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톱

2014.11.04 09:48

최영숙 조회 수:30

“교회에 가서 내 속을 열어보였다간 살아남지 못해요.
그 날로 소문이 온 교회에 퍼지는 거예요.
다음 주에 교회에 가보면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져 있어요.
벌써 무슨 얘기가 돌았구나.
이제 눈치가 백 단, 금방 알지요.
근데, 내가 말한 대로만 떠들어도 괜찮겠어요.

이건 뭐... 나도 모르는 말들이 붙어서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몰라요.
나중에 전해 들으면 만정이 떨어져서 도저히 그 교회에
나갈 수가 없어요.
한국에서는 이웃이나 친구들하고 속 털어놓고
아무리 얘기해도 이런 일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는 그런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요.
이젠 사람들이 무섭고, 아무도 못 믿겠어요.”

“목사님하고도 상담 못해요.
설교 시간에 얼마나 쏘아대는지 아세요?
중죄인에, 지옥에 갈 인간이 되는 거예요.
그냥 그러냐고, 아팠겠다고 한마디만 해줘도
눈물 나게 고마울 텐데 왜 다들 그런지 몰라요.
정말 우리 이민 교회들 왜 이런 거예요?”

“교회 밖에서는 아주 괜찮은 사람인데 교회에서 보면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
장로가 뭔지 권사가 뭔지 그게 무슨 큰 감투라고....
교회 생활이 힘든 정도가 아니라, 왜 이러면서까지 교회를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민 교회에 다니면서 이런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본다. 내 주위에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사람들이 자꾸 늘고 있다.

그들은 교회에 가봤자 상처만 받을 뿐이라고 마음의 문을 닫고, 또한 교회에 가서 사람 때문에 죄를 짓느니 혼자 예배드리고 맘이라도 편히 살겠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자기가 고수하고 있는 진리와 맞지 않는 설교를 들으면서 충돌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도 있다.

듣고 있다 보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사건이다. 가해자라 생각한 사람은 또 다른 면에서 피해자이다. 마치 굴렁쇠처럼 이 쪽으로 굴러도 저 쪽이고 저 쪽으로 굴러도 이쪽인 현상이다.

지난겨울, 꺼칠한 갈색 고양이 한마리가 눈이 쌓인 뒷마당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았다. 측은한 마음에 나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하루에 한 끼씩 밥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녀석이 얼마나 경계를 하는지,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 놓으면 몇 십 분이 지나야만 살금살금 다가오곤 했다.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최근에서야 겨우 주위를 살피지 않고 밥 먹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날씨가 화창한 지난 주 어느 날, 빨래를 걷으러 덱으로 나갔을 때였다. 여느 날처럼 나비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서 나를 보고 냐옹, 하기에 나는 나비를 향해 웃으면서 같은 소리로 화답했다. 이러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밥 먹여주며 사귀느라고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생각하니 오히려 나비에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빨래를 걷어들고 나비야, 바이, 하면서 발을 돌려 집안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발뒤꿈치가 따끔하게 아파왔다. 양말을 벗어보니 금세 피가 나오고 있었다. 나비가 앞발로 할퀴었는지 세 군데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서둘러 소독을 하고 항생제 연고를 바르고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야생 동물에게 물리면 제일 염려되는 것이 광견병이라는 것은 상식이었다.

큰일이었다. 감염되었다하면 치명적이라는 내용에서 내 눈이 멈췄다. 손이 차가워지고 정신이 집중 되질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우왕좌왕 하다가 딸의 도움을 받아 우선 병원으로 달려갔다.

파상풍 예방 접종을 하고 항생제를 받고, 상처가 깊지 않은데다가 이 지역에서는 광견병이 발견되질 않는다고 염려하지 말라고 의사가 말했어도 놀란 가슴이 여간해서 진정 되지 않았다. 그날 밤에 상처 부위가 많이 욱신거렸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병원에 가지 않았으면 분명 덧날 뻔 했다. 상처가 겉보기에는 작았어도 박테리아 감염 수위가 높은 모양이었다.  

사실 나비가 나를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내 다리에 몸을 비벼대다가 돌아서는 나를 붙들며 애정 표현을 한 모양이었다. 도톰하고 포실포실한 앞발 어디에 그런 날카로운 발톱이 숨어있는지 도저히 믿어지질 않았다.

점프하거나 걸을 때도 고운 털로 뒤덮인 발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두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서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몽톡한 두 발은 악수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정겹다. 그 발로 두더지나 다람쥐를 움켜잡는다는 사실은 생각할 수도 없다.    

다음 날, 나비에게 붕대 감은 발을 보여주면서 야단을 쳤더니 자신의 죄를 안다는 듯이 눈을 오므리고 졸린 시늉을 했다. 나비가 길게 옆으로 누우며 한껏 몸을 늘이고 다리를 뻗는 순간, 그 도톰하고 몽톡한 발끝에서 낚시 바늘과 같은 발톱이 좍 들고 일어났다. 하품을 하는 입 안쪽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양편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요게 조그만 호랑이네.... 나비는 누운 채로 목 언저리를 득득 긁었다. 긁으면서도 눈동자의 조리개는 빛을 따라 커졌다 작아졌다하면서 쉬지 않고 나를 주시했다. 녀석은 몸을 한 번 뒤채며 네 발에 숨겨놓은 발톱을 다시 한 번 남김없이 차악 열어 보여 주더니 벌떡 일어나 그 발톱으로 나무 바닥을 박박 긁었다. 발톱을 갈아세우는 것이었다. 마치 야생 고양이에게 발톱은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라는 것을 변명하는 자세처럼 보였다.  
“그래! 알았다. 이제는 너와 내가 가깝고도 먼 사이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낼 거야.”

밥그릇을 들고 나가면 나비는 어느 새 달려와 내게 뛰어 오르려 한다. 한 번 놀란 나는 이제 적당한 거리를 두기 위해 물이 담긴 스프레이를 들고 한 번 뿌려댄다. 그 서슬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저만큼 피해가는 나비가 딱하지만, 오랫동안 뒷마당을 차지하려면 그 거리를 유지해야 된다는 것을 배워야만 될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내 마음을 알 길 없는 나비는 냐옹 냐옹, 아기처럼 응석을 부리며 하염없이 내 눈길을 붙든다.

내 속에는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발톱이 숨어있다. 적당한 웃음과 화술로 감추고 있지만 언제고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발톱. 그 발톱을 세우는 일에 골몰하기 보다는 발톱을 깎고 다듬는 일에 힘을 다하면 좋으련만.

고양이가 자신의 발톱을 갈고 세우는 일이 생존에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아마 우리도 지금까지 이민 생활 속에서 허덕인 긴장과 경쟁과 고단함에서 비롯된 발톱이 우리 이웃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다친 사람은 약을 바르고 주사를 맞아도 여전히 아픈데, 정작 아프게 한 사람은 자신의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모른다. 오히려 사랑해서, 아껴서 한 일인데 그게 그렇게 아프다니 별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우리는 단 한번 할퀴었어도 평생 상처가 될 지도 모를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른다.

배부르고 등 따스한 나비는 오늘도 가을 햇살 아래 길게 누워 낮잠을 잔다. 온 마당이 다 제 영역이다. 네 개의 발속에서 맘 놓고 드러나 있는 발톱. 내 재주로는 아무래도 저 발톱을 깎아줄 수가 없다. 저 발톱을 잘라줄 수만 있다면 나비가 원하는 대로 쓰다듬어 줄 수 있을 텐데.... 그저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만큼에서 밥을 던져주고 이름을 불러 줄 뿐이다. 한 번 다쳤으니 두 번은 다치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내 속에 숨어 있는 발톱은 무엇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까.... 누군가가 싫어지고, 누군가가 불편하기 시작하면 발톱을 세우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왜 저 사람은 말에 그렇게 가시가 있을까. 그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저건 담대한 게 아니고 교만한 거지. 저렇게 말하는 건 겸손이 아니고 위선이라니까.  

적의, 분쟁, 파당, 시기 등은 모두 경쟁심이라는 뿌리에서 일어나지만 이것은 경쟁심의 다른 얼굴인 열등의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찌감치 내 발톱으로 내 안에서 그것부터 뽑아 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툭툭, 그 발톱을 깎아버릴 수만 있다면, 햇볕 아래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을 텐데.... 등 따습고 배부른 계절이 아쉽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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