의 포인센티아가 얼마나 키가 큰지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겨울이 없으니까 사철 내내 자라서 지붕까지 닿아요. 하도 자주 보니까 포인세티아가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꽃이란 걸 잊고 지냈답니다.

12월이라고 해도 여전히 건조하고 뜨거운 어느 날, 뽀얗게 먼지가 일어나는 길을 자동차로 달려가고 있을 때였어요. 제 눈에 작은 집 지붕 위에 올라앉아 있는 산타클로스가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생뚱맞고 터무니없었어요. 글쎄, 상상해 보세요. 통통한 산타 할아버지 풍선이 덥고 메마른 햇볕 아래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요.

그 집 마당에는 과달루페 성모를 모신 작은 사당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장식 전등이 달려 있어서 부지런히 깜박이고 있더라고요. 색이 바란 채 지붕 위에 애쓰고 앉아있는 산타클로스를 지나치면서, 마야 사람들이 사는 산골짜기에 까지 찾아 온 크리스마스의 위력에 새삼 놀라고, 미국에 있는 우리 집 골목 이웃집들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앞에 선해지면서, 빵 굽는 구수한 냄새와 계피 향, 그리고 하얀 눈이 뒤덮였을 그 골목이 그리워서 코끝이 찡 했답니다.  


선배님이 이미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탄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의 대표인물이 되어서 상업주의를 선도하고,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라 태양신을 섬기는 이교도가 지키던 동지 절이며, 크리스마스트리도 나무의 정령 숭배에서 나온 이교도 풍습이라는 말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려왔어요.

그래서 올해에는 저도 선배님처럼 크리스마스트리나 장식을 없애고, 크리스마스도 축하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해피 버스데이 지저스” 노래를 듣고는 마음을 바꿨어요.

반짝이는 장식이나 등불이나 선물이나 다 좋지만 진정한 선물은 예수님, 당신이라고 어린아이가 속삭이더군요. 크리스마스를 부풀게 하는 캐롤이나 종소리, 그런 모든 것이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고,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전 고개를 끄덕였어요.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빼앗아갈 수는 없는 거지요.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우리를 보고 비웃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꾸미고, 즐기고, 바꿔 보시라고 하지요. 그래보았자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걸요. 이천 년 전 어느 날에 예수님이 진짜로 오신 날은 변함없으니까요.

이번에 한국에 가서 일부러 고향 마을을 찾아가 봤어요. 저는 고향이 그렇게 작은 마을이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아파트 몇 채가 점령해 버린 여기저기가 할머니 집 보리밭이었고, 배추밭이었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듣고 가슴이 서늘해졌어요. 세상에...그 보리밭이 넓어서  할머니가 엎드려 일하는 곳까지 다가가기가 힘들었는데...
그것뿐이 아니었어요.

할아버지가 일하는 밭에 참을 내다 드리는 일이 힘들어서 투덜대고 걷던 들녘도 모두 사라지고, 거기에는 공장이 들어서 있더군요. 마냥 걸어가던 들판이었는데, 자존심 상하게 겨우 납작한 건물 몇 채가 서있는 거예요.

“에이, 설마 여기가 덤벌미라고요?”
영분이네 집을 지나고, 왕사탕 가게를 지나고, 할아버지 친구였던 꽹과리 상쇠 아저씨 집을 지나고, 그래도 한 참을 더 가야만 황토 언덕이 나오고, 거기에는 을씨년스러운 상여 막이 있어서, 겁 많은 저는 못 본척하고 냅다 달리곤 했지요.
그리고 나서야 저만치 할머니, 할아버지가 밭에서 일하시는 모습이 가무룩히 보이곤 했는데....참 우습더군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말이지요.
어른들에게는 첨부터 들판이 그렇게 작아보였을까요? 지금의 저에게처럼 말입니다.

제가 멍한 얼굴로 좌우를 자꾸 두리번거리니까 아버지가 매몰차게 말하시더라고요.
"너는 옛날 일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그러냐?"
하이고, 울 아버지는요, 그런 일에는 도통하셨나 봐요. 속사람이 팔십 평생 자라신거지요.

추억이라는 거, 기억이라는 거는 먹고 사는 일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마치 계절 지난 옷 같이 너절한 거라고 여기시는 거지요. 울 아버지 나이가 되면 가슴에 딱지가 앉고 앉아서 아마 철판 같이 되는가 봐요. 가슴이 철판 같은 울 아버지, 그래도 헤어질 때 당신 손을 잡으니까 딴 데를 보면서 손을 놓지 않으시더라고요.

제가 열 두 살 되었을 무렵, 엄지손가락 끝을 콤파스에 찔려서 덧났을 때, 학교 빼먹고 보건소에 데려가서 상처 치료해주고, 수원의 단골 서점에 가서 강소천 동화집 사준 것 정도는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선배님, 언제부터인지 크리스마스 노래가 슬프게 들려요. 아름다운 것은 슬퍼서 그런가 봐요. 지금은 양로원에 들어가 있는 미세스 윈들리 하고 함께 베니 굿맨의 스윙을 들으면서 몸을 흔들고 깔깔 거렸던 생각이 문득 나요.

남편을 위해 “오 거룩한 밤” 피아노 반주를 해준 친구 생각도 나네요, 덕분에 그 노래를 제 남편이 소원대로 맘껏 불러봤지요. 친구네 거실에 비록 청중은 없었지만.... 그 친구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제게는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일 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절기라 여겨지네요. 감사드려야 할 분이 생각나고, 풀지 못한 일, 미루어 놓은 일, 거기다가 아름다운 추억까지 생각나서요.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일들이 그렇게 작아지고, 사라지고, 그래서 잊히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그렇게 그리움을 불러냅니다. 크리스마스는 제게 이제 추억입니다. 그러면서 소망이기도 합니다.

소망을 붙들어봅니다. 작아지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커지는 소망. 어제보다 가까워지고 내일이면 더 가까워지고 그만큼 커지는 소망. 선배님이랑 제가 그렇게 사모하는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을 뵙는 소망이지요.

선배님, 쇠약해 지신다는 몸을 잘 돌보시기 바랍니다. 이 소망을 갖고 사는 동안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여전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며 또한 그리움으로 슬프기도 할 것입니다.
선배님과 함께 지낼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2013년 크리스마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